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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은 화려했다. 선덕여왕은 39%의 시청률을, 천사의 유혹은 23%의 시청률을 올렸다. 수많은 캐릭터들이 장렬한 최후를 맞으며 마지막 회를 수놓은 두 드라마는 그동안 한번도 비교되지 않았지만, 진작에 비교되었어야 했던 드라마인 것 같다.

선덕여왕

선덕여왕은 방영 내내 4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유지했다. 특히 미실인 고현정이 나오는 동안은 40%를 상회하기도 했다. 수많은 이슈를 이끌어내며 제 2의 대장금 역할을 어느 정도는 수행했다고 할 수 있는 선덕여왕은 어린 덕만-미실-유신-덕만-춘추-선덕여왕-비담으로 이어지는 유동적인 중심이동으로 꾸준한 시청률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마지막은 비담이 장식했다. 사랑하기에 죽음을 선택한 비담의 이야기는 선덕여왕의 죽음까지 묻어버릴 정도로 장렬했다. 김유신의 손에 죽임을 당한 비담은 죽으며 "덕만아"라는 말을 남기는데 이는 선덕여왕과 비담의 암호같은 것이었다. 반란과 사랑을 함축하는 "덕만아"라는 단어는 딱 10보 앞에서 선덕여왕에게 입 모양으로만 알려줄 수 있는 신호였던 것이다.

춘추도 안나오고, 죽방, 고도나 나머지 인물들에 대한 친절한 설명은 없었지만, 이미 역사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이기에 비담에 집중한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나 싶다.



천사의 유혹


천사의 유혹은 처음부터 큰 이슈를 끌어내었다. 부정적인 이슈이긴 했지만 아내의 유혹 속편으로 여자가 아닌 남자가 주인공인 드라마이다. 유행어가 된 막장드라마의 대표 드라마이기도 한 천사의 유혹은 아내의 유혹만큼이나 막장스러웠다. 그래도 점만 찍어 모두를 못알아보게 한 것보단 성형수술로 패이스오프를 한 것은 그나마 좀 나아졌다고 할 수 있으나 이왕 막장으로 간 것, 확실하게 막장으로 가지 어설프게 막장으로 가서 덜 막장스러웠던 것이 아내의 유혹 시청률을 따라잡지 못한 이유이기도 한 것 같다.


마지막은 역시 자살이었다. 막장의 끝은 자살이나 살인일 것이다. 갈때까지 간 것이라는 뜻을 함포하고 있기에 말이다. 보통 우울한 감정은 자살로 흐르고, 분노의 감정은 살인으로 치닫는다고 한다. 천사의 유혹은 복수와 분노의 드라마인 것 같지만, 결말을 보면 분노 속에 숨겨져있던 자기연민과 우울을 다룬 드라마인 셈이다. 물론 분노와 우울은 일맥상통한 면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신현우의 엄마가 브레이크 고장으로 죽게 되고, 그 살인범으로 주아란을 의심하게 된다. 그리고 몰래 숨어서 여생을 살려했던 주아란은 남주승이 찾아내게 된다. 자신의 복수 대상이자 엄마를 죽인 주아란을 용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주아란은 경찰의 포위망에 둘러쌓이게 되고 자살을 선택함으로 마무리가 된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신현우의 엄마는 스스로 브레이크를 고장을 내어 자살을 선택했던 것으로 복수의 고리는 끊어지게 된다. 결론은 복수를 아무리 해도 결말은 행복하지 않기에 용서를 하자라는 것인 것 같다



이 두 드라마의 공생 관계

천사의 유혹의 타이밍은 절묘했다. 8시 50분에 시작하여 10시 5분쯤 끝나는 천사의 유혹은 절묘하게 선덕여왕의 앞부분을 잘라먹었다. 그리고 선덕여왕은 그에 맞서 처음 5분 정도는 이전 회 이야기로 채워넣는다.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절묘한 공생관계처럼 보였다.

천사의 유혹의 경쟁 상대는 9시 뉴스였다. 9시 뉴스 자리를 꿰차고 나온 천사의 유혹은 굉장히 파격적이고 공격적인 시간대를 점령한다. 집안에서는 채널권 싸움이 시작되고 천사의 유혹이 더 똑똑했음은 시청률로 밝혀졌다.



