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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 2일의 나영석 PD가 무엇을 하고 있나 궁금했는데 리얼체험 프로젝트 인간의 조건을 연출하고 있었다.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4부작 편성된 리얼 체험 프로젝트 인간의 조건은 개콘 멤버들이 나와서 휴대전화, TV, 인터넷을 금지하고 1주일간의 모습을 그린 좌충우돌 다큐라이어티(다큐+버라이어티)였다.  

김준현, 김준호, 양상국, 허경환, 박성호, 정태호가 한 게스트 하우스로 들어가서 1주일간 합숙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단 TV와 휴대전화, 인터넷이 없이 지내는 것이다. 개인 스케줄을 따라다니며 있는 그대로 일상을 보여주고, 스케줄이 없으면 합숙 장소로 와서 있어야 하는 것이 룰이다. 아무런 정보 없이 온 개콘 멤버들은 스마트폰을 뺏는다는 소리에 허겁지겁 연락처와 스케줄을 받아적기 시작했다. 마지막 전화통화에서는 자신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사람, 혹은 커넥트가 될만한 사람과 연락을 취했다.

스마트폰을 압수당하자 멤버들의 일상은 엉망이 되어버렸다. 합숙 장소에서 나와서 매니저를 찾는 것부터 큰 일이었다. 연락이 되지 않으니 어디에 주차를 해 두었는지 알 수가 없어서 동네를 뱅글 뱅글 돌다가 마침내! 매니저를 찾아내자 매니저를 너무나 반기는 멤버들의 모습을 보며 이 프로그램에는 뭔가 메세지가 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멤버들은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는데 여러 애로 사항이 있었다. 특히 스마트폰이 없으니 금단현상이 일어나고 주변에 시선을 돌릴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집에서 있을 때 TV와 인터넷, 스마트폰이 없이 단 10분도 혼자서 다른 일을 하는 것이 어색하고 심심해하다가 동료들이 집에 들어오자 어색했던 사이도 금새 친해질 수 있었다. 



내용은 별 내용이 없다. 그냥 개콘 멤버들을 따라다니며 찍는 것 뿐이다. 단 TV와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없다는 설정하에서 말이다. 그런데 그 설정만으로 설정 안에 들어온 모든 평범한 것들이 너무나 재미있었다. 매니저를 찾아 해매는 것이나, 공중전화를 찾기 위해 돌아다니는 것이나, 그 공중전화에 동전을 넣는 모습이나, 주변의 사람들이 좀비처럼 스마트폰만 바라보고 있는 모습, 양상국이 할일이 없어서 싱크대 청소를 하는 모습까지 하나 하나가 다 재미있었다.

실은 그 웃음 포인트는 추억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이다. 불과 몇년전만 해도 익숙했던 풍경이었는데 그것이 이제는 아날로그적 추억이 되어버리고 말았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고 현실과 괴리된 모습에서 웃음을 느끼게 되었다. 전화가 오면 종이에 메세지를 적어 놓고 집 안의 다른 가족들이 볼 수 있게 해 두는 것이나, 전화번호를 외우는 일이나, 공중전화로 전화를 하고 남은 금액이 있으면 다음 사람을 위해 수화기를 올려 놓는 것이나 스케줄을 다이어리에 정리하고 사람들과 좀 더 웃고 떠들며 이야기했던 때가 불과 몇년 전 우리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금 스마트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인간은 스마트해졌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더욱 스튜피드해진 것 같다. 모든 사람들은 거북목이 되어 스마트폰을 바라보고 있고, 수많은 앱 개발자들은 어떻게 하면 킬링타임을 없앨 수 있을까 하며 남은 짜투리 시간까지 점령하려 하고 있다. 개콘 멤버들의 말대로 좀비처럼 되어 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람과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카톡을 날리는 모습은 이제 새로운 인간의 소통방법이다.  

SNS는 인맥을 더욱 넓혀주긴 하지만 매우 얇고 넓게 넓혀준다. 이제 SNS는 점차 프라이빗해지고 버티컬한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런 발전 양상은 인간 관계를 온라인 상에서도 매우 고립되게 만들 것이고, 인간의 소외감과 고독감을 해결해주고자 등장한 SNS는 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오히려 오프라인에서 단절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TV와 인터넷, 스마트폰을 소거하니 바로 "사람"이 보인다고 인간의 조건은 말하고 있다. 말이 더 많아지고, 어색했던 사람과 더 소통하게 되고, 주변을 바라보게 되고, 더 건강해지게 되는 것. 그것은 SNS를 더 많이 한다고 해서, 스마트폰의 새로운 앱을 다운받는다고 해서, 최신 기법의 다이어트와 헬스를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TV와 인터넷과 스마트폰만 없에도 이루어질 수 있는 일들이었다. 

인간의 조건은 다큐멘터리도 아니고 버라이어티도 아닌 중간 형태의 새로운 장르로서 버라이어티에 약한 개콘 멤버들도 충분히 재미를 줄 수 있는 포맷 안에 있다. 그러다보니 약간은 인위적일 수 있는 버라이어티보다 더 리얼리티를 살릴 수 있었고, 재미 또한 줄 수 있었던 것 같다. 게다가 간단한 설정만으로 시대에 화두를 던지는 메시지까지 줄 수 있었다.

역시 나영석PD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멋지고 재미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첫출발과 불리한 시간대라는 것을 감안하면 5%라는 시청률은 꽤 높은 시청률이다.  4주 후에 정규편성이 되어 더 많은 인간의 조건들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오랜만에 기분 좋은 예능을 만나게 되어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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