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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펀드를 사지 않는다. 펀드 열풍이 불 때도 절대로 펀드에 손을 대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펀드는 절대로 들지 않을 것이다. 요즘 펀드 때문에 다들 울상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펀드에 들지 않았다고 하면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았지만, 이제는 반토막난 펀드에 대한 푸념들이 가득하다. 펀드가 잘 나갈 때 펀드는 위험하다 말하면 콧방귀를 뀌었지만, 이제는 내 이야기에 좀 더 관심을 갖는 듯 하다.

나는 주식을 산다. 물론 여유자금으로 주식을 사고 있다. 블로그를 통한 수익으로 주식을 사려 준비 중에 있기도 하다. 사람들은 주식은 위험하다고 한다. 분산투자를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펀드를 사야 한다고 한다. 그래도 난 주식을 산다. 절대로 펀드를 사지 않는다. 왜 내가 펀드를 사지 않는지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해 보겠다.

펀드는 주식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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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범하는 오류는 펀드를 주식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펀드는 절대로 주식이 아니다. 주식을 모아둔 것이 펀드일 뿐이지, 펀드가 주식은 아니기 때문이다. 주식은 기업의 능력을 사는 것이지만, 펀드는 펀드매니저의 능력을 사는 것이다.

주식은 흔히 장기투자를 하면 언제나 승리한다고 한다. 역사적으로도 주식은 항상 물가상승률을 상회하는 수익을 가져왔고, 장기적인 그래프를 보았을 때 그 기울기의 차이 또한 매우 크다. 복리의 효과로 불리는 주식은 기업이 망하지만 않는다면 가장 좋은 재테크 수단일 것이다.

펀드는 그런 주식을 모아둔 것이다. 그렇다면 펀드도 주식처럼 오래 가지고 있으면 결국엔 승리할까? 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그것은 펀드매니저의 능력에 달려있다. 펀드는 주식을 계속 가지고 있지 않는다. 계속하여 사고 파는 행위를 반복한다. 분산투자를 하지만, 장기투자는 하지 않는다. 오히려 단타를 많이 친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투자자에게 성과를 보여야 하는 펀드매니저는 그동안 남의 돈을 가지고 어떻게 운영했는지 보고해야 한다. 그 때 난 장기투자를 하기 때문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다고 보고한다면 투자자들은 그 펀드매니저를 업무태만으로 고소할 지도 모른다. 적어도 아무 노력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돈을 당장에 다른 펀드로 바꿀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펀드매니저는 주구장창 사고 파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또한 수수료의 문제도 있다. 증권회사에 소속되어 있는 펀드매니저는 회사의 이익을 위해 존재한다. 회사가 돈을 버는 방식은 바로 수수료이다. 펀드의 수익률을 올리던, 내리던 수수료는 언제나 빠져나간다. 더군다나 더욱 많이 사고 팔수록 수수료는 더욱 많이 빠져나가게 된다.

펀드매니저는 펀드의 주식을 사고 팜으로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기에 주저없이 주식을 계속 사고 판다. 결국 펀드는 주식처럼 장기투자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운이 좋아 계속 상승하는 주식에 갈아탈 수 있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펀드매니저의 실력이자 운이다.

나 는 그 운과 실력에 돈을 걸지 않는다. 그 확률은 안그래도 예측하기 쉽지 않은 주식을 더욱 예측하기 어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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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기 때문이다. 돈을 잃어도 나의 예측으로 잃는 것이 낫지, 남의 예측으로 잃는 것은 힘들게 번 돈이 너무 아깝기만 하다.

보통 주식을 하지 않고 펀드를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물으면 아무래도 전문가가 하는 것이니 더 낫지 않겠느냐 한다. 하지만 주식에 전문가는 없다. 아무도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전문가이고 밥 먹고 주식만 한다고 해도 1분 후 어떻게 될지 확답할 수 없는 사람일 뿐이다. 나는 내 피같은 돈을 그런 곳에 걸 수는 없다. 나의 판단과 나의 시행착오로 돈을 잃는다면 아쉬움도 덜하고, 억울함도 덜하기 때문이다.

펀드가 반토막 난 지금. 난 내 주변 사람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다. 그것은 수업료라 생각하라고 말이다. 그리고 주식에 대해 공부해보라 권하고 싶다. 누구의 말처럼 지금이 기회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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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전 11월 19일 조선일보에 제 이름이 나왔네요. 워낙 유명한 이름(?)이라 자주 나오긴 하지만, 실제 제 이름이 나오니 기분이 묘합니다. ^^ 9월에 작성했던 이순신 동상에 관한 글과 함께 올라왔습니다.