보통 집안에서 아버지는 뉴스를 보시자고 한다. 현대인은 뉴스를 봐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며, 뉴스를 보지 않으려 하는 어머니는 미개한 식으로 몰고가며 말이다. 하지만 어머니의 따발총은 아버지를 두손 들게 만든다. 뉴스야 컴퓨터에서 보면 되고, 만날 똑같은 이야기나 하는 뉴스를 보는 것보다 이게 더 재미있다며 말이다. 결국 아버지는 스포츠뉴스라도 보려는 심산으로 어쩔 수 없이 천사의 유혹을 보게 된다.

막장스런 천사의 유혹의 자극적인 스토리에 아버지는 어느새 몰입되게 되고, 저딴 드라마를 만들다니 요즘 세상 말세라 그러면서도 매일 챙겨보게 되 버리고 만다. 그나마 기대했던 스포츠 뉴스마저 천사의 유혹이 끝나자마자 선덕여왕으로 잽싸게 넘어감으로 포기해야 했고, 결국 나이트뉴스를 보시다 주무시게 된다.

천사의 유혹은 9시 뉴스와의 경쟁에서 이겼고, 선덕여왕은 월화드라마를 모두 잡아먹어 버렸다. 그리고 천사의 유혹과 선덕여왕은 어정쩡한 공생관계가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두 드라마에서 배울 점은?

다른 드라마들은 푸념을 한다. 선덕여왕 때문에, 아이리스 때문에... 못해 먹겠다며... 비겁한 변명에 불과하다. "재미없기" 때문에 안보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스토리이다. 스토리가 얼마나 꽉 차 있는지 말이다. 선덕여왕같은 제작비가 있으면 모두가 성공할 줄 안다. 하지만 우리는 돈만 쏟아부은 수많은 드라마들을 알고 있다. 우선시 되어야 할 것은 짜임새 있는 스토리다.

그리고 천사의 유혹을 통해서는 마케팅이 적극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준다. 스토리가 없어도 마케팅이 있으면 시청률은 나온다. 하지만 스토리가 없는 마케팅은 부정적인 여론을 만들고, 아무리 시청률이 높아도 나쁜 평가를 받을 수 밖에 없다. 마케팅만 훌륭한 건강에 안좋고 자극적이기만 한 패스트푸드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은 음식에 마케팅까지 더해진다면 선덕여왕같은 드라마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스토리와 마케팅이 적절히 조화된 그런 드라마들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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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힘, KBS 걸작 다큐멘터리 6부작 시리즈이다. 1회는 탐욕의 시작이었고, (2009/05/21 - [채널4 : 최신 이슈] - 탐욕의 시작, 돈의 힘) 2회는 채권, 3회는 주식에 관한 이야기였다. 역시 기대에 부응하는 멋진 다큐멘터리였다. 채권과 주식은 거품과 위기를 만들어온 주요 요인이자, 탐욕이 만들어낸 산물이었다. 채권이나 주식은 모두 전쟁으로 인해 생겨난 것이고, 전쟁은 모든 것의 아버지라는 말처럼 많은 탐욕의 결과를 만들어내었다.

돈을 벌려면 돈을 알아야 하고, 돈의 힘 6부작 시리즈는 이 돈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2008년 영국 chimerica media 에서 방영했던 것을 번역한 프로그램인 돈의 힘은 그 스케일과 내용의 방대함이 혀를 내두르게 한다. 해설자인 하버드 경제학과 교수 니알 퍼거슨 역시 해박한 지식으로 신뢰감을 형성해주며 다큐멘터리의 재미를 더하는 것 같다.


채권은 르네상스 시대에 이탈리아에서 제일 먼저 만들어져서 유럽 전역을 탐욕의 시장으로 만든 장본인이다. 채권은 전쟁에 의해 탄생하였다. 전쟁을 하려면 돈이 많이 필요한데 그 돈을 충당하려다보니 빌리는 수 밖에 없었고, 국민들로부터 군자금을 조달하기 시작했다. 세금도 세금이지만,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갚는 식의 방법이 서로에게 윈-윈하는 방법이었기에 채권은 급격히 성장하게 된다.

이 채권을 가장 잘 이용한 사람이 바로 음모론의 핵심에 서 있는 로스차일드 가문이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세계 금융의 핵심에 있어 세계 경제와 정치를 좌지우지 한다는 음모론에 항상 거론되는 가문이다. 프리메이슨이나 일루미네이션이라 불리우는 로스차일드 가문의 위력은 바로 채권에서 시작하였다. 네이슨 로스차일드는 프랑스와 영국의 전쟁을 통해 막대한 돈을 챙기게 되는데, 유럽에 성이 41채나 될 정도로 많은 돈을 벌게 되었다.

