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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노의 반란이 시작되었다. 아니, 정확히 이야기하면 백성의 반란이 시작된 것이다. 민초의 삶은 항상 착취당하고 부당한 일에 익숙해지고, 그것이 숙명인 것처럼 살아가야 하는 것이었는데, 대길이와 업복이를 주축으로 대반란이 일어나고 있다. 사회를 향한 시선이 삐뚤건, 올바르건 이제 보수 권력에 대한 백성들의 징계가 시작된 것이다.
모두가 우연히도 한날 한시에 움직이기 시작하고, 최고 권력을 향한 일사분란한 움직임들은 세상의 변화를 예고한다.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닌 것처럼 자신의 친척과 아들까지 죽여야 하는 궁궐은 결국 파괴되고 변화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사회를 향한 자조적인 목소리, 대길
대길이는 말한다. 대충 살라고... 인생 뭐 있냐고 하며 마누라와 애 새끼 있고, 농사 지을 조그만 땅 하나 있으면 그것이 행복이 아니냐고 말한다. 귀한 양반 집 자제로 어려움 없이 자란 대길은 그의 얼굴에 스크레치만큼이나 힘든 삶을 살아왔다. 강호 최고수들인 개백정과 천지호, 짝귀에게 모든 무술을 전수받기까지는 대길이가 얼마나 힘들고 고단한 삶을, 그리고 수많은 죽음의 위기에 놓였었는지 보여준다.
담금질을 많이 한 쇠처럼 더 이상 단단해질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해진 대길이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삐딱하게 된다.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없고, 그저 자족하며 사는 것이 최고라며 인지상정을 버리고 도망 노비를 잡는 추노꾼이 되어버린 것이다.
사회를 향한 적극적인 목소리, 업복
업복이는 대길에게 다시 잡힌 도망 노비이지만, 그는 평양에서 알아주는 스나이퍼였다. 그리고 총으로 양반들의 머리에 총구멍을 내는 일을 함으로 세상을 뒤집으려 한다. 권력의 핵심에 총구를 들이댄 것이다. 업복과 같은 뜻을 가진 수많은 노비들은 양반이 가르쳐 준 검술로 양반의 목을 자르게 되었고, 그들의 총구는 권력의 핵심을 향하게 된 것이다.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그저 시키는데로 살다가 죽어가는 것이 숙명인것처럼 살아가는 노비가 있는가하면, 업복이와 같이 세상을 향해 큰 소리를 내고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싸우는 노비도 있었다. 그것이 또 다른 권력을 낳는다해도, 지금의 부당한 현실을 뒤집고 싶어하는 것이다.
권력자의 깨달음, 송태하
하지만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떤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지 모른다. 그저 자신의 권력에 취해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짐승보다 못한 일을 하며 살아간다. 백성들을 상대로 영의정이 소송이나 거는 것처럼 말이다. 그 자리에 있으면 권력에 취해 자신들의 목이 조여옴도 모르고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벗어나고 한참후에에 송태하처럼 무언가를 깨닫게 된다. 세상을 바꾸겠다고 하면서 자신은 다른 사람과 근본이 다르다고 말하고 다니던 송태하는 자신이 노비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인정하지 않고 권력의 맛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언년이를 만나 자신의 눈을 뒤덥고 있던 껍질이 벗겨지며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게 된다.
사람을 사람으로 대해주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것은 매우 당연한 권리이고 주장이지만, 예나 지금이나 그것은 사람의 최대 과업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의 삐뚤어진 자화상
대길이 업복이 송태하는 모두 우리 사회의 삐뚤어진 자화상이다. 사회를 구성하는 일원인 백성. 그리고 그 백성이 한 지도자의 권력에 대한 욕심 때문에 모두가 어그러지고 무너져버렸다. 대부분의 백성은 그런 현실을 받아들이고 살아가지만, 일부 백성인 대길과 업복, 그리고 송태하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때론 시니컬하게 때론 혁명적으로 때론 자아성찰을 하며 나아간다.
이런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세상은 발전하며 나아갈 수 있는 것이고 권력자들은 자신의 권력이 한낱 몽상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는 어떠한가 생각해보게 된다. 과연 우리 사회에는 노비가 없고, 추노꾼이 없고, 장군이었다가 노비가 된 사람이 없고, 남녀 차별이 없는가. 민주주의 사회는 업복이가 꿈꾸었던 세상이다. 백성이 왕이 되는 세상. 그리고 양반이 노비가 되는 세상. 그것이 민주주의 아닌가. 정치인들은 백성의 수발이 되어야 마땅한데 지금의 세상은 백성을 권력의 힘 아래 두려하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노비와 추노꾼을 만들고 있다.
