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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판교에 살고 계신 분들을 위한 좋은 소식을 들고 왔습니다. 바로 에어바운스인데요, 자녀가 있는 판교에 사시는 분들이라면 누구든지 오셔서 에어바운스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5월 22일 주일에 삼평중학교에서 오후 1시 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에어바운스 코리아의 협찬으로 에어바운즈가 열리는데요, 지역주민을 위한 행사인만큼 누구나 와서 즐길 수 있으십니다. 

에어바운스는 공기를 넣어 만든 놀이 동산인데요, 아이들이 정말 좋아하는 꿈의 놀이터입니다. 


작년에는 조촐하게 교회 유치부, 초등부 아이들을 대상으로 에어바운스를 했었는데요, 이번엔 강당이 아닌 운동장에서 한다고 하니 정말 기대가 됩니다. 


대략 이런 것들이 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에어바운스 코리아(http://www.airbounce.co.kr/)에 가면 더 많은 에어바운스들을 볼 수 있어요. 크기나 규모면에서도 작년과는 비교가 안될 것 같아요. 또한 이번에는 지역 주민들을 위한 행사이니 말이죠. 


작년에 아이들이 엄청 즐겁게 놀았었는데, 이번에는 더 많은 아이들의 행복한 웃음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이들에겐 더 없이 좋은 추억이 될 것 같아요. 


판교 사랑의 교회 성도분들이 직접 안전요원으로 나서서 많은 분들이 봉사를 해 주니 안전에도 문제없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판교 사랑의 교회




전 원래 3대째 동안교회에 다녔습니다. 부모님도 동안교회에서 만나서 동안교회에서 결혼하시고, 저도 동안교회에서 자라, 청년부에서 아내를 만나 동안교회에서 결혼을 했죠. 거의 고향이나 다름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다 중국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돌아온 후 판교에 보금자리를 얻게 되어 살게 되었는데요, 당시 아내가 만삭이어서 회기동에 있는 동안교회까지 가기는 무리였죠. 그래서 근처 교회를 가보기로 하고 주일에 길을 헤매였는데요, 당시만해도 판교는 공사판이나 다름없었죠. 안그래도 처음인 동네를 돌아다니다보니 길을 잃어버리게 되었고, 보통 교회들이 예배를 11시나 11시 30분에 드리기에 시간이 촉박해오자 눈에 보이는 교회에 들어가기로 마음 먹게 되었는데요, 생긴지 얼마 안되 보이는 한 중학교에 교회 팻말이 있어서 들어가게 되었죠. 그곳이 바로 판교 사랑의 교회였습니다. 

신기한 것은 그 날이 삼평 중학교에서 첫 예배를 드리는 날이었어요. 목사님의 얼굴에서 빛이 나고 인상도 좋으시고, 설교 말씀도 은혜가 있어서 판교 사랑의 교회에 주일마다 나가게 되었습니다. 개척 교회였기에 성도의 수도 얼마 되지 않았죠. 한분 한분씩 알아갈수록 이런 분들을 세상 어디가서 만날 수 있을까 할 정도로 멋진 분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습니다.

다솔이가 태중에서 거꾸로 자리잡은지라 걱정이 많았는데 판교 사랑의 교회에서 합심하여 기도해주어 순산을 할 수 있었죠. 판교 사랑의 교회에 다니면서 신기했던 점은 아이가 많다는 것이에요. 창립 예배 때부터 나갔기에 얼마나 많은 아이가 태어났는지 알 수 있었는데요, 저희 다솔이를 비롯하여 줄줄이 새생명이 탄생하기 시작했죠. 불임으로 수년간 고민했던 부부도 임신에 성공하여 쌍둥이를 낳게 되고, 치사율이 80%라는 뇌수막염에 태어나자마자 걸렸던 아기도 기도로 말끔히 낳게 되었죠. 지금도 매달 2,3명의 아기가 태어나고 있습니다. 개척교회라 인원도 적은데 이런 정도의 출산률이라면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이로 인해 저희 부부도 둘째를 갖게 되었죠. 다솔이와 한달 차이로 늦게 나온 시은네도 이번에 둘째를 갖게 되었는데 신기하게도 이번에도 저희와 한달 차이더군요. 새생명으로 활기가 넘치는 판교 사랑의 교회입니다. 

