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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중 막걸리를 마시는 가수를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LIG 아트홀에서 열리고 있는 어번파티 시리즈 중 하나인 토모카와 카즈키의 공연은 정말 파격적이었습니다. 음유시인이란 테마로 그저께와 어제 토모카와 카즈키가 공연을 했고, 오늘과 내일 강산애가 LIG 아트홀에서 공연을 하는데 두 개의 공연에 모두 초대를 받았습니다.

LIG 아트홀은 LIG손해보험 건물에 있는 아트홀인데요, 강남역을 오가는 분들이시라면 자주 보았을 겁니다. 강남역 8번 출구쪽으로 쭉 올라오면 화려한 건물에, 故백남준 아티스트의 작품과 알록달록한 조형물들, 그리고 대형 TV가 있는 그곳이죠.

(LIG 건물은 사진 찰영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보안에 관련된 사안이라 경호원과 메니저에게 허락을 받아야만 촬영이 가능하다고 하네요. 무대 촬영도 원래는 안되는 건데 특별히 허락을 받았어요. ^^ 그래서 니콘 D300s로 열심히 찍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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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여기가 LIG 아트홀입니다. 기억이 나시죠? ^^ 지나가면서 저기는 뭐하는 곳인가 여러 번 생각했었는데 LIG 손해보험 건물이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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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록 달록 매우 감각적이고 예쁘지요? 그냥 회사 건물인 줄 알았는데 공연장이었다니 더욱 놀라웠습니다. 강남역에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 더욱 신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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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시다가 이거 보신 적 있죠? 故백남준씨의 코끼리 문이라는 작품인데요, 총천연색의 색깔로 바뀌면서 감각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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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색으로 변하더군요. 의미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 1996년 작품으로 인도 남성과 여성이 반복되면서 다른 영상이 빠르게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이라는데, 뜻을 아시는 분은 댓글로... ^^ 그 자체로 신비로운 모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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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G아트홀에서는 토모카와 카즈키와 강산에 밴드의 공연 일정이 붙어있습니다. 지하에 공연장이 있고, 매표소도 아래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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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8시에 공연이 시작이라 퇴근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았습니다. 퇴근하고 술 마시는 사람들 엄청 많던데, 술 대신 가까운 LIG아트홀에서 문화를 즐기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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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로 내려가면 LIG 아트홀 마크가 큼직하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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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입구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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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면 우선 손소독기부터 보이는데요, 신종 인플루엔자 때문에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산후조리원에 있어서 요즘 하루에도 몇 번씩 바르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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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모카와 카즈키가 누구인지 처음에는 몰랐습니다. 일본 가수라고만 생각했죠. 포스터를 봐도 젊은 일본 가수인가보다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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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공연은 아버지와 같이 갔습니다. 일본 펑크 뮤직의 창시자라는데 과연 아버지가 좋아하실까 염려가 되긴 했지만, 오랜만에 아버지와 즐거운 데이트를 할 겸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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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G 아트홀 내부의 모습입니다. 공연 중에는 촬영이 안되어서 못 찍었지만, 세트를 볼 수 있으니 이 정도 찍은 것도 만족합니다. ^^ 가운데 의자가 있고, 위에서 조명으로 로마 숫자가 적혀 있는 원형 시계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왼쪽에는 소파가 오른쪽에는 바가 있었고, 뒤에는 천막으로 자막을 비춰주는 스크린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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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적인 분위기였는데요 너무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최대한 감각적인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소박함과 웅장함이 함께 있었습니다. 의자도 편하고, 실내 공기도 적정한 온도였습니다. 대학로의 소극장을 많이 가보았는데 그에 비해 좋은 무대와 좌석, 환경을 가지고 있어서 깔끔하였습니다.

특히 대학로 소극장에서는 앞사람 앉은 키가 크면 머리 때문에 공연이 잘 안보이는 경우가 많았는데, 최대한 앞 쪽으로 좌석이 많이 배치가 되고, 앞 뒤의 높이 차이가 나서 어떤 각도에서건 공연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공연이 시작되고, 토모카와 카즈키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헉!!! 그는 젊은 일본 가수가 아니라 60대의 가수였습니다. 아버지와 비슷한 연배의 가수였죠. 일본풍의 스타일로 옷을 입고, 중절모를 쓴 토모카와 카즈키는 일본 특유의 소심한 발걸음으로 손에는 우유를 들고 나왔습니다. 그리곤 작고 떨리는 목소리로 "안녕하세요,토모카와 카즈키입니다"라고 말한 후 바로 노래를 시작했죠.

