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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막장 드라마’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로 TV 드라마를 놓고 논란이 뜨겁다.

‘막장 드라마’란 말 그대로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는 드라마를 말한다. 논란이 되고 있는 드라마들은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연출하고,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는 것은 물론 자극적인 면을 부각시킨다는 시청자들의 지적을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연기자들마저 드라마에 녹아들지 못하면서 거센 비난을 받기도 한다. ‘발연기’(시청자들이 발로 하는 연기라고 비꼬아서 하는 말) 논란도 어쩌면 ‘막장 드라마’의 산물인지도 모른다.

MBC <에덴의 동쪽>을 필두로 KBS <너는 내 운명>, SBS <아내의 유혹> 등 방송사나 시간대를 가리지 않고 시청자들의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몇 년간 급격한 발전을 거듭하며 ‘한류열풍’의 주역이 된 드라마가 집중포화를 받는 신세로 전락한 것. 드라마에 대한 시청자들의 눈높이가 높아진 것과 달리 일부 드라마는 오히려 퇴보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의 전개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지나치게 자극적인 소재를 남발, 우려의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이 같이 일부 드라마가 비판을 자처하며 갈수록 수렁에 빠지게 된 것은 시청률에 대한 욕심이 가장 큰 원인이다.


‘품질’보다는 ‘자극’…이율배반적 드라마 선택

더 심각한 문제는 드라마의 질과는 달리 이런 드라마일수록 시청률이 높다는 점이다. 시청률은 오히려 반비례 곡선을 그리는 기막힌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경기가 좋지 않은 현 시점에서 시청률과 이에 따른 수익에 대한 욕심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일부 시청자들 역시 ‘욕먹어도 재미만 있으면 그만’이라며 두둔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같은 상황은 드라마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드라마 제작에서 가장 중요한 지표인 시청률은 드라마 제작과 극 전개 흐름마저 좌지우지 할 정도로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아무리 잘 만들어진 드라마라 하더라도 시청률이 저조하면 조기종영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해 향후 비슷한 트렌드의 드라마는 제작조차 어려워진다.

특히 경제상황이 좋지 않은 현 시점에선 더더욱 그렇다. 얼마 전 종영한 <그들이 사는 세상>이 대표적인 예. 명품 드라마라고 불리며 호평을 받았지만 스타군단을 앞세운 <에덴의 동쪽>과의 승부는 무리였다. 좋은 드라마와 시청률은 별개라는 것을 다시금 증명해 준 사례.

시청자들은 더 나은 드라마를 원하지만 ‘품질’보다는 ‘자극’을 택하는 이율배반적 상황은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그렇다면 시청자들이 민망하고 어색한 드라마를 찾게 되는 원인은 무엇일까.


‘막장 드라마’ 타겟층 공략 성공!


프로그램을 만들 때는 그 대상을 초등학생에게 맞추는 것이 일반적이다. 심지어 뉴스나 다큐멘터리도 초등학생이 볼 수 있는 수준을 고려해 만드는 것이 보통이다.

‘타겟’이라는 것은 한 부류에만 집중해 최대의 만족을 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타겟’에서 벗어난 부류에게는 최대의 만족을 주지는 못하는 단점이 있다.

TV는 시청률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을 중요시한다. 20대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 보다는 10대부터 60대까지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프로그램이 시청률이 높다. 따라서 어려운 내용보다는 이해하기 쉽고 편안하게 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관점에서 ‘막장 드라마’는 조금 더 욕심을 내 그 수준을 한껏 내린 것이다. 일부 시청자들의 요구와 제작자의 욕심에 따라 그 수준을 높여보려 했지만 ‘명품 드라마’의 잇따른 실패는 딜레마였다. 어찌 보면 눈높이가 높아진 시청자들은 지극히 일부에 불과한 것이다.

일부 시청자들은 구체적이고 전문적이면서 철학적인 사고까지 하길 원하지만 대다수의 시청자들은 좀 더 편안하게 드라마를 보고 싶어 한다. 선과 악이 뚜렷해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슬픔과 기쁨이 확연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드라마를 선호한다. 드라마가 스트레스와 고단함을 날려주는 휴식처이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시청자들의 솔직한 요구며 그 요구에 충실한 것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막장 드라마’인지도 모른다. 막장 드라마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나올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막장 드라마’이기도 하지만 시청자들의 요구를 가장 잘 충족시켜준 드라마이기도 하다. 즉, 누구라도 쉽게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타겟층 공략에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방송으로서 지나치게 시청률에 편승해 자극적인 소재로 승부하는 것은 많은 우려를 낳는다. 좋은 프로그램으로 시청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하는 것도 방송의 책임 중 하나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수준 높은 시청자가 ‘명품 드라마’ 만든다

지금은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로서 불분명하고 선과 악이 공존하는 시대라고는 하지만, 실제로 평범한 대중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을 자각하지 못한다.

그것은 일부 지식인의 말일 뿐, 대다수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선과 악을 뚜렷하게 구별하는 교육을 받아왔으며 권선징악이라는 아주 바람직한 결말에 익숙해져 있다.

때문에 선과 악이 분명하며 그 극과 극을 최대한 벌여 놓아 한 쪽은 ‘나쁜 놈’, 다른 한 쪽은 ‘천사’로 만들어야 시청자들이 보다 손쉽게 다가갈 수 있다.

‘막장 드라마’에는 사실상 배우들의 연기도 상관없다. 연기를 잘하든 못하든 드라마 속에서 이미 감정이입이 끝나 정든 인물이기 때문이다. 우리 편은 최대한 착하게, 다른 편은 최대한 악하게 연출하면 된다.

‘막장 드라마’는 제작자가 그렇게 만든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것에 열광하는 시청자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아무도 봐 주지 않는다면 ‘막장 드라마’는 나올 수 없다. 그것은 한국 드라마의 현주소를 말해주기 보다는 시청자들의 현 수준을 의미하는 것과 같다.

TV는 바보상자가 아니다. TV는 시청자들의 눈높이에 맞춰주는 고객만족 기업이고 상품일 뿐이다. 아무리 물건이 좋아도 팔리지 않으면 소용없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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