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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과 아벨에 중국의 토루 장면이 나온다. 초인이는 토루에 가서 아이들과 주민들을 치료해주는 의료봉사를 갔다가 뇌의학센터를 짓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보성병원 무리들에 의해 납치를 당하게 된다. 중국에는 56개의 소수민족이 있다. 카인과 아벨에서는 토루에 사는 사람들이 중국의 소수민족인 토루로 나왔지만, 실은 서진 말기에 내려온 객가라고 한다. 객가에 대해서는 전세계 금융을 휘어잡고 있는 경제이치에 밝은 사람들이라 알고 있다. 하지만 소수민족의 삶은 그와 정반대이다.

예전에 중국의 소수민족인 장족이 사는 동네를 여행한 적이 있다. 장족은 티벳 사람들로서 얼마 전 베이징 올림픽을 통해 회자가 되었던 사람들이다. 중국의 무력진압으로 인해 수많은 장족들이 죽기도 했다.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얼마 전 이야기다) 중국의 서안에서도 서쪽으로 한참을 들어가야 있는 장족. 화장실도 큰 웅덩이 하나 뿐이고, 감자떡 비슷한 것을 주식으로 먹는 장족의 삶은 가난. 그 자체였다.

나는 그들에게 한국어도 가르쳐주고, 태권도도 가르쳐주며 한국의 문화를 알리려 노력했다. 해발 4000m의 고지에서 살고 있어 고산병이 걸리고, 숨을 쉬기도 벅찼지만, 순수하고 맑은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고 싶었다. 우연히도 초등학교에 잠시 들른 적이 있었는데, 아이들은 한국에 대해 의외로 관심이 높았다. 그들에 비해 얼굴이 뽀얀 나를 향해 아이들은 몰려들기 시작했고, 금새 스타라도 된 마냥 아이들은 나에게 사인을 해달라고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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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지만, 맑은 눈동자와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을 보니 왠지 아이들에게 빚을 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그들을 위해 약간의 후원을 해오고 있다. 블로그로 나오는 수익도 포함되어 있으니 TV익사이팅에 글을 쓸수록 아이들을 돕는 느낌도 든다.

그보다 더 예전에 아프리카에도 간 적이 있다. 의료봉사로 아프리카 케냐의 마사이 부족과 함께 1달 동안 생활을 했었다. 미수다의 유프레시아가 있던, 노홍철이 나이로비를 나라 이름으로 알고 있었던 케냐의 나이로비로 갔다왔다. 요즘 신발 가게로 있는 그 마사이 말이다. 10년전 일이니 당시에는 지금보다 케냐의 상황이 더 좋지 않았었다. 눈덮힌 킬리만자로산이 구름 위로 저멀리 보이던 케냐는 내 인생의 첫번째 터닝포인트를 만들어준 곳이기도 하다.

IMF때 경제도 안좋은데 술만 퍼마시고 다니다가 우여곡절 끝에 아프리카까지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본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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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히 남아서 내 인생을 이끌어주고 있다. 유목민인 마사이족은 물을 찾아 다니며 양과 소, 염소를 키운다. 외국의 선교사들이 와서 지어놓은 물탱크는 천정이 뚫려 있는 물탱크이다. 빗물을 식수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빗물을 한두방울 마시면 먹을만하지만, 모아놓고 한잔을 마시면 그토록 고역스러운 것이 없다. 닝닝하고 메슥거리는 빗물은 잘못 먹으면 이질이 걸리기 쉽상이다. 하지만 햇빛이 너무 강해 저절로 마른 풀에 불이 붙는 그곳에서 바위 위에 올려져 있는 한컵의 빗물은 생수와도 같았다.

일부다처제인 그들에게 에이즈에 대해 교육을 시키기란 참 힘들었다. 일부다처제는 그들의 문화이기 때문이다. 한 명의 남자 당 보통 아내가 10명, 한 명의 아내 당 보통 자녀가 10명. 그래서 한 가족이 모이면 100명 가까이 된다. 한 명의 남자가 에이즈나 성병에 걸리게 되면, 10명의 여자가 에이즈나 성병에 걸리게 되고, 그 영향은 아이들에게 고스라니 물려주게 된다. 약을 하나 줘도 보통 10개씩은 주게 되는데 셋째부인이 와도, 첫째부인부터 쫙 돌려야 하기 때문이다.

