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뷰

나는 가수다, 재도전의 딜레마에 빠지다.

이종범 2011. 3. 22. 08:49
한번의 실수가 모든 것을 어긋나게 했다. 높은 빌딩을 지을 수록 각도가 중요하다. 0.1도만 잘못 올라가도 위에서는 무너질 수 밖에 없다. 멀리 갈수록 방향이 중요하다. 0.1도만 달라져도 로케트는 안드로메다로 가게 된다. 딱 한번의 잘못된 결정이 프로그램 전체에 영향을 주는 일이 발생했다. 

김건모의 재도전


사건의 발단은 김건모의 탈락에서 되었다. 누가봐도 김건모는 못불렀다. 김건모가 국민가수인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으나 그 날은 못 불렀다. 못 불렀다기보다 다른 가수들이 잘 불렀다. 그래서 청중 평가단은 5번째에 부른 김건모보다 잊혀지기 쉬운 첫번째로 부른 윤도현에게 높은 점수를 준 것이다. 그래서 7위가 되었다.

탈락 발표를 했을 때 김건모를 떨어뜨릴 정도면 나는 가수다는 성공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갑자가 이소라가 격한 반응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정말 김건모를 좋아해서 그럴수도 있었겠지만, 프로그램 취지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전관예우의 차원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떤 조직이든 조직이 형성되면 위계질서나 문화가 존재하기 마련이니 말이다. 그러다 김영희 PD가 립스틱 퍼포먼스 때문에 떨어진 것 같다며 자신의 입장을 이야기했다. 아마도 김건모를 위로하기 위해서 던진 말이었을텐데 김제동이 그 말을 가지고 제동을 걸었다. 실력 때문이 아닌 립스틱 퍼포먼스 때문이라면 재도전을 용인해주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며 말이다. 분명 김영희 PD의 개인적인 생각이라 밝혔는데 무슨 생각으로 김제동은 그걸 걸고 넘어졌을까? 김영희 PD가 김제동의 말을 들어주었다는 것은 스스로 나는 가수다의 순위 결정은 김영희PD 자신이 한다는 것을 밝힌 셈이다. 



김건모에게 판단을 넘겼다. 재도전의 의사가 있는지 물어본 것이다. 나머지 가수들이 모두 찬성한다면이란 조건을 붙였지만, 그 자리에서 어떤 간 큰 가수가 김건모의 재도전을 거부할 수 있겠는가. "가수분 모두 김건모씨의 재도전에 찬성하십니까?" 가장 멍청하고 어리석은 질문이었다. 그리고 김건모는 못이기는 척 재도전을 한다. 이로써 모든 것이 어그러지게 되었다. 

제작진-고정 가수 탄생


재도전의 의미는 나는 가수다에 굉장히 위험한 룰이다. 7명에게 모두 한번씩의 재도전 기회가 주어진다. 그리고 김건모는 이제 한번을 사용했다. 그리고 오디션을 위한 방송은 2주에 걸쳐 방송된다. 즉, 골고루 한번씩 재도전을 하게 된다면 새로운 가수가 나오기까지는 총 14번의 오디션을 보아야 하고, 이는 28주가 걸린다. 1년의 반을 7명의 가수로 갈 수도 있다는 뜻이다. 방송이 매번 되는 것도 아니가 명절이나 특수한 일이 발생하면 빠지게 되는 날도 있다. 이럴 경우 거의 1년을 7명의 가수로 가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수에 따라서 메니저인 예능인들도 바뀌게 되어야 하는데 이제 고정 MC 체제로 가는 셈이나 마찬가지가 되는 것이다. 이 말은 정말 재미있게 하지 않으면 지루한 프로그램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나는 가수다에 핵심은 감동적인 노래이다. 현존하는 최고의 가수들이 나와서 부르는 혼신을 다한 노래. 그것이 메인인데 매 주 똑같은 가수들의 노래를 1년간 듣게 된다면 감동보단 지루함이 먼저 들게 될 것이다. 