영국의 금 수송을 담당할 정도로 영국에 신용을 얻고 있던 로스차일드 가문은 형제들을 전 유럽의 금융 핵심에 심어두어 서로 네트워크를 통해 금을 사고 팔아 이득을 취하고 금 수송을 담당하였다고 한다. 금은 군사들에게 지급되는 월급으로 전쟁이 나면 군사들에게 지급되는 금이 많아지게 됨으로 금의 값이 올랐다고 한다. 그래서 로스차일드 가문은 금을 사들이게 되고, 전쟁을 통해 날로 부유해지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영국군이 프랑스군에게 승리를 하게 되고 그 승전고는 영국 의회에 전달되기 2일 전에 이미 로스차일드 가문의 빠른 소식통에 의해 전달되게 된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가장 큰 위기에 빠지게 되었는데, 이는 전쟁이 끝나자 군대가 해산되어 금을 원하는 사람이 더 이상 없게 되고, 그렇게 되면 금의 가격이 낮아지기에 금을 많이 모아둔 로스차일드 가문에는 막대한 손실을 가져오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네이슨 로스차일드는 자신의 모든 금을 영국 채권으로 바꾸게 되고, 그가 채권을 사들인지 1년만에 그 채권은 40%가 넘는 상승률을 거두어 또 다시 막대한 부를 창출하게 된다. 이 로스차일드 가문의 채권은 미국의 남북전쟁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채권이란 영어로는 bond, 돈을 빌려주었다는 증서이다.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형식의 채권은 양도가 가능하고, 채권의 가격에 의해 원금 이상의 돈을 벌 수 있는 유용한 재테크 수단이기도 하다.

하지만 채권의 가장 무서운 적은 인플레이션으로 물가 상승률보다 이자율이 낮게 되면 채권을 가진 사람은 손해를 보게 되기 때문에 채권의 가격이 낮아질 수 있다.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채권의 무서움은 역사 속에서 많이 보아왔다. 특히 아르헨티나의 몰락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부강한 나라였던 아르헨티나는 이 채권으로 인해 결국 엄청난 댓가를 치루게 되고 만다. 돈을 무작위로 찍어내어 인플레이션은 상상을 초월하게 되고, 커피 한잔을 마시려면 돈뭉치를 여러 개 내야 할 정도였다.

채권에 이어 나온 새로운 돈의 힘은 바로 주식이다. 지금도 부동산, 주식, 채권은 많은 사람들의 재테크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을만큼 잘만들어진 금융이다. 하지만, 주식은 금융위기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주식의 시작은 네덜란드에서 시작하게 되었고, 동인도에서 향신료를 사기 위해 배를 띄우면서 그 위험을 분배하고자 자본을 출자하여 유한회사를 만들게 됨으로 주식 회사가 시작된다.

회사의 자본과 경영을 분리시키는 이 주식 회사는 환불은 안되고 양도는 가능하다. 즉, 투자의 개념이 된 것이다. 채권은 이자를 받을 수 있지만, 주식은 배당금을 받을 수도 있고, 못받을 수도 있는 것이 바로 이 투자의 개념 때문이다. 아무튼 주식은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가장 잘 이용한 경제 도구였고, 사람들은 주식을 사기 위해 비이성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한다.


몇 백년 전에 그린 그림에서 주식을 발행하는 천사와 그 주식을 흥미롭게 보는 사람 그리고 자살을 하려는 사람을 보면 주식의 무서움은 예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식은 회사의 입장에서 볼 때는 투자금을 끌어올 수 있고 , 투자자의 입장에서는 위험을 분산시킬 수 있기에 매우 합리적이고 유용한 경제 도구이다. 하지만, 여기에 사람의 심리, 즉 탐욕이 들어가게 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이 주식은 순간 도박으로 바뀌게 되고, 도박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을 주식 거래소 주변에서 볼 수 있게 된다.

로또~하며 자살하는 사람이나, 주식하다 패가망신하여 생을 끊는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그리고 앞으로 미래에도 계속될 것이다.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라고 말한 주식의 대가 앙드레 코스톨라니의 말처럼 주식을 하는데 있어서는 주식의 속성을 철저히 공부하고 준비가 되어야 있어야 할 것이다.

