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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참 흥미로운 프로그램을 보았다. 그건 바로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이다. 일명 우아달이라 불리우는 이 프로그램은 최근 아이의 육아 문제로 인해 꾸준히 보고 있는 알찬 프로그램이다.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우아달은 무한도전보다 더욱 필수적으로 보아야 할 프로그램일 것이다. 문제가 있는 아이들을 단 1주일만에 개선시키는 마술같은 우아달은 볼 때마다 신기하기만 하다.

우아달에서 이번에 나온 아이를 보고 번뜩이며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지붕뚫고 하이킥의 해리였다. 특히 해리의 "다 내꺼야"의 문제점을 정확히 지적하고 있었는데 우아달에 나온 아이는 해리와 같은 증상인 "다 내꺼야" 증상을 나타내고 있었다.

김해의 장동건이라 불리우는 잘 생긴 이 아이는 4살이나 되었는데도 보는 물건마다 다 자기꺼라며 때를 쓴다. 동네 형이 야구를 하고 있으면 배트를 빼앗고, 친구가 놀고 있는 물건은 모두 자기꺼가 된다. 친척 형이 먹고 있던 육포도 입에 들어갔던 것을 빼앗을 정도로 소유욕이 굉장하다. 심지어 누나의 보석함도 자기꺼라 우기기 시작한다.

무조건 자기 눈 앞에 있으면 그건 모두 자기꺼다. 그리고 주지 않으면 울고 불고, 때리고 물어 뜯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고 만다. 이 정도면 해리를 능가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이번 우아달은 더욱 주의 깊게 보았다. 이 아이를 개선시킨다는 것은 해리도 개선이 가능하다는 것이니 말이다.

해리의 문제점은 바로 "잘못된 주도성"
김해의 장동건에게 내린 문제점은 바로 "비주도성"이다. 주도성이란 어떤 장난감을 가지고 놀건지, 어떻게 놀건지 등을 선택하는 것을 뜻한다고한다. 자세한 것은 모르겠으나 "다 내꺼야"란 주도성이란 요인을 잘못 발달 시켰기 때문인 것이다.

비주도성이 형성된 이유는 환경의 문제였다. 3남매인 이 집은 아버지가 서울에서 일을 하기에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주말 부부를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육아에 지친 엄마는 무조건 막내의 말을 들어주게 되었고, 자신의 말을 안들어주면 빽빽 울어대는 통에 엄마는 어쩔 수 없이 다시 막내의 말을 들어줄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그래야 일상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육아를 하다보면 일상 생활을 할 수 없게 되는 것 같다. 우리 집도 나와 집사람이 같이 공동 육아를 하고 있는데도 정말 빡센?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으니 맞벌이나 남편이 직장에 나가야 하는 경우는 얼마나 힘들까 생각만해도 부르르 떨린다. 그런데 한명도 아니고 세명의 아이를 키우려니 어쩔 수 없는 그 어머니의 마음을 백분 이해한다.

하지만 결국 그런 환경이 비주도성이란 문제를 불러일으키게 된 것이다. 해리의 환경을 살펴보면 우선 맞벌이 부부이다. 게다가 오빠는 고등학생이고, 신애와 세경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집에 가정부 아줌마 빼놓고는 아무도 없었다. 할아버지마저 회사에 나갔으니 말이다.

돈은 많았기에 유치원과 학원을 보냈겠지만, 가장 필요한 부모의 관심은 너무 멀리 있었다. 거기다 막내 외동딸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 줄 수 있는 여건이 되었으니 주도성에 관한 교육이 되었을리 만무하다. "다 내꺼야" 외에 다른 문제점도 여기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1주일이면 개선될 수 있는 해리


개인적으로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에 해리를 내보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아달의 마술은 정말 신기하기 때문이다. 반면 아이가 너무 불쌍해 지기도 한다. 딱 1주일만 관심을 보이면 개선이 되는데 그것을 수년동안 방치해 두었다는 것이 너무도 안타깝고 속상한 것이다. 해리는 벌써 10여년 째 방치되고 있으니 더 안쓰럽다.

그렇다면 어떻게 개선될 수 있을까? 그건 바로 "자기 것"과 "남의 것"을 구분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다. 상자 안에 물건들을 담아놓고 하나씩 꺼내며 이건 누구 꺼, 이건 누구 꺼라며 주인을 알려주고, 자신의 상자에 넣게 한다. 그리고 각자 상자에 담긴 물건에서 서로 빌려주는 연습을 한다.