저도 몰랐는데, 가끔 해보는 이름으로 네이버 뉴스 검색(^^;)을 해보았더니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에 관한 글이 올라왔더군요. 신문에서만 보던 김씨, 박씨, 이씨 등의 이름이 저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니 더욱 묘했습니다.

이순신 장군 동상을 찍지 못하게 한 이유가 오해였다니 참 아이러니하네요. 기사(원문보기 클릭) 에 보면 촬영을 금지한 적이 없고, 시위대가 동상 위에 올라가 플래카드를 거는 것을 예방하라고 했는데, 잘못 전달되어 과잉 제지한 것이라 했다고 합니다.

조선일보 기사

조선일보에 나온 기사 캡쳐

플래카드를 걸려면 플래카드가 있어야 하는데, 아내와 함께 카메라 하나 들고 나온 것을 시위대라고 착각하다니 좀 구차한 변명 같아 보이네요. 좀 찜찜하긴 하나 그래도 기자 분께서 궁금증을 해소해 주시어 감사하네요. 그런데 이런 기사에 언급되면 트랙백이라도 걸어주시면 좋았을 텐데…… 귀띔이라도 해주시던가 말이죠. 그럼 해당일자 신문이라도 사서 스크랩이라도 했을 텐데 아쉬울 따름입니다. ^^;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치의 의심도 없이 그런 잘못된 전달을 받은 것일까요? 말대로라면 분명 전

이순신 동상

당시 찍은 사진

달할 때는 “시위대가 플래카드 달지 못하게 감시해!”라고 전달했을 텐데, 수많은 전경들이 받아들일 때는 ‘아…… 시위대가 플래카드 달지 못하게 사진 찍는 사람들 제지해야겠구나!’라고 받아들였다는 것이 참 신기하네요. 여러 단계에 의해 명령이 전달되었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말한 “시위대, 플래카드”라는 키워드는 들어가게 해서 전달할 텐데 말이죠. 과잉 제지가 있었다는 것은 “아무도 사진 못 찍게 해!”라는 문장이 들어가 있었다는 건데, 시위대, 플래카드에서 아무도 사진 못 찍게 해까지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요? 아무리 창의적으로 연관성을 찾으려 해도 어렵네요

아무튼 그 동안 잘못 전달된 명령에 의해 과잉 제지를 한 부분에 대해서는 별다른 말도 없고, 그냥 머리 한대 툭 치고 “어? 그랬어? 나도 몰랐어. 미안!” 하는 격인 것 같아 좀 찜찜하네요. 그래도 과잉 제지였고, 잘못 전달된 것이라니 이제 마음껏 이순신 동상을 찍어도 되겠네요.

언제 한번 DSLR동호회들끼리 연합으로 이순신 동상을 찍으러 출사하는 것은 어떨까요? 안 그래도 이순신 동상 세척과 보존작업을 마치고 새 단장을 했다는데 말이죠. 이제 모든 오해가 풀렸으니 마음 것 사진을 찍을 수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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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은 아니지만, 나는 아직 차가 없다. 차가 없는데도 결혼을 할 수 있었으니 난 참 행운아인 것 같다. 고3때 대학에 붙으면 차를 사주겠다고 하시면서 아버지께서 아반떼를 미리 사 두신 적이 있었다. 그 때만 해도 차를 갖는다는 것은 어른처럼 보이는 방법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 아반떼는 지금까지 내 손에 들어오지 못했고, 어머니께서 10년이 넘게 잘 타고 계신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처음부터 그 차를 내게 주실 생각이 없으셨다. 한마디로 난 낚인 것이었다. (^^;;)

차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던 시절, 우연히 한 책을 보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로버트 기요사키의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였다. 그리고 거기에서 차는 부채에 해당한다고 말했고, 집과 차는 30대 이후에 사라고 누차 강조하여 말하였다. 난 그 의견에 동의하였다. 생각해보니 보험금, 세금, 기름값, 세차비등 여러 비용이 나가고 차를 자산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 비용보다 더 많은 금액을 차로 벌 수 있어야 했다. 그리고 그것은 30살 이후에 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난 차를 사지 않고 20대를 버텨왔다.

생각해보면 차가 없어서 불편한 적은 없었다. 오히려 더 편했던 점이 많은 것 같다. 지하철과 버스를 타면서 읽은 책들과 데이트를 더욱 즐길 수 있었던 점등이 그러했다. 반면 아버지 차를 가지고 나갈 때면 언제나 불안했다. 사고가 나지는 않을까, 주차 공간이 있을까, 딱지를 떼는 건 아닌가 하며 여러 고민들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시간은 유수같이 흘러, 어느덧 나는 30대에 접어들게 되었다. 그 동안 미루어왔던 차에 대한 미련을 해소할 수 있는 시기가 된 것이다. 이제 곧 차를 살 수 있겠구나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오늘 아침에 아내의 한마디로 인해 또 다시 미루게 되었다.

