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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이 밝았다. 백호의 해라고 불리우는 2010년. 영화 제목으로 자주 등장했던 2010년. 2009년은 외로웠다. 많은 사람들이 외로워 삶을 마감하기도 하였다. 2009년에는 유난히 자살이 많았던 것 같다. 또한 신종플루라는 전염병으로 인해 공포에 떨기도 하였다. 밖에 나가는 것이 두려워 집 안에서 은둔 생활을 하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과 전염이라는 외부의 압력으로 인해 더욱 멀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우리에겐 서로를 이어줄 수 있는 인터넷과 대중매체라는 것이 있었기에 고독한 2009년을 잘 넘길 수 있었다. 2010년에는 화목한 가정, 더불어 사는 사회, 서로의 이웃을 사랑하는 그런 따뜻하고 훈훈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지붕뚫고 하이킥 또한 그런 2010년을 바라는 듯 2009년의 마지막을 사랑의 끈으로 장식했다. 지붕뚫고 하이킥의 주제는 소외이다. 돈은 풍족하지만, 돈을 벌기 위해 맞벌이를 하는 하이킥 가족은 어린 해리를 집안에 방치시켜 둘 수 밖에 없었다. 해리는 점점 버릇없는 해리가 되어갔지만, 그것을 해리의 탓으로 돌리기에는 가족안에 사랑과 관심이 너무 없었다.

할아버지인 이순재는 그래서 이순재 고시까지 보지 않았던가. 의사인 이지훈은 집중력이 너무 강한 나머지 집안 일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데다, 사춘기인 준혁은 밖으로 나다니기 바쁘다. 집안의 가장은 정보석은 경제적 무능함으로 인해 이순재에게 항상 구박당하며 가장으로서의 역할이 무너져 있다.

그런 하이킥 가족에게 새로운 가족이 들어왔으니 바로 세경과 신애, 그리고 과외선생 정음이다. 세경과 신애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한 아버지로 인해 하이킥 집에 식모로 들어오게 되었으나 해리에게 둘도 없는 신애가 생기게 되었고, 준혁을 집안에 묶어 둘 세경이 생겼다.


2009년을 강타한 해리의 빵꾸똥꾸는 처음엔 말 그대로 빵꾸똥꾸였다. 맘에 안드는 사람들은 모조리 빵꾸똥꾸였지만, 2009년 말이 되면서 빵꾸똥꾸의 의미는 역설이 되었다. 실은 좋아하는데 자신이 좋아한다는 표현이 어색하고 부끄러워 자신을 가리기 위해 빵꾸똥꾸를 쓰는 것이다. 이는 해리가 신애와 세경을 보고 빵꾸똥꾸라 하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빵꾸똥꾸라 부르지만 실제론 그들과 놀고 싶고 신애와 세경의 사랑 사이에 자신도 들어가고 싶기 때문이다.

공부에도 관심이 없고 오토바이를 타며 PC방을 전전하던 준혁이도 세경을 좋아하게 되면서 세경 주위를 멤돌게 된다. 그리고 집안일을 하는 세경 덕분에 집안에 항상 있으며 세세한 집안일을 돕게 된다. 물론 그것은 세경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거다.


준혁을 과외하는 정음 역시 하이킥 가족에 사랑을 심어준 주인공이기도 하다. 사랑은 역설적이라는 말처럼 티격태격 싸우던 지훈과 미운정이 들기 시작했고, 결국 사귀기로 하였다. 아직도 티격태격하긴 하지만, 그 어느 커플보다 잘 어울리는 커플이 되었다. 공부에만 온통 집중을 하여 다른데는 전혀 관심이 없던 지훈도 정음의 애교와 닥달로 인해 이제는 다른 사람의 감정도 살필 수 있게 되었고, 주위의 것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집안 모임에는 전혀 참석하지 않았던 지훈은 가족오락관에 참여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한다.