매우 간단하고 쉬운 방법이다. 이런 걸로 되겠어? 싶겠지만, 우아달을 보면 "된다". 처음에는 이거 누구꺼? 하면 다 자기꺼라 하였지만, 선생님이 누구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게임처럼 상자에 넣게 하자 곧 아이는 자기 것과 아닌 것을 구별할 수 있게 되었고, 빌려주는 과정의 연습을 통해 어떻게 놀 건지 방법을 알게 된 것이다.
문제는 부모
서울에 있는 아빠의 숙소에서는 아빠가 엄마를 위한 이벤트를 준비했다. 아빠도 육아에 동참해야 엄마에게 그 감정이 전달되고 그 감정은 다시 아이에게 전달된다고 한다. 때문에 아내에게 감사하다는 이벤트를 통해 조금이나마 부모의 관계를 개선할 수 있고, 엄마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것이 아이의 잘못된 주도성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해리의 부모인 현경과 보석은 현경이 보석을 무시하는데에서 문제가 시작되는 것 같다. 이 또한 보석과 현경의 관계 회복을 통해, 부모의 육아에 대한 관심을 통해 개선시킬 수 있는 문제일 것이다.

우아달의 결론은 언제나 '부모의 잘못'이다. 아이는 정말 도화지 같고 만들기 전의 점토와 같다. 삐뚤어진 아이의 문제점은 바로 부모의 잘못된 역할에 있고, 그건 단 1주일의 제대로 된 부모 역할을 통해 해결이 되고 개선이 된다. 매우 고무적인 일이면서도 슬픈 일이기도 하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부모는 결국 육아를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리고 만다. 육아는 관심에서 시작되고 끝나는 것인데 경제적 상황 때문에 육아를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너무 안타깝기만 하다. 해리는 우리 사회의 자녀를 대표적으로 그린 것이 아닌가 싶다. 돈을 버는데에만 신경을 쓰고 육아에는 관심을 보일 수 없는 주객전도된 상황을 상징적으로 해리를 통해 그려넣은 것 같아 보인다.

부모는 아이만 낳는다고 되는 쉬운 것은 아닌 것 같다. 끊임없는 관심과 사랑 그리고 교육이 있을 때 비로서 부모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매우 어려워 보이지만, 한번 더 생각해보면 가장 쉬운 일일 수도 있다. 해리에게 필요한 것은 "부모의 관심"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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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뚫고 하이킥에서 가장 기대를 받고 있는 두 아역이 있으니 바로 해리와 신애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해리는 하이킥 집안에서 가장 버르작머리가 지붕을 뚫는 아이이다. 이벤트 비용으로 3천만원을 사용할 수 있는 경제적으로 상위권에 있는 집안의 외동딸이기 때문이다. 부족한 것 없이 자라온 해리는 안하무인격으로 버릇이 없다. 오냐 오냐 키운 덕에 해리는 입에 욕을 달고 다닌다. 하이킥 최고 유행어인 빵꾸똥꾸도 바로 해리의 입버릇이기도 하다.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은 다 가질 수 있는 해리는 아이러니하게도 항상 불만에 가득하다. 돈만 있으면 다 된다는 물질 만능 주의는 해리를 보고 있으면 거짓말인 것처럼 느껴진다. 돈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해리의 욕구는 항상 불만족 상태이기 때문이다. 세상엔 돈으로 다 될 수 없는 것이 너무도 많다는 것은 해리와 신애의 비교를 통해 쉽게 알 수 있다.



우리는 의례 더 비싼 피자가 맛있는 음식이라 생각하지만, 피자보다 김치전이 맛있고, 몰래 먹는 양푼 비빔밥이 더 맛있다는 것을 해리는 알게 된다.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가장 비싼 인형을 가지고 있는 것은 친구들에게 자랑할만한 거리가 되지만, 그 비싼 인형은 친구를 만들어주지 못하고 오히려 주변의 친구를 떠나가게 의심만 하게 만든다.

하지만 해리의 그런 모습은 주변 환경이 만들었을 뿐, 실제로 해리의 마음은 순수한 어린 아이이다. 작은 똥 이야기를 듣고 야채를 먹는 모습이나 입으론 빵꾸똥꾸라 말하지만 속으론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사랑스런 아이 말이다. 그래서 해리의 버릇없는 행동에도 해리가 안쓰럽고 사랑스러워보이나보다.