첫 노래인 미타네강부터 범상치 않았습니다. 그의 헉헉 거리는 소리와 절규하는 듯한 목소리는 매우 충격적이었죠. 노래가 끝나면 옆에 있는 우유를 한 모금 마신 후 또 다시 노래를 하였습니다. 중간에 통역이 나와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우유가 우유가 아닌 막걸리!!였답니다. 허걱!

토모카와 카즈키는 주당이라는데요, IZO라는 영화에서도 노래를 부를 때 술을 한잔 마시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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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ZO의 한 장면인데요, 딱 저런 모습으로 공연을 했습니다. ^^ 그의 공연은 딱 한마디로 하자면 "열정" 그 자체였습니다. 열정을 넘어선 절규 정도가 될 것 같네요. 음악을 잘 모르는 나도 그의 노래를 한번 듣고 푹 빠져버렸습니다.

뒤에 나오는 자막 덕분에 토모카와 카즈키의 음악을 더욱 즐길 수 있었는데요, 가사는 시 그 자체입니다. 함축적이고, 심상적이었습니다. 거기에 운율을 더하니 시의 3요소가 딱 들어맞는 공연이었습니다. 그는 특히 하늘, 천상, 땅, 목각인형, 꼭두각시 같은 단어에서 절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요, 아마도 자유에 대한 절규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의 음악과 그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가 왜 절규하는 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규제와 풍습 속으로 밀어 넣고, 그곳에 들어가려 몸부림치는 사람들을 향해 그는 그곳에 들어가지 않으려 몸부림치고, 들어가지 말라고 소리치고 있는 듯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삶이 푸르고 맑은 하늘처럼 평온한 척하지만, 그 단단한 푸름이 옥죄이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지 못합니다. 그래서 토모카와 카즈키는 그 하늘에 상처를 내고 싶다고 절규하죠. 그의 절규와 커팅은 예술에 가까웠고, 마지막 곡인 피스톨에서 기타 줄이 끊어질 정도로 열정적인 무대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앵콜곡의 마지막 곡에서도 여분의 기타 줄까지 다 끊어져버렸죠. 기타 줄이 끊어져도 끊어진 줄을 걷어내며 계속 곡을 부르는 모습에 그가 60세라는 것을 잊게 만들어버렸습니다.

토모카와 카즈키

끊어진 기타줄, 두개의 기타 모두 그의 열정에 만신창이가 되었다.

토모카와 카즈키를 만난 것은 행운이라 생각합니다. 아버지 또한 동갑인 토모카와 카즈키에게 질문도 하고, 음악을 즐기며, 그의 열정에 감염된 듯 하였습니다. 토모카와 카즈키는 김지하 시인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김지하 시인의 아주까리 신풍에 대한 노래도 불렀습니다.

아주까리 신풍은 일본의 작가 미시마 유키오가 할복자살 한 것을 풍자한 김지하 시인의 시입니다. 신풍은 일본어로 가미가제인데요, 고려 때 원나라와 일본을 정복하려 가려 할 때 태풍이 불어 침몰하여 손 안대고 코풀자 이를 천황의 공으로 돌려 신풍(神風)이라 했었죠. (이에 대해서는 신풍이 아니라 원나라가 남송군의 처리로 골머리를 앓다가 일본으로 남송군 하급군사들을 보내어 죽던가 이기던가를 바랬다고 합니다. 즉, 적에 의해 의도된 패배였죠)

그리고 태평양 전쟁 때 다시 이 신풍이 부활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패전한 일본은 시간이 흐를수록
미시마 유키오

미시마 유키오

제국주의에 대한 생각이 잘못됨을 알고 바뀌기 시작하는데, 일본의 극우 지식인인 미시마 유키오가 1년 간의 준비 끝에 방송으로 할복을 하게 됩니다. 자신은 할복하고 옆에서는 목을 내리치는 장면을 방송에 내보낸거죠. 이유는 제국주의 부활을 위해서 였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김지하 시인이 통렬히 비꼬는 아주까리 신풍을 발표하게 된 것이고, 권력의 남용과 자유의 억압에 반항하여 무기징역까지 받은 김지하 시인에게 토모카와 카즈키는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특히 김지하 시인이 감옥에서 나왔을 때 젊은이들이 도와줄 것이 없냐고 했더니 없다면서 너희들은 너희들이 갈 길을 가라고 했던 말에 많은 감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미시마 유키오는 별로 안 좋아한다고 합니다. (김지하씨와 미시마 유키오에 대한 것은 객석 질문 시간에 아버지께서 질문하여 알게 되었습니다 ^^)