하지만 이 모든 사랑의 끈을 연결해 줄 수 있었던 것은 이순재와 김자옥의 사랑 덕분이었다. 노년의 사랑은 세상에 어떻게 비추어질까? 하이킥이 처음 시작할 때 이순재와 김자옥의 사랑을 그려냈고, 그건 큰 이슈를 끌어내지 못했다. 노년의 사랑이 아직 우리 사회에는 어색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하이킥 가족에 사랑을 불어넣어 준 것은 바로 이 노년의 로맨스 덕분이었다. 착한 줄리엔은 세경과 신애를 자신의 하숙집에서 같이 지내게 하였고, 하숙집 주인이었던 자옥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이순재는 자신의 집에 이들을 거두게 된다. 또한 과외 선생 또한 우연히 정음을 택하게 되었긴 하지만, 자옥의 하숙집이 없었다면 정음이 과외선생이 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자옥의 하숙집은 우리 시대가 지향해야 할 가족의 표본을 보여주는 듯 하다. 핵가족 사회여서 더욱 가족의 의미는 축소되었고, 축소된 만큼 확장되기도 하였다. 이제 가족이란 혈연으로 연결된 것 이상, 이웃 사촌도 가족인 셈이다.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느슨한 끈으로 연결된 이웃 사촌은 이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족의 모형이기도 하다.



하숙집의 인나와 광수, 정음 그리고 해외에서 온 줄리엔과 히릿까지. 하숙집 사람들은 하이킥 가족보다 더 끈끈하다. 집주인 자옥이 갯돈을 떼이자 이들이 나서서 잡아오고(물론 현상금 때문이었지만) 정음이 고민에 빠지면 인나가 항상 그 옆에서 고민을 들어준다. 광수는 줄리엔을 위해 손이 얼어가면서 얼음을 깎아 미니 슬로프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물론 결과는 나쁜 사람 광수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진짜 가족은 가족같지 않고, 진짜 가족이 아닌 곳은 가족 같은 하이킥 속 가족들은 서로 얽히고 설키게 되어 비빔밥 가족이 된다. 비빔밥을 양두구육이라 말한 일본은 그 어떤 나라보다 소외가 심한 나라이고 이기적인 민족성을 가지고 있기에 비빔밥 가족의 의미를 전혀 이해할 수 없겠지만, 비빔밥을 사랑하는 우리는 하이킥 가족의 사랑을 더욱 잘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2010년에는 하이킥 가족에 들어온 사랑의 끈들처럼 소외되고 고독한 가정에 관심과 사랑으로 따뜻하고 웃음 꽃이 만발하였으면 좋겠다. 기분 좋게 밝은 새해의 해가 떠오른 오늘, 그 출발이 상쾌하다. 지붕뚫고 하이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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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뚫고 하이킥에서 묵찌빠을 통해 무협지를 재현해내었다. 회사에서 우연히 실장에게 배운 묵찌빠의 비결은 바로 입으로 자신이 낸 모양을 입으로 주문을 외우듯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상대방이 입을 떼는 순간을 포착하여 모양을 변화시킴으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는 것이 정보석이 익힌 비법이었다.

묵찌빠의 비법을 익힌 정보석은 집에 들어와 해리와 현경을 보기 좋게 제압하고, 이순재까지 제압한다. 아들까지 묵찌빠로 평정한 후 강호의 고수인냥 의기양양해져 있었는데 그의 등잔 밑에는 무림의 최고수 세경이 있었음을 그는 알지 못했다. 오히려 세경에게 도전을 했지만, 자신보다 약한자는 건드리지 않는다는 강호의 법칙에 따라 그냥 피하고 만다.

그러다 신애가 정보석에게 도전장을 내밀었고, 십전십패를 하며 마빡 9대라는 맞고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본 세경은 신애에게 묵찌빠의 비급을 알려주게 된다. 정보석이 가지고 있는 수는 1단계이고, 1단계만 익혀서는 승부가 나지 않으니 세경은 신애에게 2단계를 알려준다.



