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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나눔과 봉사활동으로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은 김장훈씨를 직접 만나보게 되었습니다. 50일 쯤 후에는 3년간 미국과 중국으로 가기에 앞으로는 국내에서 보기 힘들어질 김장훈씨를 만난 이유는 바로 발렌타인데이 솔로파티 때문이었죠. 

 
페이스북으로 신청을 받아 당첨된 분들만 초대받은 처음처럼 & 김장훈의 발렌타인데이 파티가 홍대의 광동포차에서 열렸습니다. 발렌타인데이라 그런지 홍대에는 사람들이 정말 많더군요.


행사장 안에는 벌써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포차이다보니 무대와 매우 가까웠어요. 어떤 행사가 진행될지 매우 기대가 되었습니다. 

 
무대는 안쪽과 바깥쪽에서 모두 볼 수 있었는데요, 포차 안이 가득 매울 정도로 많은 분들이 참여해 주셨어요. 

 
당첨자 확인을 하고 들여보내 주었는데 이 분들 등 뒤에 붙어 있는 문구를 보니 런닝맨을 생각나게 하네요. 몰래 뒤로 가서 뜯어버리고 싶은 욕망이...;;


용춘 브라더스의 진행으로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용춘 브라더스를 모르신다고요? 네. 저도 몰랐습니다. 김장훈씨와 함께하는 용춘 브라더스는 앨범까지 낸 댄스 그룹이더군요. 무엇보다 진행을 맛깔나게 아주 잘 하였습니다. 이런 행사들에 자주 갔었는데 컬투 이후에 라이브 진행을 이렇게 잘 하는 분들은 처음이었어요. 


용춘브라더스의 진행으로 어느 정도 분위기가 무르익자 김장훈씨가 장미 꽃다발을 양동이에 넣어서 도착했습니다. 오늘 솔로들을 위한 선물이겠죠? 


 우월한 기럭지에 스타일리쉬한 모습이 나이를 가늠할 수 없게 만들더군요. 포차의 특성 상 무대와 매우 가까워서 정말 바로 앞에서 김장훈씨를 보게 되었습니다. 


 용춘브라더스와는 호흡을 많이 맞춰 본 듯 죽이 척척 맞았는데요, 순식간에 솔로파티의 분위기는 후끈 달아올랐습니다. 


 
처음처럼 행사이니만큼 처음처럼으로 다들 건배를 하며 본격적인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다들 솔로파티에 초대받고 와서 모르는 분들인데 처음처럼과 함께 자연스럽게 친해지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리고 와 주신 김장훈씨께 선물이 증정되었는데요, 바로 장훈처럼과 독도처럼 한정판 소주였습니다. 세상에서 단 한병 밖에 없는 장훈처럼과 독도처럼이 선물로 주어졌는데요,

 
바로 이런 모습입니다. 처음처럼을 패러디하여 만든 독도처럼과 장훈처럼. 마치 합성한 것 같죠?

 
뒷편의 라벨은 더 디테일합니다. 독도의 모습과 김장훈씨의 사진이 이런 소주가 정말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완성도가 높았습니다.

 
병목 라벨에도 디테일이 살아있었는데요, 장훈처럼에는 "오늘 제대로 놀아보자!", 독도처럼에는 "오늘만큼은 외롭지 않아!"라는 문구가 쓰여져 있네요. 독도는 대한민국 영토입니다! 

 

 
장훈처럼과 독도처럼 선물을 받고 신기해하는 김장훈씨. 독도에 관해서는 역시 김장훈씨를 빼 놓고 이야기할 수 없죠? 이번에도 4월 7일 출국을 앞두고 3.1절 행사를 강행하기로 발표했는데요, 3.1절에 특별한 행사를 한다고 하니 정말 기대가 됩니다. 이 날도 독도에 대한 김장훈씨의 애정을 말하며 독도처럼과 장훈처럼을 만들어 준 처음처럼에 감사를 표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김장훈쇼~! 라이브 콘서트의 대가인 김장훈씨. 역시 관객과 소통하는 무대를 만들어갔는데요, 관객들을 직접 무대로 불러내어 이야기를 나누고 춤까지 같이 추었습니다.