아내의 이야기는 차를 당분간 사지 말자는 것이다. 차를 사지 않으면 여러 장점이 있다는 것이다. 아기가 생기면 차가 꼭 필요할 것이라 말했지만, 아내는 꼭 그렇지도 않다며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아내의 말은 급할 때는 택시를 타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요즘에는 콜택시를 부르면 집 앞에 딱 대기하고 있고, 비용도 1000원밖에 안든단다. 택시를 타면 기름값에 서비스 값만 내면 되지만, 차를 가지고 있을 때 내야 하는 보험금이나 세금, 주차비등 유지비를 안내도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기를 가지면 그 때는 어떡하냐고 했더니 그것 역시 택시를 타면 된다는 것이다. 산부인과를 갈 때도 자신의 옆에서 앉아있는 것이 더 좋고, 아기를 나은 다음에도 운전하느라 혼자 손이 모자라는 것보다, 같이 아이와 있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예전에 친척 누나의 모습이 생각이 났다. 매형은 회사일 하느라 바빠서 누나가 혼자 운전하며 다니는데 갓난 아기와 3살 된 조카와 함께 나들이라도 가는 날이면 정말 혼비백산이 된다. 아이의 안전을 위해 카시트를 뒷자석에 달아놓았는데, 갓난 아기가 울기라도 하면 한 손으로 운전을 하면서 또 한 손으로는 뒷자석의 아기에게 우유병을 물려주고 트름까지 시키는데다 종알 종알 거리는 3살배기 조카와 말동무까지 해주는 최고의 멀티플레이를 바로 옆에서 목격했기 때문이다.

아내에게 운전면허를 따라고 재촉했었는데,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다. 아내의 말처럼 급할 땐 택시를 타고 평소에는 버스나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기동력이 내게 이득을 가져다 주지 않기 때문에 차를 사는 것은 좀 더 유보해도 괜찮을 것 같다. 차를 사서 사용하는 비용보다 내가 그 기동력을 이용하여 버는 수익이 많아지기 시작하면 그 때가서 차를 사도 늦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렇듯 멋진 스포츠카를 보면 설레고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아내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훨씬 더 값지고 좋은 것 같다. 지방에 갈 때도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더 싸고, 놀러 가서는 렌터카를 이용하면 원하는 차도 마음 것 바꿔가며 탈 수 있어서 더 좋다고 말하는 아내를 보니 고맙고 더 예뻐 보였다. 차가 가져다 주는 만족보다 아내가 주는 사랑이 더 크게 느껴지기 때문인 것 같다. 오늘은 아내와 함께 택시를 타고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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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드라마로 인기를 끌고 있는 에덴의 동쪽과 타짜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것은 바로 도박이다. 타짜는 도박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낸 것이고, 에덴의 동쪽 역시 카지노를 얻으려는 국회장과 신태환의 경쟁을 그리고 있다. 타짜에서 이야기하는 도박의 기본은 구라(거짓말)이고, 에덴의 동쪽에서 이야기하는 도박은 폭력과 욕정의 산물이다.

더구나 요즘 눈에 띄는 기사가 있으니 바로 한 연예인의 도박 관련 기사이다. 드라마에서나 일어나는 줄 알았던 타짜와 에덴의 동쪽 속의 도박 이야기가 실제로도 일어나니 참 씁쓸했다. 계속되는 변명과 그 전의 올림픽 연예인 응원단 사건과 관련하여 많은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최근에 한국 드라마나 뉴스를 본 외국인들은 아마도 대한민국이 도박공화국 정도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자주 나오고 있다. 우연이겠지만, 경제가 안 좋아짐과 잘 맞물려 도박에 관한 이야기들이 자주 나오고 있다.

도박은 바로 한탕이다. 타짜의 아귀 말처럼 가장 확실한 판에서 크게 먹는 것이 타짜라는 한탕주의의 기본이 도박이다. 경제가 어려워질수록 로또나 도박 같은 한탕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진다고 한다. 돈이 돌지 않으니 작은 돈으로 큰 돈을 벌려는 한탕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것이다.

모 연예인의 경우는 16억이라는 큰 돈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도박을 한 것을 보면 한탕주의는 경제가 어렵다고 해서만 나오는 것 같지는 않은 것 같기도 하다. 경제도 경제이지만, 욕심과 탐욕이 눈을 멀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싶다.