1단계가 방어형이었다면, 2단계는 방어 후 공격형이었다. 1단계에서는 100%의 방어률을 보여주는 방패의 역할이었다. 하지만 공격에 있어서는 실수 시 다시 방어 태세로 돌아가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를 보완한 2단계 비법은 바로 영화 300에서 스파르타 군대가 했던 것처럼 방패로 막다가 방패 뒤에서 바로 창을 찌르는 허점 공략 전법이었다.

그건 바로 묵->빠, 찌->묵, 빠->찌의 비급이었다. 묵으로 졌을 경우는 상대방이 낼 때 바로 빠로 바꾸었다가 다시 묵을 내는 방법으로 1단계를 아는 상대방이 주문을 외울 틈을 빼앗는 동시에 방어까지 하는 전광석화같은 기술이다. 신애가 보석과의 대결에서는 신애가 찌로 지고 있었고, 보석이 찌로 공격하자 신애는 재빠르게 묵으로 바꾸었다가 찌로 바꿈으로 승리를 거두게 된다.



방어와 공격까지 동시에 이루어지니 가히 필승의 전략이라 할만한다. 이로서 보석은 강호의 고수 자리를 신애에게 내주어야 했다. 3단계를 알고 싶었으나 보석이 비급을 훔치기 위해 세경의 방에 잠입했다가 딱 걸려서 현경으로부터 지붕 뚫리는 하이킥을 맞게 되었다. 그리고 3단계이 비밀은 미스테리로 남아버리고 말았다.

과연 3단계는 무엇이었을까? 1단계가 방어형이고, 2단계가 방어와 동시에 공격형이었다. 1단계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의 허점을 공략한 비법이다. 묵찌빠 비법을 모르는 평민들은 게임의 룰에 따라 입으로 소리를 내면서 자신이 낼 모양을 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1단계에서는 자신이 낸 모양을 주문처럼 반복하면서 상대방의 입술을 주시한다. 그리고 그 입 모양이 내 입 모양과 같다면 얼른 모양을 바꾸면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1단계에서 중요한 스킬은 묵찌빠의 초성을 익히는 것이다. ㅁ,ㅉ,ㅃ 이 3가지 초성의 입모양을 익히면 재빠르게 방어할 수 있다.

즉 ㅁ 은 양순음으로 두 입술이 만나면서 나는 소리이다. 거기에 ㅜ 모음이 결합됨으로 상대방의 입술이 닫힌 상태에서 약간 앞으로 나오게 된다. ㅉ 는 구개음으로 혓바닥과 경구개 사이에서 나는 소리이다. 그래서 입술이 벌어질 수 밖에 없고, 모음 ㅣ와 만나게 되어 입 모양이 양 옆으로 벌어지게 된다. ㅃ 은 ㅁ 과 마찬가지로 양순음이지만, 거센소리에다 모음 ㅏ 와 만나게 됨으로 입술의 모양이 다물어진 상태에서 입술에 힘이 들어가기 때문에 입술 주변에 주름이 살짝 생기게 된다.



이런 점을 열심히 숙달하면 상대방이 손을 내는 동시에 바로 방어를 할 수 있다.

이것을 감안해본다면 3단계는 2단계를 익힌 사람에게 쓸 수 있는 필승의 전략일 것이다. 그렇다면 1단계의 허점을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2단계는 1단계를 잘 아는 사람에게 적중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1단계를 모르는 사람에게 2단계로 공격한다면 상대방이 계획대로 이기기 위해 내가 낸 모양을 내지 않는다면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1단계를 아는 사람은 방어에 있어서는 100% 자신만만해 하기 때문에 자신의 공격 차례가 되었을 때 필사적으로 이기려고 들 것이고, 그로 인해 상대방이 낸 모양을 낼 수 밖에 없다. 그런 자신감의 허점을 이용한 것이 2단계이다.