 
매우 신나보이죠? 분위기는 거의 홍대 클럽 분위기였습니다.

 
솔로파티에 온 커플 포착. 그냥 넘어갈 김장훈씨가 아니죠. 솔로부대들의 진지로 쳐 들어온 커플.

 
김장훈씨의 짖궂은 장난에 남자친구의 가슴은 부글 부글 끊습니다. 

 
하지만 이런 열창을 해 주니 마음이 풀어지지 않을 수 없겠죠? 무대로 나와 즐거움을 준 커플을 위해 김장훈씨의 열창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스라엘로 영어를 배우러 간다는 한 관객과의 듀엣으로 노래도 불렀어요.

 
열심히 사진 찍는 저를 위해 포즈까지 취해주신 김장훈씨. 김장훈씨와 함께한 발렌타인데이 솔로파티는 3시간여동안 계속 되었습니다. 정말 대단한 열정이었는데요, 좁은 무대에서 관객과 서로 친구처럼 이야기하며 무대를 즐기는 김장훈씨를 보며 이런 것이 프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처럼과 함께한 김장훈의 발렌타인데이 솔로파티. 정말 흥겨운 파티였습니다. 앞으로 김장훈씨를 당분간은 보지 못하겠지만, 앞으로도 이런 파티가 종종 있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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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타인데이였던 오늘 여러 사람들이 투신 자살하는 일이 발생했다. 오늘 하루만 3곳에서 4명이 지하철 투신 자살로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악몽같은 발렌타인데이의 슬프고 안타까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응봉역에서 난 사고는 시체를 수습하던 장례직원이 전동차에 치어 사망하는 사태까지 벌어져 더욱 안타깝게 만들었다. 이런 일들이 발렌타인데이에 일어난 것이 나에게는 옛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벌써 10년전의 이야기가 되었다. 우리 집도 IMF를 정면으로 맞았고 집은 마산을 거쳐 부산으로 이사간 상태였다. 대학을 다니던 나는 서울에서 생활했어야 했고 기숙사에서 나와야 했던 방학 때라 친구 집을 전전하며 자고 때로는 노숙을 하기도 했다. 모두가 어렵고 힘들었던 그 시절, 2월 14일은 유난히 더욱 추웠다. 짐을 줄이기 위해 나는 옷이란 옷은 다 껴입고, 겉에는 어울리지 않는 롱코트를 걸치고 다녔다. 롱코트는 이불로도 유용하게 쓰였기에 발목까지 오는 그 긴 코트를 꼭 입고 다녔다.


1999년 2월 14일, 여느 때와 같은 차림으로 나는 재워주기로 한 친구내 집으로 가기 위해 회기역에서 국철을 타기 위해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용산행 국철을 타야 했는데 워낙 가끔 와서 "띠리리리~"소리가 들리면 냅따 뛰어야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다. 다 내려와서 벨이 울리면 참 좋을텐데 머피의 법칙도 아니고, 꼭 계단을 내려오려 하면 "띠리리리~" 벨이 울리기 시작해서 긴 계단을 허겁지겁 내려오는 일이 많았다. 역시나 계단을 내려오려 하는데 "띠리리리~" 벨이 울리기 시작했고, 혹여라도 놓칠까봐 난 냅다 계단을 뛰어내려왔다. 그런데 사람들이 계단 옆에 수십명이 모여서 철로를 보고 웅성 웅성 되고 있었다.

평소라면 별 관심없이 지나쳤을텐데 워낙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어서 사람들 틈을 헤치고 무슨 일인가 보았다. 사람들은 모두 '어떡해'를 연발하고 있었다. 앞으로 가서 보니 한 남자가 철로에 누워서 자살을 시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때마침 "띠리리리~" 열차가 전역에서 출발했다는 벨이 울렸기에 긴박한 상황이 된 것이다. 하지만 모두 바라만 보고 있었지 그를 구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21살 어린 나이에 의협심과 무모함이 충만하던 그 시기. 뒤늦게 온 나는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만 쏠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무도 뛰어내려가 구하려는 사람은 없었고, 누구라도 그 남자를 구해야 하는 급박한 상황이었다. 그런 중압감에 누가 뒤에서 밀치기라도 한 듯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철로로 뛰어들고야 말았다. "아뿔사!" 뛰어내리고 보니 열차가 저 앞에서 불빛을 비치며 경적을 울려대었다.