그 중에 해리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신애이다. 같은 집에 살고 있고 같은 반인 신애는 돈도 없어서 서류가방을 들고 다니고, 자신의 집에 얹혀 사는 동갑내기이다. 자장면을 처음 먹어보고 자장면집 사장님이 되고 싶다는 신애는 해리가 보기엔 완벽한 빵꾸똥꾸이다.

부모도 없고, 돈도 없고, 집도 없고, 옷도 없고, 인형도 없고, 친구도 없는 해리는 모든 것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신애에겐 보고 싶은 아빠가 있고, 사랑하는 언니가 있고, 아빠같은 줄리엔과 때묻지 않은 순수함이 있다.

신애와 해리는 빈부의 균형과 대립
신애와 해리는 극단적인 빈부격차를 보인다. 이벤트 3000만원의 부자집 딸과 최저 생계비도 받지 못하는 가난한 집 딸. 하지만 돈이 아닌 다른 것으로는 신애와 해리는 또한 극단적인 빈부격차를 보인다. 돈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해리와 돈 외에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신애.

이 둘의 대립은 정태적 균형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동태적 균형을 이룬다. 서로 부딪히며 신애는 해리를, 해리는 신애를 부러워한다. 또한 그 균형은 완벽한 균형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완벽한 균형을 벗어나고자 하는 힘 또한 존재한다. 때로는 머리를 다친 해리가 굉장히 착해지고, 인형에 욕심이 난 신애는 인형을 훔치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서로 "다름"에 대해 수용해가는 과정이고, 서로의 다른 부분을 배우며 흠모해나간다. 특히나 해리는 신애가 가지고 있는 "돈으로 가질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부러워하고 있다. 신애를 매일 때리고 구박하지만, 해리에게 있어서 신애는 "다름"이고, 비슷한 동네 친구들과는 다른 나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절친이 되는 것이다.

자신이 수업시간에 짝궁 팔을 물었다는 것을 엄마에게 고자질했다고 생각한 해리는 여행 간 신애를 하루 종일 기다린다. 하지만 신애는 그 다음 날 오후가 되어서야 돌아온다. 돌아오면 흠껏 때려주겠다고 벼르고 있던 해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신애가 보고 싶어진다. 심지어 환상을 보기도 한다. 그건 때려주겠다는 욕망보다는 신애가 보고 싶다는 그리움과 절친만이 가질 수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신애가 도착했을 때 재주넘기를 하며 신애에게 간다. 그 후 재미를 더하기 위해 때렸을 수도 있고, 아니면 와락 안아주었을 수도 있다.


어찌되었든 표현의 방식이 서툴어서 그렇지 신애는 해리를 좋아하고, 그저 그런 친구가 아니라 가장 친해지고 싶은, 가장 친한 친구일 것이다. 지붕뚫고 하이킥은 사회에 깔려있는 여러 배경들을 나타내주고 있다. 그 중 특별히 신애와 해리는 물질만능주의에 찌든 사회에 아이들의 순수한 눈으로 세상에 중요한 것은 물질이 아닌 마음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듯 하다.

지붕뚫고 하이킥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이런 메시지들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우리 주변에 흔히 있는 캐릭터들을 한데 모아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만들어내고 있는 지붕뚫고 하이킥,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시간이 너무 짧게 느껴지는 최고의 시트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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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스는 굉장히 빠른 속도로 스토리를 전개하고 있다. 하지만, 시청자가 느끼기에는 지루함이 더 크다. 새로운 시도이기도 하고, 중간에 점핑하는 부분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수박 겉핥기처럼 대충 대충 넘어가는 이야기는 개연성을 떨어뜨려 극의 몰입에 방해를 일으킨다.