알면 알수록 매력적이고 열정적인 토모카와 카즈키는 가수이자, 배우, 방송인, 화가, 경륜 평론가, 에세이스트, 작가, DJ, 시인인 직업의 구속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자유에 대한 갈증이 제 마음에 도전을 주더군요. 매우 의미있는 시간이었고, LIG아트홀의 좋은 환경으로 인해 토모카와 카즈키에게 더 빠져들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토모카와 카즈키

토모카와 카즈키가 마신 막걸리

오후 3시부터 리허설을 하며 막걸리를 마셔, 공연 때만 큰 잔으로 4잔을 마시는 주당, 토모카와 카즈키. 일본의 막걸리와 김치는 모두 거짓말이라며, 한국에 오면 막걸리를 마실 수 있어서 즐겁다는 토모카와 카즈키의 공연이 음유시인이 딱 걸맞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

공연이 끝나고 오는 길에 아버지와 함께 막걸리를 마시러 갔습니다. 도저히 안마시고는 못베기겠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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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G아트홀 홈페이지 http://www.ligarthall.com/
토모카와 카즈키(友川かずき) 홈페이지 http://www.interq.or.jp/www-user/kurenai/
토모카와 카즈키(Tomokawa Kazuki)의 영상을 볼 수 있는 곳
http://www.youtube.com/watch?v=KFSJSw7ABbk&feature=player_embedded#watch-main-area

마지막으로 유투브에 올라와 있는 토모카와 카즈키의 동영상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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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황당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내 눈을 의심케 할 정도로 황당한 사건이다. 문근영이 기부를 한 것에 대해 색깔론을 펼치며 폄하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정치에 관하여는 시사 블로거분들께서 자세하게 잘 말해 준 것 같다. 정치는 잘 모르지만, 기부 문화에 대한 우리나라의 현 주소를 말해주고 있는 듯 하다.

특히 스타들이 기부를 하면 곱지 않은 시선으로 색안경부터 끼고 보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성장을 한 스타들이 자신이 번 수익의 일부를 기부하는 것은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다. 기부를 하면 그 의도에 대해, 혹은 그 저의에 대해 온갖 추측을 해가며 깎아내리려 하고 보곤 한다.

하지만 기부에 대해서 그 의도나 저의는 생각할 필요가 없다. 마케팅을 하려면 그 돈을 광고비로 사용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고, 이미지 세탁을 위해서라면 로비를 해서 좋은 프로그램에 나가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의도를 가지고 기부를 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천원을 기부하건, 만원을 기부하건, 1억을 기부하건 기부라는 행위 자체는 쉽지 않은 일이다. 돈을 많이 번다고 기부하는 것이 쉬울까? 그렇지 않다. 그것도 정기적으로 꾸준히 기부를 하는 것은 더욱 힘들다. 이번 문근영 사건의 근원이라는 지만원이라는 사람은 만원이라도 기부를 해 보았는지 모르겠다. 색깔론, 지역론을 들먹이며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보이기 때문이다. 원래 그런 식의 발언을 많이 한 사람이라 하니 그 의도도 더욱 명확해지는 것 같다.

스타들의 기부가 엄친아의 질투를 유발할 수도 있다. 외모도 잘 생기고, 이쁘고, 똑똑한데다가, 사랑도 많이 받고, 활동도 왕성하게 하는데, 큰 돈을 기부까지 하면 완벽한 팔방미인인 그들을 향해 질투의 시선을 보낼 수는 있다고 본다. 하지만, 그것이 본질을 해치고 비방하고 폄하하는 일로까지 끌고 내려가는 것은 참 유치한 일이 아닌가 싶다.

스타들의 기부는 사회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이끌어낸다고 생각한다. 스타를 좋아하는 팬들에게 귀감이 되며, 기부 문화에 대해 올바른 인식을 심어줄 수 있기도 하다. 그야말로 학창시절 많이 들었던 타의 모범이 되는 일이다. 상을 주지는 못할 망정 이상한 궤변으로 노골적인 질투를 드러내는 행위는 양아치만 못한 행동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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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와 이어도, 고구려등 일본과 중국의 역사왜곡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민간 사이버 외교 사절단 반크에서 꿈날개 프로젝트라는 것을 진행 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꿈날개 프로젝트는 역사, 영토, 문화의 3가지 꿈날개를 달아 세계에 한국을 알리는 일이다. 꿈날개는 구체적으로 반크에서 제작한 홍보자료를 무료로 나눠줌으로 세계로 나아가는 한국인들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것이다. 이름하여 '21세기 광개토 태왕'이 되어 동북아 역사와 영토 분쟁, 한류를 세계에 알리는 것이다.

