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뷰/드라마

뜨거운 감자 기황후, 성공적인 안착?

이종범 2013. 10. 31. 09:22
월화드라마에 새로운 사극 바람이 불고 있다. '불의 여신 정이'에 이어 장편 드라마로 나온 '기황후'가 그 주인공이다. 50부작이나 되는 대작으로 현재 방영 중인 '미래의 선택'과 '수상한 가정부'와의 대결 뿐만 아니라 이범수, 윤아, 이민호, 윤시윤이 나오는 '총리와 나', 한혜진과 지진희가 나오는 '따뜻한 말 한마디'와도 경쟁을 벌어야 한다. 

하지만 기황후가 시작하기도 전에 기황후에겐 안좋은 일이 들이닥쳤다. 바로 역사 왜곡에 관한 논란이었다. 기황후라는 인물 자체가 고려를 침공한 원의 황후로 4형제와 함께 악독한 일을 일삼은 황후였기 때문이다. 기황후의 4형제 중 기철은 드라마 신의에서도 나왔던 인물로 역사적으로도 악독한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 기황후를 고려의 공녀였다가 중국을 정복한 여자로 그리고 있으니 역사 왜곡이라는 말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거기에 원래는 충혜왕을 앞에 내새웠지만 충혜왕은 폭군으로서 역시 좋지 못한 역사적 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그래서 결국 제작진인 가상의 왕인 왕유로 바꿔서 내보내게 된다. 기황후는 왜 이런 역사적 왜곡에도 불구하고 이 소재를 가지고 승부를 걸었을까?

노이즈 마케팅



유일하게 기황후에 대한 논란을 변명할 수 있는 것은 이것 뿐이다. 결과 지상 주의에서 과정이 어떻든 시청률만 잘 나오면 되기 때문에 노이즈 마케팅을 한 것이라면 역사 왜곡 따위는 일제식민지 찬양을 한다해도 묵인될 것이다. 기황후의 주인공인 주진모는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 드라마를 만들 바엔 차라리 다큐를 찍지 왜 드라마를 찍느냐는 애기를 팀과 나눈 적이 있다. 역사적 사실에 있어서는 드라마 내에서 다뤄지지 않을 것이다. 캐릭터에만 충실하겠다"라는 의견을 내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하지만 이 말은 그냥 시청률만 잘 나오면 되지 왜 따지냐는 말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 만드는 것이 다큐이고,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 만들지 않는 것이 드라마라면 드라마는 역사를 다루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아예 모두 가상의 인물로 두고 하면 될 것을 왜 실존 인물들을, 그것도 역사적으로 악행을 일삼은 사람들을 미화시켜서 영웅으로 그리려 하고 있는지 그 이유는 단 하나. 시청률 때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노이즈 마케팅으로 시청률을 견인해보자는 것이 기황후가 소재가 된 이유여야만 납득이 간다는 것이다. 이 전략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기황후는 불의 여신 정이가 9%대로 저조한 시청률을 냈지만 이어서 바로 11%, 13%의 시청률을 내며 상승세에 탔기 때문이다. 50부작이기에 초반 시청률은 매우 중요하다. 또한 경쟁 드라마를 두개나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초반에 시청률을 잡아 놓지 못한다면 쉽지 않은 레이스가 될 것이기 때문에 기황후의 노이즈 마케팅은 정확히 들어맞은 셈이다. 

경쟁 드라마 덕




기황후의 경쟁 드라마는 미래의 선택과 수상한 가정부다. 미래의 선택은 16부작으로 앞으로 10회가 더 남은 상태고, 수상한 가정부는 20부작으로 8회가 더 남은 상태이다. 초반 10회는 이 드라마들과 경쟁해야 하는데 기황후의 시청률이 초반부터 높게 나온 이유는 경쟁 드라마가 너무 재미없기 때문이다. 미래의 선택은 개연성이 부족한 스토리로 로코물의 가장 기본인 연애의 긴장감마저 잃어버려서 시청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수상한 가정부 역시 일본에서는 역대 최고의 시청률을 냈지만 그대로 일본 드라마를 배껴옴에 따라 정서적인 부분이 맞지 않게 되었고, 볼수록 이해할 수 없는 정서적 감정의 흐름이 낮은 시청률을 내고 있다. 

불의 여신 정이는 그 와중에도 두 드라마보다 더 재미가 없어서 시청률 또한 낮게 나왔는데 기황후는 그런 월화드라마에 대한 기대감을 반영한 시청률이 아닌가 싶다. 또한 초반 시청률을 잡았으니 앞으로 10회간은 스토리만 잘 풀어나가준다면 별 무리 없이 월화드라마의 새로운 다크호스로 부상할 것이다. 

안착할수록 찜찜한 드라마


기황후의 성공은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 역사적 왜곡의 허용 수위가 넘었기 때문이다. 뿌리깊은 나무처럼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가미한 것이라면 얼마든지 수용 가능하다. 하지만 관점을 완전히 바꾼 왜곡은 이해할 수 없다. 기황후는 분명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다. 고려 출신이지만 원의 황후가 된 사람이고, 자신의 권력을 가지고 고려를 곤경에 빠뜨린 장본인이다. 아무리 기황우의 삶이 파란만장하고, 고려 공민 출신으로 황후에 오르고 30여년간 자신의 아들까지 왕좌에 올리면서 온갖 풍파를 다 거쳤다해도 그런 기황후 관점에서의 드라마는 중국에서 나왔어야 맞다.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이또 히로부미 또한 일본의 원로 정치가이고, 하급무사 가문에서 태어나 온갖 정치적 시련을 거치며 총리까지 올라서 메이지 헌법의 초안을 마련하고, 을사조약을 성사시키며 헤이그 특사 사건을 빌미로 식민지 국가의 왕까지 강제로 퇴위시킨 파란만장하면서도 여러 업적을 남긴 사람이다. 물론 그 업적은 일본의 입장에서 업적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죽을 때도 식민지의 한 게릴라에게 저격당하여 비운의 죽음을 맞게 되는 드라마로 쓰기 딱 좋은 소재를 가지고 있다. 이또 히루부미나 기황후나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소재인데다 이를 드라마로 만들면 둘 다 시청률은 대박이 날 것이다. 아무도 다루지 않은 소재를 다루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드라마 이또 히로부미를 일본에 수출하면 초대박이 날 것이다. 


우리나라 드라마라면 우리나라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고려랑 지금의 대한민국과 무슨 상관이 있냐는 댓글도 본적이 있다. KOREA라는 단어가 고려에서 온 것을 모르는 것인지, 조선은 대한민국이 아닌지 묻고 싶다. 우리의 조상들이고,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한데 말이다. 그런 고려를 침공하고 수많은 사람을 죽인 원의 황후인 기황후를 마치 사연 있는 여자로 로멘스와 인생 극복의 관점에서 쓴 이 드라마가 높은 시청률로 안착한다면 그 드라마를 본 역사적 인식이 약한 사람들에게 기황후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지 안타깝기만 하다. 

기황후보다는 이또 히로부미가 더 나을지도 모른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주인공을 맡는다면 한류스타까지 거머쥘 수 있을테니 말이다. 

드라마를 드라마로 보지 왜 그렇게 삐딱하게 보냐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드라마는 드라마로 보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 재미있으니까. 재미있으니 더 쉽게 이해가 되고 기억에 남는다. 세종대왕 이야기보다 뿌리깊은 나무가 더 기억에 남는 것처럼 말이다. 기황후의 안착이 찜찜한 이유는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기황후의 성공으로 후속 이또 히루부미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