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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와 동명이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이종범 2008. 11. 21. 06:28

돼먹은 영애씨에서 나오는 두 동명이인이 있으니 바로 이영애와 장동건이다. 산소같은 여자 이영애와 숨 넘어가게 잘 생긴 장동건이 나오는 막돼먹은 영애씨는 이런 동명이인으로 살아가는 두 평범한 회사원의 애피소드들을 보여준다. 산소같은 여자 이영애와는 전혀 딴판으로 생긴 영애씨는 어디를 가나 이름이 불릴 때면 주위 사람들로 부터 웃음거리가 되곤 한다. 장동건과 이영애가 함께 등장하기라도 하는 날엔 주위 사람들의 배꼽이 빠진다.


블로그 필명과 같이 내 이름은 이종범이다. 그리고 바람의 아들 이종범과 동명이인이다. 요즘 세대들은 잘 알지 모르겠지만, 내가 학창시절 때인 10여년 전에 이종범의 인기는 초절정이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라 신문과 TV만 보았었는데, 이종범은 항상 스포츠신문 1면과 스포츠뉴스 첫장면을 장식하곤 했다. 어떤 날은 일주일 내내 이종범에 관한 기사가 스포츠신문 일면에 난 적도 있었다.

덕분에 난 엉겹결에 유명세를 치르게 되었다. 중학교 때부터 시작된 이종범의 인기는 중고시절 내내 선생님들로부터 이종범의 타율 및 도루 횟수를 질문받게 하였다. 매번 물어보시면서 모르면 이종범이 그것도 모르냐고 핀찬을 주시기에 난 이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이종범의 타율과 도루 횟수를 외우고 다녔다.

대학을 가서도 출석을 부를 때면 내 이름에서 꼭 한번 멈추었다. 모든 강의마다 똑같은 반응이었다. 순간 정적이 잠시 흐르고, 교수가 어? 야구선수가 왜 여기에? 하면 모든 학생들이 배꼽을 잡고 웃었다.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군대에 가서도 이름으로 인해 놀림을 당할 때가 많았다. 하필 그 때 김응룡 감독이 "오~ 동렬이도 없고, 종범이도 없고"라는 유행어를 만들어 내셔서 어디를 가나 그 소리를 들을 수 밖에 없었다. 조교부터 고참까지 모두 심심하면 그 유행어를 했고, 나는 내 이름이 나올 때마다 "이병 이종범" 이라고 관등성명을 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꼭 그렇게 피해만 본 것도 아니다. 오히려 장점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스타와 동명이인인 사람은 스타의 인기가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다행히도 이종범 선수는 단 한번도 안좋은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언제나 노력과 성실 그리고 천재적인 야구 솜씨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좋은 이미지를 남기고 있다. 나 또한 그 이름 덕을 보고 있다. 사람들은 내 이름에 대해 크게 반감을 가지지 않고, 놀리긴 해도 오히려 좋은 이미지를 갖게 된다. 후광효과라 볼 수 있을 것 같다.

더구나 내 이름은 한번 들으면 왠만해서는 잊지 않는다. 기독교인인 나는 자칭 성령의 바람의 아들이란 별명을 붙였다. 그리고 어디가서 소개할 때 성령의 바람의 아들 이종범이라 소개하면 절대로 내 이름을 잊는 사람은 없었다. 자기 PR의 시대라고 하는데 난 그 부분에서 이미 점수를 따고 들어간 셈이다. 야구에 대한 나의 관심도 높아졌다. OB베어스 팬이었던 나는 이종범 선수로 인해 결국 해태팬부터 기아팬까지 쭉 이종범 선수가 속해있는 팀의 팬이 되었다. 처음엔 사람들이 넌 이종범이면 해태팬이어야지 하며 핀찬을 주어 해태팬을 했지만, 이제는 스스로 이종범 선수의 팬이 되어 이종범 선수가 속한 팀의 팬이 되었다.

 
심지어는 일본 사람들도 내 이름을 안다. 일본에 출장을 가서 일본분들과 미팅을 했을 때 이름을 말하고 주니치 드레곤스 한마디 하면 모두 내 이름을 기억해주어 이종범 선수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WBC를 통해 세계에 알려졌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동네 할인마트에 이종범 선수가 싸인회를 온 적이 있었다. 3,4시간 정도 기다려야 하는 긴 줄이었지만, 이종범 선수를 만나야 한다는 역사적 사명감에 불타서 끝까지 기다려 이종범 선수에게 싸인을 받은 적이 있다. 조금 머리를 써서 학생증에 싸인을 받았다. 그 때 이종범 선수가 학생증에 싸인을 해 주면서 이름을 보더니 "어? 학생도 이종범이네? 공부 열심히 하세요~!"라며 말해주었던 것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해서 이종범 선수와 같은 대학을 다니게 되기도 하였다. 이종범 선수와는 개인적으로(혼자서만) 인연이 깊다고 생각한다.

요즘 은퇴에 대한 이야기로 다시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이종범 선수를 보니 참 여러가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다양한 의견들이 있지만, 나는 전적으로 이종범 선수의 의견을 지지한다. 팀을 옮긴다면 나 또한 팀을 옮기게 될 것 같다. 혈연, 지연, 학연보다 더 질긴 것이 아마도 동명이인이 아닐까 싶다. 물론 나만 그렇게 생각하지만 말이다. ^^; 아! 또한 나와 동명이인인 여러 "이종범"인 분들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싶다. 언제 기회가 된다면 만나서 모든 "이종범"을 대표하여 감사하다고 전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