이곳에서 제자훈련을 받게 되었는데요, 현재 남자 제자반 2기로 박준호 담임 목사님과 함께 성경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날마다 은혜가 넘치는 삶을 살고 있고, 성경 공부를 통해서 하나님을 더욱 깊게 만나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에 대해 많은 고민과 기도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그리고 사흘만에 부활하셔서 사망 권세를 이기신 예수님, 그 예수의 이름을 믿으면 의롭다 칭하게 되는 놀라운 은혜. 부활의 예수님...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에 매일 감사하고 담대하게 살아갈 힘을 얻고 있습니다.

사랑의 교회의 특징인 다락방도 있습니다. 주중에 소그룹처럼 모여서 성경 공부를 하고 교제를 하는 시간인데요, 공동체의 중요성에 대해서 느끼는 바가 많습니다. 다락방을 통해서 한주간의 삶도 돌아보고 한 가정, 한 가정에 대해 깊히 있게 알게 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해주니 매주 그 시간이 기다려질 정도입니다.

교회에 나가고 싶은데 고민하고 계신 판교에 사시는 분이라면 판교 사랑의 교회를 적극 추천드립니다. 또한 교회를 다니지 않더라도 판교에 사시는 분들이라면 이번 에어바운스 행사에 오셔서 재미있는 추억 만들고 가시기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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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담배를 하면 교회에 가면 안된다. 맞는 말일까? 사회적 통념으로는 맞는 말 같지만, 성경적으로 본다면 전혀 맞지 않는 말이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치고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수많은 질문을 던져보았지만 시원하게 대답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이것이 성경적이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많은 성경 구절을 대면서 술과 담배의 금지 이유에 대해 말하지만 결국 근본적인 문제는 보지 못하는 답변일 뿐이다.

술과 담배에 관한 문제는 개인의 문제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것이 종교의 가입조건쯤으로 되어있고, 관습처럼 굳어져오고 있다. 교회 다니는 사람은 술, 담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술,담배를 하는 사람은 교회에 나올 수 없다는 이상한 장벽을 쳐놓고 있는 것이다. 그런 가입조건을 통해 걸러져 나온 기독교인들은 우월의식을 가지게 된다. 바리세인들에게 있었던 선민의식을 가지고 가입조건에 충족하지 못한 사람을 정죄하고 비난한다.

흡연실이 있는 교회
오늘 CTS를 보다가 재미있는 강의를 듣게 되었다. 만나교회의 김병삼 목사님의 강의였는데, 만나교회에는 흡연실이 있다고 한다. 1층 문 앞에 있다고 하는데 흡연실에 TV가 있어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만들어놓았다고 한다. 홉연실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본당에서 예배를 드리려 담배를 끊기도 한다고 한다.

매우 멋진 생각인 것 같다. 아니 당연한 생각이 아닌가 싶다. 기독교의 존재 목적은 복음 전파이다. 예수님께서 주신 지상명령은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이지, 땅끝에 흡연자와 음주자를 몰아넣자는 것이 아니다. 복음을 전하는데에 담배와 술 따위가 가로막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술,담배를 이유로 복음 전파의 길을 가로막고 있다.

흡연자를 위한 예배
예전에 군대에 있을 때 군종병을 겸임한 적이 있다. 산꼭대기에서 근무를 했기에 교회가 따로 없었다. 주일에는 작업을 해야 한다며 교회를 가지 못하게 했다. 어쩔 수 없이 수요일마다 했던 동아리 활동으로 종교모임을 만들려고 했다. 몇명 이상의 인원이 되어야 하기에 후임들을 대상으로 동아리 가입 여부를 물어보았다. 하지만 대부분 가입하기를 꺼려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자기는 담배를 피기 때문에 교회에 나갈 수 없지 않냐고 반문하였다.