신청한 모든 사람에게 주는 것은 아니고, 반크에서 소정의 심사를 거친 후 홍보물을 발행해 준다. 이런 뜻 있는 프로젝트에 허투루 지원하실 분은 없겠지만, 아무래도 무료로 홍보물을 주고 취지가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것이니만큼 심사를 통해 발행해주는 것 같다.
반크의 홍보대사인 김장훈씨가 귀여운 꽃을 머리에 달고 배너로 홍보까지 하는 이번 프로젝트는 해외에 외국인 친구가 있는 분이나, 해외에 거주하시다가 잠시 한국에 들어오신 분들, 혹은 해외로 나가실 분들에게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

또한 홍보하려는 목적에 따라 3가지로 구분하여 홍보자료를 주기 때문에 부담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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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신의 목적에 맞게 신청하면 될 것 같다. 또한 홍보자료를 받은 후 활동을 하면 꿈현황에서 활동현황이나 명에의 전당등 여러 21세기 광개토 태왕들의 활동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현재(2008년 8월 20일) 21세기 광개토 태왕은 아시아에 377명, 유럽에 162명, 북아메리카에 191명, 남아메리카에 23명, 오세아니아에 36명, 아프리카에 18명으로 총 807명이 세계 각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알리고, 잘못된 역사, 영토, 문화를 바로 잡아 한국의 위상을 높히는데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여 하였으면 좋겠다. 또한 이런 멋진 아이디어를 내서 실천에 옮겨 많은 결과를 낸 반크에게 힘찬 응원을 보내고 싶다.

21세기 광개토 태왕 지원하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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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크에서 신청하고 받은 꿈날개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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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전 일이다. 2003년 난 새로운 꿈을 안고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군 전역 후 1달만에 여권과 미국비자까지 만들어 유학원을 통해 캐나다로 날아갔다. 어학연수를 다녀오면 영어가 술술 나올 줄 알았는데, 1년동안의 어학연수 후 마지막으로 들었던 소리는 "Can you speak English?"였다. 이 정도면 분명 실패한 어학연수인 것 같다. 그래서 곰곰히 생각해보게 되었다. 어떻게 하면 어학연수를 보다 성공적으로 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말이다.

1. 동기
요즘 몰입식교육이니 조기어학연수니 말들이 많지만, 영어를 잘하기 위해서는 동기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어떤 일이든 동기가 중요하듯 영어를 배우는데 있어서도 동기가 확실해야 한다. 나의 경우 실패한 이유는 동기가 아주 약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캐나다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있는 동안에도 나는 정말 가기 싫었다. 영어를 배워야 하는 것은 사대주의적 발상으로 생각할 정도였다. 영어 못해도 먹고 살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던 나는 영어를 배우지 말아야겠다는 동기가 더 강했던 것 같다.

물론 그런 동기들은 나중에 생활하게 되면서 처참하게 깨졌지만, 미리 영어에 대한 동기를 가지고 있었다면 더 나은 어학연수 생활을 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에서 어학연수를 가기전에 충분한 동기부여가 되어있어야 한다. 가장 좋은 동기부여는 자신감인 것 같다.

보통 어학연수에 성공한 친구들을 보면 한국에서 이미 영어 학원을 다녀 어느정도 영어에 대한 이해와 점수를 가지고 온 친구들이었던 것 같다. 한국에서 영어 학원을 다님으로 영어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있고, 리딩, 리스닝, 라이팅, 스피킹까지 어느 정도 마스터를 해 놓고 어학연수를 오는 것이 좋다.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춘 후에 동기 부여를 하기는 쉽다. 그리고 자신감도 생기기 때문에 어학연수 전에 학원을 다녀서 어느 정도 마스터를 하고 오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미국교과과정을 적용한 Yes영도어학원이나 기타 여러 학원들이 있다. 이런 학원들은 현지의 학원 커리큘럼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때문에 그런 영어학원에서 영어를 미리 배워온다면 동기부여는 물론 성공적인 어학연수의 첫단추를 채울 수 있을 것이다.