아이리스는 소설로 끝까지 다 보았기에 결말이 어떻게 날게 될지 이미 다 알고 있다. 그리고 소설과 토씨하나 다르지 않고 똑같은 드라마를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면서 한편으로는 너무 많이 빼먹었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 자체도 빈틈이 너무 많은데다 영상으로만 보여주어야 하는 심리 상태나 배경 설명은 한계가 있다. 그런 것들을 모두 설명하다보면 결국 죽도 밥도 안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쉬운 점은 드라마에서는 소설과 다르게 드라마의 묘미를 더 살려주었으면 좋았을 뻔 했다는 점이다. 김태희가 폭발된 차량에서 살아나오는 장면도 다음 회 쯤에 설명이 될 것이다. 그 이유를 미리 알려주지 않고 넘어간 것은 그 장면이 스토리를 푸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외에 다른 궁금증들은 끝까지 풀리지 않고, 가면 갈수록 첩첩산중이 되어 결말 또한 미스터리하게 끝나버리고 만다. 아이리스가 높은 영상미와 훌륭한 연기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과물을 낼 수 밖에 없었던 데에는 원작에 너무 충실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소설에서 아이리스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전쟁과 평화이다. 남북 관계나 세계 경제 질서, 미,중 관계 모두 전쟁과 관련이 있고, 아이리스라는 세계 평화 질서 유지 단체가 평화를 위해 전쟁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댐의 터지는 것을 막기 위해 작은 구멍을 터트려야 하는 것처럼 전쟁을 통해 세계 질서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논리이다.

그리고 그것은 음모론의 핵심이다. 음모론은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세계를 지배해 온 집단이 있다는 것을 기정사실화 한 상태에서 증거들을 나열하는 방식이다. 아이리스는 음모론을 꺼내들며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경제학자 멜더스는 인구론에서 사람은 기하급수적(2,4,8,16,...)으로 늘어나고, 식량은 산술급수적(2,4,6,8,...)으로 늘어나기에 결국에 인류는 식량 부족으로 멸망하게 되어있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였는데 직접적인 방법과 간접적인 방법으로 인구를 줄여야 한다고 했다. 당시 제시한 방법 중 하나가 전쟁이다. (음모론에서 본다면 전염병도 그 중 하나이기에 현재 신종플루도 아이리스같은 단체가 퍼트린 전염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이 걸프를 공격한 이유도 무기 회사들의 압력과 기름 전쟁을 치르기 위한 것이었고, 911 사태와 아프가니스탄 공격도 모두 짜고친 고스톱, 즉 기름을 확보하고 무기를 판매하기 위한 쇼였다는 점이 음모론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음모론을 다루고 있는 아이리스. 낯선 전개로 혼란스럽게 만들긴 하지만, 전쟁을 원하는 집단, 아이리스라는 굵은 스토리를 기억하고 본다면 좀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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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에서 미실의 죽음이 50회에서 이루어졌다. 마치 50부작이 끝난 것처럼 아름다운 여운을 남기며 미실의 최후를 그려내었다. 미실의 죽음은 희화되지도, 과장되지도 않고, 최대한 절제된 가운데 많은 의미를 담으며 솔직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것이 감동이 되어 선덕여왕을 미실의 입장에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것처럼, 이긴 자의 입장에서 씌여지게 된다. 진 사람은 반역자이고, 대역 죄인으로 역사 속에서 사라지게 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역사이다. 아이리스 같은 스릴러물에 자주 등장하는 음모론은 이런 역사를 비판하며 시작된다. 숨겨진 역사, 이면사에 대한 의문점에서 시작되는 것이 보통이다.

선덕여왕도 미실과의 싸움에서 이긴 덕만의 입장이 아닌 진자인 미실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그것이 바로 이면사일 것이다. 관점을 바꿔 미실의 입장에서 선덕여왕을 한번 바라봐 보았다.



1. 사랑이란 아낌없이 빼앗는 것이다.
진흥왕 때 미실은 진흥왕을 도와 신라의 국경을 확장하고 신라의 기틀을 마련한다. 덕만과의 대화에서 미실은 덕만이 그저 비담과 같이 순진한 어린 아이와 같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피를 흘려 국경을 세우고, 수많은 계략과 술책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미실이 선택해야 했던 것은 누구보다 더 신라를 사랑하고, 갖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런 미실을 보고 독하다고 손가락질 했지만, 미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녀는 누구보다 신라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러기 위해 사랑을 철저히 이용한다. 사랑하는 것을 갖기 위해 사랑을 이용하여 쟁탈하려 한다. 사람을 통해 나라를 얻기 위해 그녀는 인재들과 결혼을 하게 되고, 수많은 아이를 낳게 된다.