가수-재도전, 2배 이상의 타격


김건모가 재도전을 하게 한데에는 이미지라는 것이 한 몫했다. 가수로서 이미지가 나빠질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우려를 했던 것이다. 이는 김건모가 소속사 사장에게 상황을 전달한 것을 봐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재도전은 깊은 수렁으로 빠지는 입구이다. 박명수가 정확히 찝어내었듯 재도전을 하고 나서 또 떨어지게 된다면 그건 이미지에 엄청난 타격이 된다. 첫번째야 그 날의 컨디션이나 환경 때문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두번째는 실력 때문에 떨어진 것이라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대중가수가 뮤지션에게만 인정받으면 의미가 없다. 그들 스스로도 대중의 사랑을 먹고 산다고 하는데, 대중으로부터 냉철한 평가를 받게 된다면 나는 가수가 아니다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김건모가 재도전을 선택한 것은, 그리고 다른 가수들과 김제동이 재도전을 독촉한 것은 김건모를 도와준 것이 아니라 김건모를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게 만든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청중- 배신감


청중들의 반응은 하나의 단어로 귀결된다. "배신감" 방송을 본 사람이라면 모두가 시청자를 우롱하는 제작진의 한심한 작태를 온몸이 오그라들 정도로 느꼈을 것이다. 믿었던 도끼에 발등을 찍힌 셈이다. 청중은 처음부터 안중에도 없었고, 오직 가수들의 스크럼만이 눈에 보였다. 그들끼리의 암묵적인 유대감과 압박이 제작진의 눈에는 들어왔던 것이다. 비싼 돈주고 섭외한 가수들이 단체행동을 할 수도 있는 상황이나 제작진의 입장에서는 순간 눈 앞의 돈이 생각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시청자는 안중에도 없었기에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재도전을 용인하지 않고 김건모를 탈락시킴으로 가수들이 단체로 안나오게 된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우선 시청자들이 가만있지 않았을 것이다. 가수들의 단체 행동에 대해 비난을 했을 것이고 이는 청중의 사랑을 받아야 존재하는 가수들에게는 치명타이기에 이런 단체 행동은 와해되었을 것이다. 원칙을 지켜서 피해를 보았기에 나는 가수다는 계속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었을 것이고, 소신을 지켰기에 감동적이고, 멋진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나는 가수다는 일밤을 살리는 영웅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가수다는 반대의 결과를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이미 신뢰는 안드로메다로 나가버렸다. 나는 가수다는 PD의 역량에 의해 좌우되는 니가 가수냐?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나는 가수다에 나오는 가수들도 신뢰를 잃게 되었다. 이제 나는 가수다의 무대에서 부르는 그들의 노래에 감동은 더 이상 없다. 그들만의 잔치가 되어버린 것이고,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미 댓글이나 시청자 게시판, 소셜 네트워크에서는 나는 가수다에 실망하고 등을 돌려버린 사람들이 많음을 볼 수 있다. 즉, 나는 가수다는 일밤의 영웅이 아니라 역적이 되어버린 것이다. 단 한번의 실수로 인해 말이다.

나는 가수다가 만회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딱 한가지 있다면 다시 번복하여 원칙을 고수하는 것이다. 김건모의 재도전을 없에고, 재도전 룰을 없에며, 가수들의 더 강한 반발에도 버틸 자신감을 보여주는 것이 방법이긴 한데 절대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일어났다면 진작에 그 자리에서 가수들의 제안을 거절했을테니 말이다.

청중평가단이라 하지 말고 그냥 방청객이라고 하는게 좋을 것 같다. 더 이상 청중평가단은 의미가 없다. 차라리 이럴바에는 꼴찌를 탈락시키는 것이 아니라 1등을 탈락시키는 것이 더 낫지 않았나 싶다. 이 정도의 반응에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할 거면서 왜 이런 컨셉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었는지 이해가 안된다.

청중평가단에게 잘 보이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던 가수들의 노래는 이제 김영희 PD에게 잘 보이기 위한 노래로 전락해버렸다. 단 한번의 실수로 인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