식은 땀이 줄줄 나고 여자들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나는 얼른 그 남자를 일으켜 세워 올리려 했으나 그 남자는 죽기를 작정한 듯 꼼짝도 안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우리를 보았는지 열차가 20,30m쯤 앞에서 멈춰선 체 경적을 울리고 있었다. 정신이 번뜩난 나는 그 남자를 억지로 일으켜 세웠고 위에 있던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위로 올려 놓았다.

사람들은 내가 그 남자와 일행이라 생각한 듯 하였다. 나와 그 남자를 남겨두고 모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열차를 타기 시작했다. 정신이 쏙 빠진 나는 그 남자에게 따지듯 말하였다. 도대체 왜 그런 짓을 했냐고 말이다. 그 남자는 술에 취해 술냄새가 진동을 하였고, 손에는 조그만 상자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내게 자살을 시도한 이유를 설명했다.

요지는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가 있는데 IMF로 인해 집안이 어려워지자 그 여자가 변심을 했고, 그 마음을 돌리고자 돈을 모아 초코렛을 사서 프로포즈를 했는데 그 여자가 거절을 해서 술 마시고 자살하려 했다는 것이다.

허허... 좀 어이가 없었다. 여자 때문에 귀한 목숨을 버리려 하다니 말이다. 게다가 내 목숨 걸고 구한 사람의 이유 치곤 좀 허탈했다. 그러고 있는데 역무원이 내려왔다. 난 그 사람을 역무원에게 인도하고 내 갈 길을 가려했는데, 이 역무원은 우리에게 다가오더니 철로에 뛰어내려가면 어떡하냐며 나무라기 시작한다. 난 저 사람을 구하기 위해 내려간 것이었다고 설명했으나 그래도 역무원이 올때까지 기다려야지 무작정 뛰어내려가면 어떡하냐며 다시는 그러지 말라 일렀다.

당시에는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다음부터는 남의 일에 끼어들면 안된다는 교훈을 얻기까지 하였다. 몇년 전 대구 지하철에서 사람을 철로에서 구한 고등학생이 상을 받은 것을 보고는 좀 억울한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내 나름대로는 법을 어겼어도 내 손으로 생명을 살렸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그 상황이 보상되고도 남았다.

결국 역무원에게 동급으로 취급받고 실컷 혼나고야 말았다. 그 남자를 역무원에게 넘겨주겠다는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고, 그 남자 혼자 놔두면 또 뛰어들 것 같아서 그의 집을 물어 집까지 바려다주기로 했다. 왕십리가 집이었던 그를 데리고 왕십리까지 가는 내내 그의 억울함을 들어주느라 사람들의 시선을 따갑게 받았으며 지하철 밖에까지 바려다 주었다.

제2의 IMF라고 하는 2009년의 발렌타인데이. 철로에서 4명이나 자살을 하였다. 상상도 못할 각자의 고충과 어려움이 있었기에 죽음을 선택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죽음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강도는 다르지만 한계를 넘어서는 어려움을 이겨내고 살아가고 있다. 아무도 몰라줄 것 같은 나만의 고통은 실제로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통이다. 그 고통을 나누면 반이 되었을텐데 소통의 부재와 소외가 결국 이런 참담한 악몽같은 결과를 낳고야 말았다.

빛이 강하면 어둠도 강하듯, 사랑을 표현하는 아름다운 발렌타인(Valentine)의 빛 이면에는 소외와 고독이라는 슬픈 발렌타인(Balentine)의 어둠이 있는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발렌타인데이. 이제는 주위 사람에게 관심을 나타내는 문화로 거듭났으면 좋겠다. 한가지 더불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블로그를 권하고 싶다. 비록 때로는 악성댓글에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소통과 공유 그리고 대화의 창문인 블로그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들도 마음껏 하고 고통을 공유함으로 그 아픔을 이겨나갈 수 있는 도구로 쓰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 문득 그 자살하려던 학생이 떠오른다. 10년이 지난 지금, 그도 10년 전의 일을 추억으로 간직한채 힘차게 하루를 살아나가고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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