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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노의 반란이 시작되었다. 아니, 정확히 이야기하면 백성의 반란이 시작된 것이다. 민초의 삶은 항상 착취당하고 부당한 일에 익숙해지고, 그것이 숙명인 것처럼 살아가야 하는 것이었는데, 대길이와 업복이를 주축으로 대반란이 일어나고 있다. 사회를 향한 시선이 삐뚤건, 올바르건 이제 보수 권력에 대한 백성들의 징계가 시작된 것이다.

모두가 우연히도 한날 한시에 움직이기 시작하고, 최고 권력을 향한 일사분란한 움직임들은 세상의 변화를 예고한다.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닌 것처럼 자신의 친척과 아들까지 죽여야 하는 궁궐은 결국 파괴되고 변화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Mt. San Miguel continues to burn.  San Diego wildfires.
Mt. San Miguel continues to burn. San Diego wildfires. by slworking2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사회를 향한 자조적인 목소리, 대길

대길이는 말한다. 대충 살라고... 인생 뭐 있냐고 하며 마누라와 애 새끼 있고, 농사 지을 조그만 땅 하나 있으면 그것이 행복이 아니냐고 말한다. 귀한 양반 집 자제로 어려움 없이 자란 대길은 그의 얼굴에 스크레치만큼이나 힘든 삶을 살아왔다. 강호 최고수들인 개백정과 천지호, 짝귀에게 모든 무술을 전수받기까지는 대길이가 얼마나 힘들고 고단한 삶을, 그리고 수많은 죽음의 위기에 놓였었는지 보여준다.

담금질을 많이 한 쇠처럼 더 이상 단단해질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해진 대길이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삐딱하게 된다.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없고, 그저 자족하며 사는 것이 최고라며 인지상정을 버리고 도망 노비를 잡는 추노꾼이 되어버린 것이다.

사회를 향한 적극적인 목소리, 업복

BrickArms M21 Sniper Weapon System prototype
BrickArms M21 Sniper Weapon System prototype by Dunechaser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업복이는 대길에게 다시 잡힌 도망 노비이지만, 그는 평양에서 알아주는 스나이퍼였다. 그리고 총으로 양반들의 머리에 총구멍을 내는 일을 함으로 세상을 뒤집으려 한다. 권력의 핵심에 총구를 들이댄 것이다. 업복과 같은 뜻을 가진 수많은 노비들은 양반이 가르쳐 준 검술로 양반의 목을 자르게 되었고, 그들의 총구는 권력의 핵심을 향하게 된 것이다.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그저 시키는데로 살다가 죽어가는 것이 숙명인것처럼 살아가는 노비가 있는가하면, 업복이와 같이 세상을 향해 큰 소리를 내고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싸우는 노비도 있었다. 그것이 또 다른 권력을 낳는다해도, 지금의 부당한 현실을 뒤집고 싶어하는 것이다.

권력자의 깨달음, 송태하

하지만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떤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지 모른다. 그저 자신의 권력에 취해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짐승보다 못한 일을 하며 살아간다. 백성들을 상대로 영의정이 소송이나 거는 것처럼 말이다. 그 자리에 있으면 권력에 취해 자신들의 목이 조여옴도 모르고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벗어나고 한참후에에 송태하처럼 무언가를 깨닫게 된다. 세상을 바꾸겠다고 하면서 자신은 다른 사람과 근본이 다르다고 말하고 다니던 송태하는 자신이 노비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인정하지 않고 권력의 맛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언년이를 만나 자신의 눈을 뒤덥고 있던 껍질이 벗겨지며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게 된다.

사람을 사람으로 대해주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것은 매우 당연한 권리이고 주장이지만, 예나 지금이나 그것은 사람의 최대 과업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의 삐뚤어진 자화상

Speak up for Peace
Speak up for Peace by eqqman 저작자 표시비영리

대길이 업복이 송태하는 모두 우리 사회의 삐뚤어진 자화상이다. 사회를 구성하는 일원인 백성. 그리고 그 백성이 한 지도자의 권력에 대한 욕심 때문에 모두가 어그러지고 무너져버렸다. 대부분의 백성은 그런 현실을 받아들이고 살아가지만, 일부 백성인 대길과 업복, 그리고 송태하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때론 시니컬하게 때론 혁명적으로 때론 자아성찰을 하며 나아간다.

이런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세상은 발전하며 나아갈 수 있는 것이고 권력자들은 자신의 권력이 한낱 몽상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는 어떠한가 생각해보게 된다. 과연 우리 사회에는 노비가 없고, 추노꾼이 없고, 장군이었다가 노비가 된 사람이 없고, 남녀 차별이 없는가. 민주주의 사회는 업복이가 꿈꾸었던 세상이다. 백성이 왕이 되는 세상. 그리고 양반이 노비가 되는 세상. 그것이 민주주의 아닌가. 정치인들은 백성의 수발이 되어야 마땅한데 지금의 세상은 백성을 권력의 힘 아래 두려하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노비와 추노꾼을 만들고 있다.

그것이 결국 자신들의 목을 조여매는 것임을 모르고 말이다. 역사는 반복되기 때문일까, 아니면 사극이 현실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인가. 추노를 보며 느끼는 것은 너무도 우리의 사회에 닮아있다는 것이고, 추노가 던지는 메시지는 매우 강렬하고 단순하여 추노를 보는 재미를 배가 시키는 것 같다.

더러운 세상에 굴복하며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죽을 각오를 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려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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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의 재미가 날로 더해지고 있다. 이제 비담과 덕만의 러브라인이 진행되고, 춘추의 본심이 들어나기 시작하면 점점 더 재미있어 질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에는 정치에 대한 이야기들이 주가 되고 있는데 보면 볼수록 현실과 닮은 점이 많이 있는 것 같다.