돈은 여자와 같아서 따라가면 더 멀어진다는 소리가 있다. 돈은 벌기 위해 혈안이 된 사람에게는 돈이 따라붙지 않는다. 냉철하고 분석적인 전략을 통해서 돈을 벌 수 있고, 돈을 어떻게 써야 할 지 준비된 사람에게 돈은 따라올 것이다. 돈에 대해 알면 알수록 더 모르겠고 어렵긴 하지만, 돈이 무엇인 줄 알아야 돈을 벌 수 있음에는 확실하다.

로또에 당첨된 사람의 결말은 대부분 해피 앤딩이 아니다. 캐나다에 있을 때 한 여자가 로또에 2번이나 당첨이 되었다고 한다. 이민을 와서 갑자기 많은 돈을 로또로 벌게 된 그녀는 이혼하고, 빚 때문에 숨어지낸다고 했다. 남들은 한번도 받기 힘들다는 그 로또를 2번이나 맞아놓고 빚에 시달리다니 정말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내용을 들어보니 그럴만 했다. 그녀는 돈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고, 돈을 어떻게 써야 할 지도 생각해보지 않았었다. 그러다보니 갑자기 돈이 들어와도 돈에 휘둘리게 되고, 결국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모른 채 돈을 다 잃고 빚까지 지게 된 것이다.

돈의 힘은 바로 돈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느냐에 있다. 돈의 속성과 돈이 움직이는 게임의 룰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야 돈을 벌 수 있다. 또한 돈을 어떻게 써야 할 지 분명해야 돈은 돈을 벌어줄 것이다. 인간의 역사를 써가고 있는 돈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닌 그저 종이 쪼가리나 플라스틱에 불과하다. 돈의 속성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사람의 탐욕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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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타인데이였던 오늘 여러 사람들이 투신 자살하는 일이 발생했다. 오늘 하루만 3곳에서 4명이 지하철 투신 자살로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악몽같은 발렌타인데이의 슬프고 안타까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응봉역에서 난 사고는 시체를 수습하던 장례직원이 전동차에 치어 사망하는 사태까지 벌어져 더욱 안타깝게 만들었다. 이런 일들이 발렌타인데이에 일어난 것이 나에게는 옛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벌써 10년전의 이야기가 되었다. 우리 집도 IMF를 정면으로 맞았고 집은 마산을 거쳐 부산으로 이사간 상태였다. 대학을 다니던 나는 서울에서 생활했어야 했고 기숙사에서 나와야 했던 방학 때라 친구 집을 전전하며 자고 때로는 노숙을 하기도 했다. 모두가 어렵고 힘들었던 그 시절, 2월 14일은 유난히 더욱 추웠다. 짐을 줄이기 위해 나는 옷이란 옷은 다 껴입고, 겉에는 어울리지 않는 롱코트를 걸치고 다녔다. 롱코트는 이불로도 유용하게 쓰였기에 발목까지 오는 그 긴 코트를 꼭 입고 다녔다.


1999년 2월 14일, 여느 때와 같은 차림으로 나는 재워주기로 한 친구내 집으로 가기 위해 회기역에서 국철을 타기 위해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용산행 국철을 타야 했는데 워낙 가끔 와서 "띠리리리~"소리가 들리면 냅따 뛰어야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다. 다 내려와서 벨이 울리면 참 좋을텐데 머피의 법칙도 아니고, 꼭 계단을 내려오려 하면 "띠리리리~" 벨이 울리기 시작해서 긴 계단을 허겁지겁 내려오는 일이 많았다. 역시나 계단을 내려오려 하는데 "띠리리리~" 벨이 울리기 시작했고, 혹여라도 놓칠까봐 난 냅다 계단을 뛰어내려왔다. 그런데 사람들이 계단 옆에 수십명이 모여서 철로를 보고 웅성 웅성 되고 있었다.

평소라면 별 관심없이 지나쳤을텐데 워낙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어서 사람들 틈을 헤치고 무슨 일인가 보았다. 사람들은 모두 '어떡해'를 연발하고 있었다. 앞으로 가서 보니 한 남자가 철로에 누워서 자살을 시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때마침 "띠리리리~" 열차가 전역에서 출발했다는 벨이 울렸기에 긴박한 상황이 된 것이다. 하지만 모두 바라만 보고 있었지 그를 구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21살 어린 나이에 의협심과 무모함이 충만하던 그 시기. 뒤늦게 온 나는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만 쏠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무도 뛰어내려가 구하려는 사람은 없었고, 누구라도 그 남자를 구해야 하는 급박한 상황이었다. 그런 중압감에 누가 뒤에서 밀치기라도 한 듯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철로로 뛰어들고야 말았다. "아뿔사!" 뛰어내리고 보니 열차가 저 앞에서 불빛을 비치며 경적을 울려대었다.