2. 문화
영어는 이미 한국에서 어느정도 다 배울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있다. 하지만, 영어만 배운다고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하고, 좀 더 가치있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그 문화를 익히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문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언어를 익히는 것이야 말로 가장 모범적이고 잘 구사할 수 있는 방법이다. 예일대 음대 교수인 힘신익 교수님의 경우 영어를 배울 때 친구 성악가에게 일정 금액을 주고 슈퍼마켓이나 쇼핑몰 같은 곳에 같이 가서 그곳에서 쓰이는 언어를 배웠다고 한다.

문화속에서 쓰이는 언어는 가장 최전방에 있는 언어이고 또한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는 최고의 교육방법이기도 하다.  나의 어학연수가 영어를 배우는데는 실패했어도, 문화를 배우는데는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영어를 배우기는 싫어했어도 노는 것은 좋아해서 캐나다의 온갖 구석 구석은 다 다녀보았다. 차비를 아끼기 위해서 인라인을 타고 골목 골목을 누비며 다니고, 주말이면 난생처음 보는 하키와 메이저리그가 열리는 야구장에도 갔으며, 목요일 저녁이면 클럽을 쏘다니며, 월요일과 수요일에는 YMCA에서 무료로 가르쳐주는 유도를 배움으로 많은 외국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문화를 즐길 수 있었다. 나처럼 문화만 즐기고 오면 실패의 지름길로 들어가겠지만, 문화를 통해 언어를 습득한다면 성공적인 어학연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3. 여행
문화와 일맥상통하는 것이겠지만, 여행은 어학연수를 더욱 성공적으로 해줄 뿐 아니라 인생을 풍성하게 해주는 것 같다. 문화와 마찬가지로 여행만 해서는 안되겠지만, 영어를 배우고 최종 점검으로 여행을 해보는 것은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 어학연수를 캐나다에까지 와서 도서관-학교-집을 반복하며 다람쥐 챗바퀴 돌아가듯 보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보통 학원이 아침 9시부터 저녁 4시까지 하니 도서관에서 4,5시간 공부하면 저녁 먹을 시간이 된다. 그리고는 집으로 와서 마무리 공부를 하고 다음 날 다시 학원에 가는 것이 일상이 되는 것이다.

물론 공부도 중요하지만, 그러려면 한국에서 공부하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어학연수의 목적은 발음교정과 문화체험 그리고 더 자연스럽고 실제로 사용되는 영어를 익히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와는 다른 생각과 낯선 사람과 문화속에 적응해가며 다양함을 배우고 더 넓은 사고력을 가지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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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여행은 어학연수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 생각한다. 자기가 개척하며 그동안 배운 언어를 사용하여 생존해 나가야 하는,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을 키우는 과정이 여행속에 있기 때문이다. 어학연수를 올 때 무리해서 미국비자를 만들어갔던 이유도 영어보다는 여행에 더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캐나다까지 가서 바로 아래있는 미국에 가보지 못한다면 억울할 것 같아서 말이다.

결국 생존능력만 최고로 늘어왔지만, 빨간머리앤의 배경이 된 PEI도 가보고, 스노우보더들의 꿈인 휘슬러도 가보고, 록키산맥과 나이아가라폭포의 웅장함도 느꼈다. 라스베가스의 화려함과 하버드의 학구열, 맥도널드에서도 담배를 피는 캐나다속의 프랑스 퀘백도 느껴보았다. 캐나다 동서부와 미국 동서부를 랜트카여행, 배낭여행, 기차여행, 가이드와 함께 하는 여행사 패키지여행등 각종 여행은 다 해본 것 같다.

물론 영어보단 생존능력만 키워왔지만, 후에 사업을 할 때 그 때 배운 영어는 큰 힘을 발휘하여 큰 거래를 성사시킬 수 있었다. 그 때 벌은 돈은 어학연수 때의 비용을 충분히 보상하고도 남았을 뿐더러 지금도 잘 활용하고 있다.

어학연수를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영어를 배우기 위해서일 것이다. 영어를 배우는 이유는 가능성 때문일 것이다. 가능성을 넓히려는 이유는 인생의 성공을 위해서이다. 결국 인생의 행복을 위해서 우리는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을 넓히는 것이고, 그 가능성을 넓히기 위해 영어를 배우는 것이고, 영어를 더 잘 배우기 위해 어학연수를 가는 것이라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영어만 딸랑 배워오는 어학연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영어와 함께 문화, 여행 그리고 사람들을 통해 인생을 더욱 풍성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가능성을 넓혀가는 것이 영어를 배우는 원래 목적에 더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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