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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담배를 하면 교회에 가면 안된다. 맞는 말일까? 사회적 통념으로는 맞는 말 같지만, 성경적으로 본다면 전혀 맞지 않는 말이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치고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수많은 질문을 던져보았지만 시원하게 대답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이것이 성경적이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많은 성경 구절을 대면서 술과 담배의 금지 이유에 대해 말하지만 결국 근본적인 문제는 보지 못하는 답변일 뿐이다.

술과 담배에 관한 문제는 개인의 문제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것이 종교의 가입조건쯤으로 되어있고, 관습처럼 굳어져오고 있다. 교회 다니는 사람은 술, 담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술,담배를 하는 사람은 교회에 나올 수 없다는 이상한 장벽을 쳐놓고 있는 것이다. 그런 가입조건을 통해 걸러져 나온 기독교인들은 우월의식을 가지게 된다. 바리세인들에게 있었던 선민의식을 가지고 가입조건에 충족하지 못한 사람을 정죄하고 비난한다.

흡연실이 있는 교회
오늘 CTS를 보다가 재미있는 강의를 듣게 되었다. 만나교회의 김병삼 목사님의 강의였는데, 만나교회에는 흡연실이 있다고 한다. 1층 문 앞에 있다고 하는데 흡연실에 TV가 있어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만들어놓았다고 한다. 홉연실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본당에서 예배를 드리려 담배를 끊기도 한다고 한다.

매우 멋진 생각인 것 같다. 아니 당연한 생각이 아닌가 싶다. 기독교의 존재 목적은 복음 전파이다. 예수님께서 주신 지상명령은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이지, 땅끝에 흡연자와 음주자를 몰아넣자는 것이 아니다. 복음을 전하는데에 담배와 술 따위가 가로막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술,담배를 이유로 복음 전파의 길을 가로막고 있다.

흡연자를 위한 예배
예전에 군대에 있을 때 군종병을 겸임한 적이 있다. 산꼭대기에서 근무를 했기에 교회가 따로 없었다. 주일에는 작업을 해야 한다며 교회를 가지 못하게 했다. 어쩔 수 없이 수요일마다 했던 동아리 활동으로 종교모임을 만들려고 했다. 몇명 이상의 인원이 되어야 하기에 후임들을 대상으로 동아리 가입 여부를 물어보았다. 하지만 대부분 가입하기를 꺼려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자기는 담배를 피기 때문에 교회에 나갈 수 없지 않냐고 반문하였다.

당시 흡연자였던 나는 기도 후 담배를 피우는 예배를 만들기로 했다. 정식 동아리명은 오예수. 오면 오예스를 항상 먹을 수 있다고 그렇게 지었다. 그리고 비정식 동아리명은 SMOKING JESUS였다. 예배하기 전에 담배를 반드시 한대씩 피고 시작하고, 끝나고 같이 담배를 피었다. 그리고 마지막엔 오예스를 나눠 먹었다. 예배는 찬양예배로만 드렸다. 짬밥이 찰때까지는 노래도 못하였던 후임들은 동아리 시간을 통해 소리 높혀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담배를 피기 때문에 교회 나갈 수 없다던 사람들도 모두 나와 같이 예배를 드렸다.

물론 술, 담배가 건강에도 좋지 않고, 여러 이유로 인해 사회적 문제를 야기시키기도 한다. 요즘은 사회 문화적으로 술과 담배가 자연스레 금기시 되어가고 있다. 또한 일부러 술과 담배를 할 필요도 권유할만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술, 담배를 하는 것이 복음을 듣지 못해야 하는 이유도 아니다. 그리고 술, 담배를 하지 않는 것이 우월감을 가질 만한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복음이 전해지는 것인데, 수많은 선교사님들이 오지로 나가서 어렵게 선교의 열매를 맺는 것에 반해 관습인 술과 담배로 인해 복음의 길을 막고 있는 것은 너무도 이상하다.

교회에 카페나 서점, 쇼핑몰등 수익구조만 만들지 말고, 흡연실 한개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그것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열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어떤 사람이 내게 '그럼 예배당에 술에 취해서 한손에는 소주병을 들고, 한손으론 농구공을 튀기며(왜 농구공 이야기를 했는지는 모르겠다-아마도 담배가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들어가는 것이 옳으냐고 물었다.

난 주저없이 말한다. 만약 그것이 복음을 전하게 되고, 하나님과 가까워지기 위해 나온 것이라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이다. 오히려 문제가 되는 것은 멋진 양복을 차려입고 한손에는 성경책을 끼고 친절하게 만나는 사람마다 웃으며 인사를 하면서 마음 속에는 친구를 욕하고, 남을 탓하며, 교회의 재산을 탐내고, 교회의 권력에 아첨하거나 약자를 괴롭히는 사람일 것이다. 어떤 꼬라지를 하고 있던지 하나님과 가까워진다면 그것은 옳은 일이고, 멀어진다면 그것은 죄이다.

요즘 기독교에 대한 욕을 많이 보게 된다. 예전부터 많이 보아왔지만, 현저하게 과격해지고 흥분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진 것 같다. 기독교인들은 그것이 무엇 때문에 나온 욕인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복음의 능력으로 인해 나온 욕이 아니다.  겉과 속이 다른 하나님과 멀어지고 있는 죄 짓는 사람들을 향한 욕이다. 그리고 기독교는 그것을 옹호하려하고 있다. 학연, 지연, 혈연과 같이 팔이 안으로 굽 듯 그런 종류의 옹호이다. 비판할 것은 비판하여야 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신부님들이 존경스럽다. 왜 기독교인들은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일까...

교회에 흡연실부터 만들면 조금은 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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