식은 땀이 줄줄 나고 여자들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나는 얼른 그 남자를 일으켜 세워 올리려 했으나 그 남자는 죽기를 작정한 듯 꼼짝도 안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우리를 보았는지 열차가 20,30m쯤 앞에서 멈춰선 체 경적을 울리고 있었다. 정신이 번뜩난 나는 그 남자를 억지로 일으켜 세웠고 위에 있던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위로 올려 놓았다.

사람들은 내가 그 남자와 일행이라 생각한 듯 하였다. 나와 그 남자를 남겨두고 모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열차를 타기 시작했다. 정신이 쏙 빠진 나는 그 남자에게 따지듯 말하였다. 도대체 왜 그런 짓을 했냐고 말이다. 그 남자는 술에 취해 술냄새가 진동을 하였고, 손에는 조그만 상자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내게 자살을 시도한 이유를 설명했다.

요지는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가 있는데 IMF로 인해 집안이 어려워지자 그 여자가 변심을 했고, 그 마음을 돌리고자 돈을 모아 초코렛을 사서 프로포즈를 했는데 그 여자가 거절을 해서 술 마시고 자살하려 했다는 것이다.

허허... 좀 어이가 없었다. 여자 때문에 귀한 목숨을 버리려 하다니 말이다. 게다가 내 목숨 걸고 구한 사람의 이유 치곤 좀 허탈했다. 그러고 있는데 역무원이 내려왔다. 난 그 사람을 역무원에게 인도하고 내 갈 길을 가려했는데, 이 역무원은 우리에게 다가오더니 철로에 뛰어내려가면 어떡하냐며 나무라기 시작한다. 난 저 사람을 구하기 위해 내려간 것이었다고 설명했으나 그래도 역무원이 올때까지 기다려야지 무작정 뛰어내려가면 어떡하냐며 다시는 그러지 말라 일렀다.

당시에는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다음부터는 남의 일에 끼어들면 안된다는 교훈을 얻기까지 하였다. 몇년 전 대구 지하철에서 사람을 철로에서 구한 고등학생이 상을 받은 것을 보고는 좀 억울한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내 나름대로는 법을 어겼어도 내 손으로 생명을 살렸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그 상황이 보상되고도 남았다.

결국 역무원에게 동급으로 취급받고 실컷 혼나고야 말았다. 그 남자를 역무원에게 넘겨주겠다는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고, 그 남자 혼자 놔두면 또 뛰어들 것 같아서 그의 집을 물어 집까지 바려다주기로 했다. 왕십리가 집이었던 그를 데리고 왕십리까지 가는 내내 그의 억울함을 들어주느라 사람들의 시선을 따갑게 받았으며 지하철 밖에까지 바려다 주었다.

제2의 IMF라고 하는 2009년의 발렌타인데이. 철로에서 4명이나 자살을 하였다. 상상도 못할 각자의 고충과 어려움이 있었기에 죽음을 선택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죽음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강도는 다르지만 한계를 넘어서는 어려움을 이겨내고 살아가고 있다. 아무도 몰라줄 것 같은 나만의 고통은 실제로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통이다. 그 고통을 나누면 반이 되었을텐데 소통의 부재와 소외가 결국 이런 참담한 악몽같은 결과를 낳고야 말았다.

빛이 강하면 어둠도 강하듯, 사랑을 표현하는 아름다운 발렌타인(Valentine)의 빛 이면에는 소외와 고독이라는 슬픈 발렌타인(Balentine)의 어둠이 있는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발렌타인데이. 이제는 주위 사람에게 관심을 나타내는 문화로 거듭났으면 좋겠다. 한가지 더불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블로그를 권하고 싶다. 비록 때로는 악성댓글에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소통과 공유 그리고 대화의 창문인 블로그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들도 마음껏 하고 고통을 공유함으로 그 아픔을 이겨나갈 수 있는 도구로 쓰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 문득 그 자살하려던 학생이 떠오른다. 10년이 지난 지금, 그도 10년 전의 일을 추억으로 간직한채 힘차게 하루를 살아나가고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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