그리고 이용하는 사랑이 나라를 얻을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면 가차없이 그 아이까지 내쳐버리는 것이 미실이다. 사랑을 나누는 것. 그것은 이미 사랑이 아니리라. 사다함을 사랑했던 미실. 사다함이 죽었기 때문에 사다함을 영원히 사랑할 수 있었던 것처럼, 미실은 죽음으로 신라에 대한 사랑을 영원히 간직한다.


2. 아들을 향한 사랑
그녀의 아들은 미실의 사랑을 받으며 자란다. 천방지축 하종과 듬직한 보종, 자신의 반대편에 있는 비담까지 그녀의 사랑은 한정이 없다. 바록 자신의 최종 사랑이 신라라고는 하지만, 실수 투성인 하종을 탓하지 않고, 비재에서 진 보종을 나무라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을 감싸고 안아준 것이 미실이다.

비록 비담은 자신의 사랑을 가로막은 진지왕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지만, 그를 죽이지 않고 그냥 싸개로 싸서 왕실에 내려놓는다. 그리고 성장한 비담을 마주친 자리에서도 미실은 비담을 항상 살려준다. 미실이 죽기 전 비담은 자신이 듣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늘어놓는다. "사랑한다","미안했다"... 하지만 미실은 사랑은 빼앗는 것이라는 자신의 가치관을 전해준다. 누구나 사랑한다, 미안하다는 것을 말할 수 있지만, 미실의 그것은 자녀를 걱정하는 어머니만이 할 수 있는 것이었다.

3. 덕만만 없었다면...
왕실은 미실의 장난감과 마찬가지였다. 병부와 모든 관리들이 모두 미실의 세력이었으니 왕실은 명목상의 왕실일 뿐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난데없이 덕만이 나타났다. 그것도 자신을 제법 따랐던 낭도로서 말이다. 누구도 자신의 적수가 될 수 없었기에 자신의 수를 알려주며 훈수까지 두는 여유를 부리며 덕만을 자신의 경쟁자로 키웠지만, 결국 그 덕만이 청출어람하여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차지하게 된다.

덕만만 없었다면 미실은 여왕이 되었을 것이다. 덕만이 없어도 김춘추가 돌아와 골품제 이야기를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머리가 좋은 김춘추라도 미실의 세력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었을테고, 그랬다면 역사는 미실을 여왕으로 기록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미실이 왕이 되었다면 신라는 더 흥했을지도 모른다. 김유신 못지 않은 칠숙과 보종이 있고, 전략과 책략으로는 설원을 따라갈 자가 없다. 또한 김춘추의 비상한 머리는 미생이 대신할 수 있는데다 알천랑 못지 않은 화랑들이 미실을 따랐을 것이다.


그랬다면 신라는 당나라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을테고, 더 큰 영토와 국력을 과시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실은 졌고, 덕만에서 자신의 사랑을 넘겨준다. 한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백제가 쳐들어와 국경이 무너질 수 있었기에 자신의 사랑이 위험에 쳐하는 것을 막기 위해 기회를 버린다. 미실은 여왕의 자격이 충분하였지만,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3대 왕을 모두 보필한 미실. 그녀는 선덕여왕 전에 이미 신라의 왕이 아니었을까...

무엇보다 미실의 연기를 맡은 고현정의 연기가 일품이었다. 앞으로 고현정의 활발한 활동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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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지만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했다. 이평강이 새롭게 시작했지만, 선덕여왕의 시청률은 46%에 육박하며 타의 주총을 불허했다. 이평강으로서는 선덕여왕이 끝날 때까지를 기다리는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선덕여왕이 지루해졌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끝까지 이렇게 많은 장치를 두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드라마는 별로 없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선덕여왕의 시청률 상승세에는 이유가 있다. 미실에서 덕만 아역으로, 그리고 알천에서 비담으로, 비담에서 다시 미실로 돌아오는 여정을 거치며 선덕여왕은 끊임없는 추진체를 태우며 가속도를 내고 있다.

어제 선덕여왕이 시작할 때 가장 궁금했던 것은 미실의 화살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였다. 결국 미실은 덕만을 죽일 생각이었고, 덕만이 팔을 벌린 것은 굉장히 무모한 짓이었다. 덕만의 가슴에 있던 소엽도에 미실의 화살이 맞아 덕만은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실과의 대결에서 이긴 덕만은 너무도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 않나 싶다. 어쩌면 대의명분을 따랐던 미실이 절대로 자신을 죽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자신이 죽더라도 자신을 이을 춘추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액션이었을 수도 있다.