병원도 있고, 의사와 간호사도 있지만, 정작에 약이 없는 곳이 바로 그곳이었다. 한국이었으면 항생제만 있어도 살았을 아이가 항생제가 모자라서 생명을 하늘에 맡기는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은 술만 퍼마시던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 때의 상황을 떠올리며 흐트러진 삶을 바로잡곤 한다.

아프리카에서 느꼈던 점은 인프라의 부족이었다. 선생님도 있고, 학교도 있지만, 책이 없다. 병원과 의사, 간호사가 있지만, 약이 없다. 수도 시설이 없고, 전기 시설도 안되어있다. 전기의 경우는 대부분 개인 제너레이터를 돌려서 사용하는데, 전봇대는 있는데 전기줄을 기린이 다 끊어먹었기 때문이란다. (걸어가다가 뒷통수가 근지러워서 돌아보았던 기린이 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아프리카의 파리 앉은 얼굴의 아이들을 보면 불쌍하다며 동정심을 발휘한다. 나 또한 가기 전에는 그러했다. 그래서 무언가 더 가르쳐주고 배풀고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난 가르쳐준 것도 배푼 것도 없었다. 오히려 많이 배워왔고, 인생의 지침서를 얻을 수 있었다. 파리 앉은 얼굴은 누가 가도 그렇게 된다. 그 동네 파리는 강심장이라서 웬만해서는 한번 붙으면 떨어질 생각을 안한다...

우리는 빚을 지고 살아가고 있다. 내가 번 돈 내가 마음대로 쓰겠다는데 어떠냐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그들을 보고 동정심을 느꼈다면, 그 동정심보다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을 갖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이 아닌가 싶다. 가난 때문에 불행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가난과 불행은 별개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가난은 그들을 더욱 행복하게 해 주기도 했다.

그들의 삶에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물 한잔에 감사하게 되고, 작은 구름 한점이 가져다주는 그늘에 감사하게 되고, 말라 비틀어진 땅에 핀 꽃에 감사하게 된다. 수도꼭지 틀면 물이 펑펑 나오고, 아무 건물에 들어가도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고, 온갖 볼거리들로 넘침에도 불평과 불만이 가득한 모습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그들은 문화를 지키기 위해 문명을 거부하며 노력하고 있고, 그 모습은 일본을 싫어하면서 일본 문화를 받아들이기 급급하고, 미국의 천민자본주의가 싫다면서 그들의 문화는 제일 먼저 가져와 한글까지 영어화되어가고 있는 부유한 한국의 모습보다 더 멋진 모습이었다. 다만 내가 그들보다 더 많이 가지고 있고, 누리고 있는 것은 운 좋게도 한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을 동정할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빚진 것을 갚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권상우가 주연하는 신데렐라맨을 정말 재미있게 보고 있다. 남자든 여자든 신데렐라는 누구나 한번쯤 꿈꾸어보는 일이 아닐까? 신데렐라맨의 오대산은 비록 가진 것도 없고, 가난 속에 살아가지만, 자신보다 더 안된 사람을 도와주고, 희망을 주며, 자신도 대박을 꿈꾸며 화이팅하며 살아간다. 반면 오대산과 쌍둥이지만,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부족한 것 없이 자란 이준희는 까칠하고 냉소적으로 웃음을 잃은 체 왕자의 난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간다. 신데렐라의 자격은 나눠주고 도와주는데에서 시작한다. 신데렐라가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썩소와 냉소만 던지던 여자였다면 그녀에게 백마탄 왕자님은 오지 않았을 것이다.

신데렐라맨이 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서로 나누고, 돕고, 내가 더 누리고 있는 것에 빚을 졌다 생각하고 함께 하는 것이 그 방법이다. 원래 사랑은 가질수록 사라지고, 나눌수록 더 커지는 것이라 하지 않는가. 그런 삶을 살아갈 때 신데렐라맨이 될 기회가 반드시 올 것이라 생각한다.