그럼으로 이 허점을 보완할 수 있는 것이 바로 3단계일 것이다. 예측하건데 3단계는 2단계의 묵->빠, 찌->묵, 빠->찌를 역공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신애가 방송에서처럼 찌를 냈다. 그리고 보석이 묵으로 이기고 있는 상황이다. 신애는 2단계를 알기 때문에 보석이 찌를 낼 것이라 생각하고, 잽싸개 묵으로 바꾸었다가 찌로 다시 바꿀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보석은 신애의 공략을 알고 있기에 그것을 역공격한다. 공식은 2단계와 똑같다. 다만 신애의 2단계는 방어를 할 때 그 공식을 사용하고, 보석의 3단계는 공격할 때 그 공식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보석은 신애의 예상대로 찌를 내는 것이 아니라 바로 묵을 낸다. 신애는 자신이 있었기에 바로 묵으로 바꿀 것이고 보석은 자연스레 승리를 거머질 수 있게 된다. 신애가 잽싸게 찌로 다시 바꾼다고 하여도 이미 승부는 난 것이기에 필승의 전략이 된다.


과연 3단계는 무엇이었을까? 세경의 묵찌빠 3단계 비법이 정말 궁금하다. 1박 2일의 지상렬 감독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묵찌빠에는 필승의 전략이 있다는 말 말이다. 역시 강호에는 뛰는 자 위에 나는 자가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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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더럽게 할 일 없다. 지붕뚫고 하이킥의 빵꾸똥꾸 해리는 이제 빠이빠이가 될 듯 싶다. 방송위에서는 빵꾸똥꾸라는 말이 아이들 교육상 좋지 않다며 해리가 사용하는 말들, "먹지마, 거지 같은게, 당장 나가"와 같은 말들에 대해 방송법 100조 1항을 내걸며 권고 조치를 했다고 한다. 법적인 강제성이 없다고 하는데, 이렇게 방통위가 직접 나서서 해리 교육을 시켜주니 참 코믹한 시트콤이 아닐 수 없다.

가끔씩 인터넷 상에서 자신의 아이들이 해리를 따라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왔다. 그만큼 지붕뚫고 하이킥이 인기가 많다는 반증이라 생각하며 재미있는 현상이라 보았다. 하지만 그것을 걸고 넘어져 해리라는 캐릭터에게 훈계를 하며 방송법으로 해리의 버릇을 고치려는 멍청한 일이 진짜로 일어난다는 것이 한심하기만 하다.

빵꾸똥꾸가 문제인가?


빵꾸똥꾸가 뭐가 문제인가? 아이들이 따라한다는 것이 이유라면, 수많은 드라마에 나오는 대사들은 어떻할거며, 시베리안 허스키 같은 예능 용어들은 어떻게 할 것이란 말인가. 가히 KBS에서 내놓은 막말 퇴출법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빵꾸똥꾸는 해리의 캐릭터이다. 빵꾸똥꾸는 해리를 규정하는 단어이며, 버릇없는 아이란 캐릭터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단어이기도 하다. 또한 이 시대 맞벌이 부부의 증가로 인해 아이들의 소외되고 있고, 가족의 사랑과 보살핌을 받지 못한 요즘 아이들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결과물이기도 하다. 물질만능주의에 빠져 있는 요즘 시대에 돈으로 보이지 않는 계급이 형성된 것도 어린 해리의 가감없고 거침없는 말들을 통해 현실을 꼬집고 있는 캐릭터이다.


못된 해리는 결국 어른들이 만들었고, 사회적 병폐가 만든 결과물인 셈이다. 하지만 지붕뚫고 하이킥에서는 그런 해리를 점차 변화시키고 있다. 해리의 버릇을 고치는 것은 방통위가 아니라 가족의 사랑인 셈이다. 신애와 세경이 들어온 이후 가족간에 애피소드들로 가족 안에 사랑과 추억이 생겨나며 가족을 엮어주는 끈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통해 현대에 일어나고 있는 사회적 문제점을 드러내고, 시트콤이란 장르를 통해 코믹하게 풀어내며 깊이를 담고 있는 것이 지붕뚫고 하이킥이다.