아무튼 룰렛게임과 같이 무모한 시도였고, 소엽도 덕분에 살 수 있었다. 그리고 전세는 덕만에게 향하는 듯 했으나 이제 비담과 미실에게 포커스가 맞춰졌다. 덕만의 왼팔인 비담과 덕만의 적인 미실. 이 둘 사이가 모자 관계라는 것으로 인해 이 게임은 끝나지 않게 된다.


미실의 모성애

미실은 모성애가 특히 강하다. 권력욕이 모성애보다 강해서 그렇지 선덕여왕에서 미실은 모성애가 가득한 모습으로 나왔다. 비재에서 자신의 아들인 보종이 져서 풍월주 자리를 유신에게 내 주어야 했을 때 미실측 모든 사람은 보종을 탐탁지 않게 여겼지만, 미실은 아무 말 없이 꼭 앉아주었다. 그리고 난 후 보종은 미실에 대한 신뢰가 급상승하며 어제 설원이 "미실을 위해 죽어라"라고 했을 때 가장 먼저 죽겠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충성도를 나타내었다.

미실의 권력은 사랑에서 생겨났다. 수많은 남자들이 미실에게 충성하고 그녀의 남편이었다. 사다함 외에는 모두 전략적으로 사랑을 하게 된 것이지만, 여자 카사노바 마냥 그녀의 사랑을 받은 남자들은 모두 그녀가 자신만을 사랑한다고 느낀다. 이를 토대로 미실은 막강한 권력을 움켜쥘 수 있었으며 왕실을 장악할 수 있었다.

권력욕에 대한 욕심은 진지왕 때 황후가 되고 싶은 마음에 진지왕을 꼬셔서 비담을 낳게 되지만, 진지왕이 자신을 황후에 올릴 계획이 없다는 것을 알고 비담을 버림과 동시에 진지왕을 폐위하고 진평왕을 왕의 자리에 올려놓기도 한다.

여기서 미실은 비담을 죽일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는다. 정말 진지왕에 대한 분노가 사무쳤다면 죽여도 시원찮을 것이었을지 모르지만, 모성애가 가득한 미실은 아무리 권력욕이 강하다하여도 자신의 아들을 죽일 수 없었던 것이다.

비담은 문노의 손에 자라게 되었고, 덕만을 도와 미실의 앞에 나타났을 때 미실은 불안함보다는 미안함이 더 컸을 것 같다. 그 후 덕만이 미실을 가까스로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비담 때문이었고, 비담은 미실이 계속 살려주었다.

어떻게 보면 미실은 비담이 자신의 편에 서지 않기를 원했을지도 모른다. 비담이 덕만을 사랑하고 있기에 쉽지는 않았을테지만, 미실은 비담을 자신의 편으로 데려올 수도 있었다. 비담이 그토록 원하는 따뜻한 엄마의 손길을 한번 주기만 하면 비담은 분명 흔들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수리의 새끼처럼 높은 벼랑으로 끌고 가서 밀어버리고는 바닥에 추락하기 바로 직전에 날개로 받아 훈련시키는 것처럼 미실은 비담을 계속 살려주며 덕만의 편에 있게 한다. 그리고 마지막엔 권력욕보다 모성애가 더 강해져 자신이 여왕이 될 수 있던 기회를 놓치게 된다.


미실 자신이 죽으면 자신의 식솔들은 모두 죽거나 어렵게 될 것이라는 것을 미실은 알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자녀 중 한명이라도 덕만의 편에 남아 살아남기를 원해서 비담을 덕만의 편에 두게 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끝까지 미실은 비담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내지 않고, 자신을 왜 죽이지 않았냐는 비담의 질문에 미실은 "실수다"라고 말하게 된다.

비담은 미실을 단번에 넘어뜨릴 수 있는 편지를 덕만에게 건네주지 않게 되고 오늘 저녁 미실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후 비담의 행보는 어떻게 될까? 역사로 보면 선덕여왕이 죽기 3일 전 비담은 난을 일으키고 유신과 알천에게 제압당해 결국 죽게 되고 만다.

비담과 미실이 없었다면 선덕여왕은 앙꼬없는 찐빵일 것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미실이 비담을 향한 모성이 있었기에 더 재미가 있었던 것 같다. 냉혹할 것만 같은 미실 속에 있는 따뜻한 어머니의 정이느껴지는 선덕여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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