이 글은 플랜한국 위원회의 후원으로 작성하는 글이다. 플랜한국 위원회는 플랜인터내셔널의 한국지사이다. 플랜은 인도주의를 바탕으로 어린이와 함께 지역개발을 추진하는 국제 NGO 단체로, 국적, 종교, 정치를 초월해 아동후원이라는 방법으로 어린이의 미래를 지원하고 있는 곳이다. 나 또한 이 글로 인해 나온 수익을 아동 후원을 하는데에 사용할 계획이다. 많은 후원자들이 나와서 다들 신데렐라맨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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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일 오전 11시쯤 경희대에서 지하철을 타려고 하는데 중국인들이 오늘 따라 유난히 많이 보였다. 3~40명 정도의 인원이 빨간색 중국 깃발 수십개를 위협스럽게 들고 지하철 쪽으로 향했다. 지하철로 들어서니 여기 저기 또 다시 많은 중국인 학생들을 볼 수 있었다. 다른 지하철 노선으로 갈아탈때도 깃발을 든 중국인들이 여기 저기 눈에 띠었다. 중국인 유학생의 날인가 보구나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 성화봉송이 오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일본에서 일어났던 성화봉송 피해도 생각이 났다. 득의양양하게 무리지어 깃발들고 걸어다니는 그들을 보니 심히 걱정스러웠다. 대부분 껄렁껄렁하고 험악한 표정으로 지나다녔기 때문이다.

올림픽 성화봉송과 티베트 사태는 전세계인 대 중국인의 맞짱 대결 구도로 점차 윤곽이 잡혀가고 있다. 올림픽 날짜는 다가오는데 성화봉송을 따라 전세계에 거주하고 있는 중국인들이 올림픽을 망치고 있는 꼴이다. 혀를 내두를 정도의 인파와 횡포 그리고 그들에게 당한 대한민국 국민들만 보아도 어떻게 될지 예상해 볼 수 있다. 올림픽과 중국에 대해 좋은 인식을 가지고 있던 그나마 소수의 인원들도 오늘 그들의 횡포를 통해 안티 올림픽, 안티 중국으로 다 돌아섰을 것이다. 폭력과 무력이 모든 것을 정당화 시킨다는 그들의 사상과 가치관, 그리고 윤리가 이번 사태를 통해 여과없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오늘의 이 횡포에 대해 중국인들은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자기 반성이 이루어져야 겠지만, 오늘의 단합된 횡포를 보니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오늘 집회를 이루었던 5천여명의 중국인들은 한국 대학에 온 유학생들이었다. 대학생인 것이다. 나름대로 유학을 온 중국인들이고, 그들은 아마도 중국에서 상류층에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중국에서 대학을 못가서 도피성으로 온 사람들도 있고, 나름 지식인의 대열에 합류되어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중 많은 사람들이 중국의 미래를 이끌 주역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중국의 미래의 모습이기도 하다.

티베트 문제는 국가의 분단이라는 명목을 내세워 폭력과 무력시위를 벌이는 그들은 매우 단순하고 근시안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면 그들의 얼굴 모습이 가히 가관이다. 필사적으로 악이 바쳐있는 얼굴은 무엇 때문에 그들이 그렇게 광분하는지 의문스럽게 만든다. 이 문제는 결국 많은 한국인들이 중국 올림픽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갖게 되고, 중국 자체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갖게 되리라는 것까지 염두하지 않은 어린 생각일 뿐이다. 그들이 진정 애국을 원했다면 전세계의 언론이 주목되어 있는 곳에서 올림픽을 열어도 될만한 곳이라는 시민의식을 보여주었어야 한다. 한국에 있는 일명 좀 살고 좀 배웠다는 무리들도 이런데, 본국에 있는 사람들은 더할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무서워서 중국 올림픽 참관하려던 사람들도 마음을 돌릴 것 같다.