그런데 자신의 아이들을 금지옥엽으로만 키운 해리 부모와 같은 사람들이 자신의 자녀가 해리를 따라한다고 몇마디 했다고 방통위가 얼씨구나 하며 달려들어 해리에게 철퇴를 매겼으니 이처럼 코믹하고 시트콤스런 일도 없을 것 같다. 이 시대 빵꾸똥꾸의 말들을 따라 빵꾸똥꾸가 되어 빵꾸똥꾸 해리를 빵꾸똥꾸 못하게 만들고 있으니 참 빵꾸똥꾸하다.  

해리를 따라하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가족들의 관심과 사랑이다. 10개의 학원과 용돈만 두둑히 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 생각하지 말자. 아이들에겐 놀아주고 관심을 가져줄 가족이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해리를 왜 따라하겠는가? 뭔가 해리와 통하는게 있어서가 아니겠는가?



88만원 세대인 요즘, 부모들의 어려움은 사회적인 문제로 퍼져가고 있다. 빵꾸똥꾸 해리를 따라하는 아이를 키운 부모들에게도 잘못이 있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는 사회적으로 빈부격차를 극대화시키고 있는 현상을 집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월급은 줄어들고, 생활비는 오르고, 맞벌이를 해야 겨우 먹고 살 수 밖에 없는 요즘, 빵꾸똥꾸 같은 해리는 계속 생겨날 수 밖에 없으며, 그 아이들을 상징화하고, 사회적 문제를 지적하는 개념있는 드라마는 계속 방통위의 철퇴를 맞을 수 밖에 없다. 방통위가 철퇴를 내려야 하는 곳은 애꿎은 해리가 아니라 청년실업과 이런 상황을 만들어내기만 하고 싸움 박질만 하는 빵꾸똥꾸들이 모여 있는 국회에 있을 것이다.

이런 수많은 문제들을 내포하고 있는 빵꾸똥꾸 해리에게 더 이상 빵꾸똥꾸를 못하게 한다면 아마도 예전 애피소드에서 해리에게 빵꾸똥꾸를 못하게 했던 것처럼 해리들은 마구 폭발하지 않을까 싶다. 빵꾸똥꾸를 할 수 밖에 없게 만들어 놓고 근본적인 해결은 하지 않고 미봉책으로 입만 틀어막으려는 행동은 결국 해리들을 더욱 삐뚤게 만들 것이며 나중엔 폭발하게 만들지 않을까 싶다.


방통위의 존재 목적은 무엇인가? 방송에서 바른말 고운말만 쓰게 하려는 심산인가? 나쁜말이 있어야 좋은 말도 있고, 그른 말이 있어야 바른 말도 있다. 오로지 바른말만 방송에서 하게 한다면 결국 북한 방송이랑 다른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고작 시트콤의 일개 어린 캐릭터를 가지고 법을 들먹이며 철퇴를 매기며 입을 틀어막는 옹졸한 행동이 방통위의 존재 목적이란 말인가.

방송법으로 잣대를 들이대라면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못볼 것을 보여주는 국회에 들이밀기를... 빵꾸똥꾸 해리에게 빵꾸똥꾸를 마음 껏 할 수 있도록 해 줘라 이 빵꾸똥꾸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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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뚫고 하이킥을 보다가 경악을 하고야 말았다. 갑자기 난데없이 윤종신이 나와 엄청난 분량을 잡아먹으며 최악의 연기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웬만하면 시트콤에서는 연기를 못하기도 힘든데 완진히 극의 흐름을 망가뜨리며 지붕뚫고 하이킥을 태혜지 수준으로 만들어 버렸다.

지금까지 봐 온 지붕뚫고 하이킥 중 최악의 애피소드가 이번 회가 아닌가 싶다. 윤종신은 정수기 설치원으로 나오면서 모든 면에서 허약한 유리 형제로 나왔다. 눈물을 흘려서 탈수 증세가 생기고, 바람이 불어 날라가고, 다리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캐릭터로 나왔는데 재미있는 캐릭터를 얼마나 재미없게 만들었는지 채널을 돌려버리고 싶은 충동까지 느꼈다.