당시 흡연자였던 나는 기도 후 담배를 피우는 예배를 만들기로 했다. 정식 동아리명은 오예수. 오면 오예스를 항상 먹을 수 있다고 그렇게 지었다. 그리고 비정식 동아리명은 SMOKING JESUS였다. 예배하기 전에 담배를 반드시 한대씩 피고 시작하고, 끝나고 같이 담배를 피었다. 그리고 마지막엔 오예스를 나눠 먹었다. 예배는 찬양예배로만 드렸다. 짬밥이 찰때까지는 노래도 못하였던 후임들은 동아리 시간을 통해 소리 높혀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담배를 피기 때문에 교회 나갈 수 없다던 사람들도 모두 나와 같이 예배를 드렸다.

물론 술, 담배가 건강에도 좋지 않고, 여러 이유로 인해 사회적 문제를 야기시키기도 한다. 요즘은 사회 문화적으로 술과 담배가 자연스레 금기시 되어가고 있다. 또한 일부러 술과 담배를 할 필요도 권유할만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술, 담배를 하는 것이 복음을 듣지 못해야 하는 이유도 아니다. 그리고 술, 담배를 하지 않는 것이 우월감을 가질 만한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복음이 전해지는 것인데, 수많은 선교사님들이 오지로 나가서 어렵게 선교의 열매를 맺는 것에 반해 관습인 술과 담배로 인해 복음의 길을 막고 있는 것은 너무도 이상하다.

교회에 카페나 서점, 쇼핑몰등 수익구조만 만들지 말고, 흡연실 한개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그것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열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어떤 사람이 내게 '그럼 예배당에 술에 취해서 한손에는 소주병을 들고, 한손으론 농구공을 튀기며(왜 농구공 이야기를 했는지는 모르겠다-아마도 담배가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들어가는 것이 옳으냐고 물었다.

난 주저없이 말한다. 만약 그것이 복음을 전하게 되고, 하나님과 가까워지기 위해 나온 것이라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이다. 오히려 문제가 되는 것은 멋진 양복을 차려입고 한손에는 성경책을 끼고 친절하게 만나는 사람마다 웃으며 인사를 하면서 마음 속에는 친구를 욕하고, 남을 탓하며, 교회의 재산을 탐내고, 교회의 권력에 아첨하거나 약자를 괴롭히는 사람일 것이다. 어떤 꼬라지를 하고 있던지 하나님과 가까워진다면 그것은 옳은 일이고, 멀어진다면 그것은 죄이다.

요즘 기독교에 대한 욕을 많이 보게 된다. 예전부터 많이 보아왔지만, 현저하게 과격해지고 흥분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진 것 같다. 기독교인들은 그것이 무엇 때문에 나온 욕인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복음의 능력으로 인해 나온 욕이 아니다.  겉과 속이 다른 하나님과 멀어지고 있는 죄 짓는 사람들을 향한 욕이다. 그리고 기독교는 그것을 옹호하려하고 있다. 학연, 지연, 혈연과 같이 팔이 안으로 굽 듯 그런 종류의 옹호이다. 비판할 것은 비판하여야 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신부님들이 존경스럽다. 왜 기독교인들은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일까...

교회에 흡연실부터 만들면 조금은 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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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후에서 다룬 대형 교회 이야기들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것이다.
이미 대중은 기독교에 대해 등을 돌렸다.
게시판의 글을 한 사람이 도배하는 건지, 여러 사람의 의견인지 모르겠지만, 댓글을 보면 기독교에 대한 사람들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 감정은 대부분 기독교를 비하한 "개독교"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있다.

"교회"하면 20여년 전만해도 "가난"의 대명사격 정도되었다. 물론 당시에도 대형교회가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기억에 의하면 대형교회들의 나오기 시작한 시점은 1990년대쯤이 아닌가 생각된다. 하지만 지금은 "교회"하면 "부의 중심" 혹은 "권력의 중심"으로 인식되고 있다.