드라마 속에 현실을 담은 것일수도 있겠지만, 그 시대나 지금이나 수백년이 지나도, 수천년이 지나도 정치의 속성은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옛날에는 보이는 계급과 왕이 있었고, 현재는 보이지 않는 계급과 왕이 있다는 것 뿐이다.

과연 어떤 점이 현 정부와 닮았는지, 꼭 현 정부만이 아니더라도 과거의 정치와 어떤 닮은 점들이 있는지 느낀대로 써보고자 한다.


1. 당파 싸움과 주먹다짐

고등학교 때 배웠던 헤겔의 변증법에 정반합이라는 말이 있듯 무엇이든 정이 있으면 반이 있어야 더 나은 것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파 싸움은 다르다. 정과 반만 있고, 합은 없는 것이 당파 싸움이다. 당파 싸움으로 인해 일제 식민지 시절이 오게 되었고, 온갖 오랑케에게 한반도를 내 주어야 했다.

오늘 날도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정과 반만 있고, 합은 없다. 신라 시대에도 미실과 덕만편만 있지 합은 없었다. 그나마 나은 것은 덕만이 미실에게서 배우려 하고, 미실은 덕만을 부러워 한다는 점 정도이다. 앞으로 미실이 덕만을 도와 꿈을 이루어나간다면 그야말로 알흠다운 장면이 되지 않을까 싶다.

어제 선덕여왕에서 하종과 용춘이 주먹다짐을 벌였다. 오늘 날 여의도에서 흔희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정치판인지 싸움판인지 모를 정도로 폭력적인 국회의 모습은 비단 우리나라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똑같이 펼쳐지는 현상이긴 하다.

하종과 용춘이 주먹다짐을 벌인 이유는 더 재미있다. 정치 현안에 대한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하대 했다고 열받아 주먹다짐을 한 것이다. 오늘 날 국회에서 주먹다짐을 하는 이유도 똑같을 것이다.


2. 처벌은 폭풍처럼

미실이 덕만에게 해 준 한마디가 덕만을 변하게 만들었다. 그저 착하기 착한 덕만이 미실이 된 것이다. 덕만의 리더십을 세우기 위해 선택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하기엔 덕만의 얼굴에 묻은 피가 초반에 미실이 소화를 놓친 병사를 죽이고 튄 피 묻은 얼굴이 너무도 닮아보였다.

미실은 덕만에게 군주론에 대해 팁을 하나 알려준다. '처벌은 폭풍처럼 가혹하게, 포상은 천천히 그것이 지배의 기본이다' 참으로 섬뜩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보통 처벌을 폭풍처럼 가혹하게 하고 포상은 천천히 하는 것은 애완견에게나 하는 짓이니 말이다. 아니 요즘은 애완견에게도 그렇게는 안한다.

그래서 결국 자신과의 약속을 어긴 백성을 단칼에 베어버린다. 이로서 공포정치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다. 백성들은 이게 시범사례가 되어 죽을까 두려워 덕만의 말을 따르게 될 것이고, 덕만은 이제 편하게 정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다. 정권을 잡기만 하면 국민들을 몽둥이로 잡아 족쳤던 군부정권 때가 생각나기도 하고, 얼마 전이 생각나기도 한다. 그리고 군대에서도 자주 보았던 장면이다. 어떤 규율이 새롭게 생겨나면 항상 처음을 조심해야 한다. 첫빠따로 걸리면 국물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사병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사병이었던 나의 생각은 이러했다. '더러워서 참는다...'

현재 덕만의 백성들이 생각하고 있는 생각은? '와~ 우리 공주님 포스 짱이얌! 반해썸!'이기 보다는 '더러워서 참는다..." 일 것이다. '더러워서 참는다... ...!'


3. 경제 대통령


덕만은 경제를 살려서 민심을 잡으려 한다. 매점매석을 없에려 군량미까지 풀어버리고, 무기를 만들어야 할 철을 가지고 농기구를 만들고 있다. 민심이 천심이라는 말을 실천하려는 듯 현재 미실에게 가 있는 민심을 덕만에게 돌리기 위해 경제라는 것을 선택했다.

MB정권도 같은 슬로건으로 당선이 되었다. 경제를 살리자! 딱 이것만 보고 뽑은 것이다. 그리고 경제가 살아나는 것처럼 보이고 있다. 실제로 살아나는 것인지, 연기금 퍼부어 살아나는 것처럼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경제 지표는 살아나고 있다.

덕만도 같은 생각이다. 결과가 중요한 것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덕만은 임기가 죽을 때까지이기 때문에 모로가든 백성들이 땅을 가지고 자급자족하며 살게 해 주면 되는 것이고, MB는 임기동안 결과치만 나오면 되는 것이다. 아마 현재 국민들의 마음도 수치만이라도 좋게 해 달라는 심정일 수 있다.


미실과 덕만의 차이는 바로 꿈이 차이였다. 덕만은 미실에게 진흥대제 이후 발전이 없는데 그 이유는 꿈이 없기 때문이라 한다. 그 말에 심히 동감한다. 그 꿈은 자신의 야심, 야망이 아니라 다수를 위한 꿈일 것이다. 선덕여왕의 그 꿈은 진덕여왕과 무열왕 김춘추에게 이어져 통일신라의 기초를 마련할 수 있었다.

MB정부에도 야망과 야심이 아닌 꿈이 있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일까? 선덕여왕을 통해 현 정권을 바라볼 수 있었다는 것이 재미있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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