타짜에서 말하길, 상대방을 확실하게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상대방에게 좋은 패를 주어 자신이 가장 좋은 패를 가지고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면 주위를 살펴보지 않게 되고, 그 틈을 이용하면 된다고 했다. 바로 욕심과 탐욕을 극대화하여 눈을 멀게 만드는 전략인 것이다.

경제가 안 좋아지면 궁지로 몰려 밑밥을 던져주면 쉽게 욕심과 탐욕에 눈을 멀게 되기 때문에 도박이 더 많아지는 것일 거다. 모 연예인의 경우에도 많은 돈을 가지고 있지만, 욕심과 탐욕은 끝이 없기에 더 많은 돈을 얻기 위해 눈이 멀었던 것일 게다.

TV만 틀면 나오는 도박 이야기들… 이제 나도 어느새 준도박사가 된 것 같은 느낌이다. 화투가 들어온 것이 일제 시대 때 근면한 한국인을 나태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는 설도 있듯이(진위를 떠나서) 도박은 사람을 나태하게 만들고, 중독시키며, 결국은 허무하게 만들고 만다.

드라마야 자극적이고, 관심 있을만한 주제를 담아내야 하기에 도박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고 해도, 실제에서 도박에 관한 뉴스가 자주 나오는 것은 좋지 않은 현상일 것이다. 경제가 안 좋다, 안 좋다 이야기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차근 차근 한 계단씩 다시 올라가야 할 일이지, 도박과 같은 한탕주의에 올인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어려울 때일수록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데에 더 관심을 가지고, 독려해 주어야 할텐데, 기부한 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폄하하려는 일이나 하고 있으니 참 안타까운 일이다. 일부 나라를 말아먹으려 하는 역적의 언플에 휘둘리지 말고, 이럴 때일수록 힘을 모아 서로 돕고, 도박과 같은 한탕주의에는 관심을 끊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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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황당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내 눈을 의심케 할 정도로 황당한 사건이다. 문근영이 기부를 한 것에 대해 색깔론을 펼치며 폄하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정치에 관하여는 시사 블로거분들께서 자세하게 잘 말해 준 것 같다. 정치는 잘 모르지만, 기부 문화에 대한 우리나라의 현 주소를 말해주고 있는 듯 하다.

특히 스타들이 기부를 하면 곱지 않은 시선으로 색안경부터 끼고 보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성장을 한 스타들이 자신이 번 수익의 일부를 기부하는 것은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다. 기부를 하면 그 의도에 대해, 혹은 그 저의에 대해 온갖 추측을 해가며 깎아내리려 하고 보곤 한다.

하지만 기부에 대해서 그 의도나 저의는 생각할 필요가 없다. 마케팅을 하려면 그 돈을 광고비로 사용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고, 이미지 세탁을 위해서라면 로비를 해서 좋은 프로그램에 나가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의도를 가지고 기부를 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천원을 기부하건, 만원을 기부하건, 1억을 기부하건 기부라는 행위 자체는 쉽지 않은 일이다. 돈을 많이 번다고 기부하는 것이 쉬울까? 그렇지 않다. 그것도 정기적으로 꾸준히 기부를 하는 것은 더욱 힘들다. 이번 문근영 사건의 근원이라는 지만원이라는 사람은 만원이라도 기부를 해 보았는지 모르겠다. 색깔론, 지역론을 들먹이며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보이기 때문이다. 원래 그런 식의 발언을 많이 한 사람이라 하니 그 의도도 더욱 명확해지는 것 같다.

스타들의 기부가 엄친아의 질투를 유발할 수도 있다. 외모도 잘 생기고, 이쁘고, 똑똑한데다가, 사랑도 많이 받고, 활동도 왕성하게 하는데, 큰 돈을 기부까지 하면 완벽한 팔방미인인 그들을 향해 질투의 시선을 보낼 수는 있다고 본다. 하지만, 그것이 본질을 해치고 비방하고 폄하하는 일로까지 끌고 내려가는 것은 참 유치한 일이 아닌가 싶다.

스타들의 기부는 사회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이끌어낸다고 생각한다. 스타를 좋아하는 팬들에게 귀감이 되며, 기부 문화에 대해 올바른 인식을 심어줄 수 있기도 하다. 그야말로 학창시절 많이 들었던 타의 모범이 되는 일이다. 상을 주지는 못할 망정 이상한 궤변으로 노골적인 질투를 드러내는 행위는 양아치만 못한 행동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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