신학대학교의 입학 커트라인에서도 변화를 엿볼 수 있다. 1990년대만해도 매우 낮았고, 듣기론 1960년대엔 대학을 다 떨어진 사람들이 거저(?)가는 곳이 신학대학교였다. 그리고 그 당시 신학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현재 대형교회들의 목사를 하고 있다. 목사의 자질에 대해서는 내가 논할 바는 아니기에 넘어가기로 하자.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아차산에 있는 장신대의 신학과만 하더라도 서울의 왠만한 4년제 대학 수준의 커트라인은 된다. 신학대학원에 들어가는 것은 거의 하늘의 별 따기다. 내 주위에도 수많은 신대원(신학대학원) 재수생들이 있다.

물론 대형교회가면 돈을 많이 벌기 때문이라는 의식에서 신학대학들의 커트라인이 높아진 것이라 말할 수는 없다. 그들의 각자의 사명이 있고, 그런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에 경쟁률이 높아졌을 것이다. 그리고 60년대 신학대학을 다녔던 현재의 목사님들보다 더 현명한 목사님들이 되어 지금의 심각한 문제들을 해결해나갈 것이라 믿는다.



 왜 유독 대형교회에 이런 문제들이 많이 생길까? 많은 변명들이 있겠지만, 몸집이 커지는 것은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라 감히 말하고 싶다. 도대체 교회가 왜 커져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양육하는 것이 기독교의 핵심이라면, 브랜드 교회를 양성하는게 아니라 오히려 뿔뿔이 흩어져야 할 것이다.

한 교회에 수천명, 수만명하는 신도들이 있다는 건 목사와 신도들의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람이 많이 있으면 힘이 생긴다. 그리고 욕심이 생긴다. 한 주에 걷히는 헌금이 수십억을 넘어가면 당연히 눈이 뒤집히지 않겠는가? 수만명의 사람들이 자신에게 인사한다면 자신에게 권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대형교회 및 여느 교회들의 특징은 설교시간에 꼭 "우리교회"를 강조한다는 것이다. "우리 교회를 부흥하게 하시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많아져야지, 그게 왜 꼭 우리 교회 신도들이 많아져야 하는가? 그들의 흑심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장로교 교회에서 장로가 되면 죽을 때까지 장로가 되는 것을 아는가? 그리고 장로가 되기 위해 장로선거에 수천만원의 로비가 들어가는 것 또한 아는가? 장로교에 다니는 사람들은 공공연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왜, 기를 쓰고 장로가 되려고 할까? 물론 일부 장로님들이 그러시겠지만, 분명한 건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장로가 되면 파워가 생긴다.

 만약 내가 교회용품 회사 사장이라면, 기를 쓰고 장로를 할만하지 않겠는가? 의자 새걸로 싹 바꾸면 회사 10년 매출이 순식간에 생긴다. 예를 든 것 뿐이지만, 이보다 더 상상할 수 없는 병폐들이 많다. 그런 파워가 평생 지속된다면... 수천만원은 아주 작은 투자일 뿐이다.


 파보면 끝이 없다. 뉴스후는 이 문제로만 하나의 프로그램을 따로 만들 수 있을 정도로 그 병폐의 끝은 깊고 단단하다. 대형교회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대형교회를 쪼개면 된다. 잘게 잘게 쪼개어 한 교회당 300명 이하의 신도만 받을 수 있게 하고, 장로는 매년 투표로 재선임하고, 목사는 한 교회에서 3년에 한번씩 로테이션 시킨다면 대형교회의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될 것이다.

물론 말도 안되는 소리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기독교인 한명 한명이 회개하고 말씀과 기도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목사와 장로가 화해하고, 목사와 사역자들의 관계가 수직적이 아닌 수평적이 되어야 하고, 신도를 모으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나눠주어야 할 것이다. 오히려 신도는 흩어지게 해야 마땅할 것이다.

 기독교는 개독교가 아닌, 더 기독교적이 되어야 한다. 세금만 내면 기독교적인가? 목사 월급 공개하면 기독교적인가? 무엇이 기독교적인지 스스로 알 것이다. 사회가 요구하는 기독교의 참모습을 회복하길 바란다. 기독교는 자기들만의 리그가 아닌 세상을 향한 사랑의 외침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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