그것이 결국 자신들의 목을 조여매는 것임을 모르고 말이다. 역사는 반복되기 때문일까, 아니면 사극이 현실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인가. 추노를 보며 느끼는 것은 너무도 우리의 사회에 닮아있다는 것이고, 추노가 던지는 메시지는 매우 강렬하고 단순하여 추노를 보는 재미를 배가 시키는 것 같다.
더러운 세상에 굴복하며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죽을 각오를 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려 할 것인가...
모두가 우연히도 한날 한시에 움직이기 시작하고, 최고 권력을 향한 일사분란한 움직임들은 세상의 변화를 예고한다.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닌 것처럼 자신의 친척과 아들까지 죽여야 하는 궁궐은 결국 파괴되고 변화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Mt. San Miguel continues to burn. San Diego wildfires. by slworking2 |
대길이는 말한다. 대충 살라고... 인생 뭐 있냐고 하며 마누라와 애 새끼 있고, 농사 지을 조그만 땅 하나 있으면 그것이 행복이 아니냐고 말한다. 귀한 양반 집 자제로 어려움 없이 자란 대길은 그의 얼굴에 스크레치만큼이나 힘든 삶을 살아왔다. 강호 최고수들인 개백정과 천지호, 짝귀에게 모든 무술을 전수받기까지는 대길이가 얼마나 힘들고 고단한 삶을, 그리고 수많은 죽음의 위기에 놓였었는지 보여준다.
담금질을 많이 한 쇠처럼 더 이상 단단해질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해진 대길이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삐딱하게 된다.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없고, 그저 자족하며 사는 것이 최고라며 인지상정을 버리고 도망 노비를 잡는 추노꾼이 되어버린 것이다.
사회를 향한 적극적인 목소리, 업복
BrickArms M21 Sniper Weapon System prototype by Dunechaser |
업복이는 대길에게 다시 잡힌 도망 노비이지만, 그는 평양에서 알아주는 스나이퍼였다. 그리고 총으로 양반들의 머리에 총구멍을 내는 일을 함으로 세상을 뒤집으려 한다. 권력의 핵심에 총구를 들이댄 것이다. 업복과 같은 뜻을 가진 수많은 노비들은 양반이 가르쳐 준 검술로 양반의 목을 자르게 되었고, 그들의 총구는 권력의 핵심을 향하게 된 것이다.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그저 시키는데로 살다가 죽어가는 것이 숙명인것처럼 살아가는 노비가 있는가하면, 업복이와 같이 세상을 향해 큰 소리를 내고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싸우는 노비도 있었다. 그것이 또 다른 권력을 낳는다해도, 지금의 부당한 현실을 뒤집고 싶어하는 것이다.
권력자의 깨달음, 송태하
하지만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떤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지 모른다. 그저 자신의 권력에 취해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짐승보다 못한 일을 하며 살아간다. 백성들을 상대로 영의정이 소송이나 거는 것처럼 말이다. 그 자리에 있으면 권력에 취해 자신들의 목이 조여옴도 모르고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벗어나고 한참후에에 송태하처럼 무언가를 깨닫게 된다. 세상을 바꾸겠다고 하면서 자신은 다른 사람과 근본이 다르다고 말하고 다니던 송태하는 자신이 노비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인정하지 않고 권력의 맛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언년이를 만나 자신의 눈을 뒤덥고 있던 껍질이 벗겨지며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게 된다.
사람을 사람으로 대해주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것은 매우 당연한 권리이고 주장이지만, 예나 지금이나 그것은 사람의 최대 과업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의 삐뚤어진 자화상
Speak up for Peace by eqqman |
이런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세상은 발전하며 나아갈 수 있는 것이고 권력자들은 자신의 권력이 한낱 몽상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는 어떠한가 생각해보게 된다. 과연 우리 사회에는 노비가 없고, 추노꾼이 없고, 장군이었다가 노비가 된 사람이 없고, 남녀 차별이 없는가. 민주주의 사회는 업복이가 꿈꾸었던 세상이다. 백성이 왕이 되는 세상. 그리고 양반이 노비가 되는 세상. 그것이 민주주의 아닌가. 정치인들은 백성의 수발이 되어야 마땅한데 지금의 세상은 백성을 권력의 힘 아래 두려하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노비와 추노꾼을 만들고 있다.
그것이 결국 자신들의 목을 조여매는 것임을 모르고 말이다. 역사는 반복되기 때문일까, 아니면 사극이 현실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인가. 추노를 보며 느끼는 것은 너무도 우리의 사회에 닮아있다는 것이고, 추노가 던지는 메시지는 매우 강렬하고 단순하여 추노를 보는 재미를 배가 시키는 것 같다.
더러운 세상에 굴복하며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죽을 각오를 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려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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