그리고 그들의 무력과 횡포속에는 돌이 아닌 스패너가 있었다. 그 말은 이 집회는 성화봉송을 구경하려온 집회가 아닌 처음부터 계산된 행동이었다는 것이다. 명목은 성화봉송 참관이었지만, 그들이 던진 것은 돌이 아닌 스패너였다. 바닥에 스패너가 떨어져 있을리도 없고, 그것은 철저하게 계획되고 계산된 무력 집회였고, 폭력 시위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무리지어 움직일 때 모습은 순수한 대학생이 아닌 동네 양아치같은 모습이었던 것이다.

집회를 통해 그들이 얻은 것은 무엇일까?

첫째, 중국인들의 단합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5천명이 단합된 목소리로 구타와 협박을 당연하게 이루는 모습을 보며 무리에 속하여 비윤리와 부도덕을 합리화시키고 스스로 애국한다고 착각에 빠져드는 우둔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티베트인들을 무력으로 진압했듯이, 전세계인을 무력으로 진압하려는 모습을 언론을 통해 전국, 전세계에 보여주었다.

둘째, 티베트가 중국 땅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그들의 명분은 티베트로 인한 조국의 분단 문제였다. 그렇다면 자국민을 그렇게 무참히 구타하고 욕설하는 것이 중국은 하나라는 그들의 명분과 상반되지 않는가? 티베트가 중국이라는 한 나라 사람이라면 왜 그들을 때리고 욕하는가? 자국민을 때리고 욕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노예밖에 없다. 그들은 티베트를 자신들의 한 국가로 생각하지 않고, 때리고 욕해도 괜찮은 노예로 생각하고 있고, 티베트인 뿐 아니라 한족을 제외한 소수민족에 대한 그들의 속마음이기도 한 것이다. 명분이 어찌되었든 결국 그들의 무력과 폭력은 전세계 사람들이 중국과 티베트는 다른 나라여야만 한다는 굳은 의지만 심어주었다. 예를들어, 길거리에서 뚱뚱한 아이가 외소한 아이를 무지막지하게 때리고 있는데, 뚱똥한 아이는 외소한 아이를 때리며 이 아이는 내 동생이기 때문에 때려도 된다고 사람들에게 이야기한다면, 사람들이 '아~ 그렇구나'하며 '더 맞아야 겠네'라고 생각하겠는가? 아니면 그 둘을 갈라놓으며, 뚱뚱한 아이를 꾸짖을까? 그들이 설령 정말 형제라해도 사람들은 그 둘을 갈라놓을 것이다.

셋째, 올림픽 홍보 제대로 했다.
올림픽에 대해 홍보를 제대로 한 것 같다. 올림픽에서 1등은 중국이 떼어놓은 당상이다. 꼴로 보아하니 올림픽 정신은 오간데 없고, 중국과 붙는 팀은 무조건 집단 야유와 깡통, 스패너등으로 상처를 입을테니 말이다. 원칙도 윤리도 정신도 없는 올림픽에 온갖 반칙과 더티 플레이가 나올 것이고, 중국인들은 자국의 승리와 단합이라는 것을 명목으로 무리지어 무력으로 합리화시킬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포터즈끼리의 집단 유혈사태는 안봐도 비디오다. 전세계인을 상대로 맞짱을 뜨기 시작한 순간부터 올림픽은 끝난 것이었고, 성화봉송은 의미없는 불길이 되었다. 올림픽은 중국인끼리의 축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이 잃은 것은 신뢰와 배려, 윤리, 도덕, 올림픽, 티베트, 중국이다. 그들의 집회 한번으로 전세계인들은 중국에 대한 신뢰와 배려, 그리고 윤리와 도덕, 올림픽, 더불어 중국 자체를 배제하기 시작했다. 이래도 그들이 이 사태에 대해 자각하지 못하고 명목에 충실했다고 외치기만 한다면 그들은 국제깡패로 전락할 것이다. 무엇이 애국이고 무엇이 신뢰이고, 무엇이 중국인지 한국어를 읽을 줄 아는 지각있는 중국 유학생들이라면 자성의 목소리를 높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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