지붕뚫고 하이킥은 요즘 최고로 좋아하며 본방 사수를 하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오늘 마침 아버지께서 오셔서 최고로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보여주겠다고 한 뒤 지붕뚫고 하이킥을 보았는데 민망해 죽는 줄 알았다. 아버지의 소감은 초등학생들도 안웃을 이런 프로그램을 시간 아깝게 왜 보냐며 혀를 차셨다.

원래는 안 이렇다고 변명해 보았지만, 아마도 아버지께서는 하이킥을 다시는 안보지 않을까 싶다. 윤종신의 분량은 거의 반을 차지할 정도로 컸다. 처음부터 나와 마지막 장면까지 장식한 윤종신은 명품 시트콤에 흠집을 내어버리고 말았다. 패떴에서의 어르신 컨셉을 가지고 와 보약까지 먹어가며 끼워 맞추려 했지만 그럴수록 더욱 작위적인 느낌이 들 뿐이었다. 적당히 나왔다가 들어갔으면 좋았을텐데 이번 애피스도를 완전히 말아먹은 셈이다.


왜 하이킥은 윤종신을 갑자기 넣었을까? 기사를 보니 15년 지기 절친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허당 형제로 나온 윤종신과 장항준 감독은 15년 지기 절친에 진행자와 게스트 사이이기도 했고, 김병준 PD와 막역한 사이이기에 바쁜 스케줄을 뒤로 한체 특별 게스트로 출연했다는 것이다.

7년 전 '웬만하면 그들을 막을 수 없다'에서 이미 허당 형제로 나온 적이 있었고,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하는데 PD에겐 의미있는 출연있었을 지 몰라도 보는 사람으로서는 정말 짜증 났다.

지붕뚫고 하이킥에 왜 무리수를 두었을까? 정황상으로는 김병욱 PD가 요청해서 특별 출연했겠지만, 굳이 특별 출연을 안해도 사용할 소스가 굉장히 많은데 무리수를 두어가며 우정을 과시한 것은 오버가 아니었나 싶다. 허당 형제, 올해 최악의 캐릭터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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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관심을 받고 자라고, 관심을 받으며 살길 원한다. 서로의 관심 속에 사회성이 길러지며, 서로 어울려 살아가는 것이 인생사일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처럼 말이다. 하지만 요즘은 경제적 이유로 인해 가족이 해체되고 있다. 경제적 이유란 돈이겠지만, 돈의 많고 적음이 아닌, 돈을 향한 욕망의 강도가 소외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지붕뚫고 하이킥을 보며 가장 재미있게 보는 캐릭터이자, 슬픈 캐릭터는 해리인 것 같다. 빵꾸똥꾸로 많은 이슈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해리이지만, 황정음과의 친구편에서 해리의 의사소통 문제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해리는 세상의 사람을 두분류로 나눈다. 그것은 빵꾸똥꾸와 친구이다. 그나마 친구는 거의 없고, 대부분의 사람이 빵꾸똥꾸이다.


빵꾸똥꾸라는 말은 이순재가 방구를 뀌자 이현경에 똥꼬 좀 막으라는 말에 말이 느렸던 어린 해리가 빵꾸똥꾸라는 말을 하게 된 것이다. 해리에게 빵꾸똥꾸는 그 단어의 뜻보다는 담겨진 의미가 많은 단어이다. 처음으로 칭찬을 받았던 단어였고, 그 단어를 반복할수록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었다.

하지만 해리가 생각하는 빵꾸똥꾸의 뜻과 사람들이 생각하는 빵꾸똥꾸의 뜻은 달랐다. 해리에게 있어서 빵꾸똥꾸는 관심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지저분한 단어, 혹은 불쾌한 단어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에서 의사소통의 문제는 일어나게 되었을 것이다.


어릴 땐 관심을 받기 위해 빵꾸똥꾸라 해도 사람들이 귀엽게 봐 주었겠지만, (특히나 말이 느렸기에) 성장할수록 해리가 빵꾸똥꾸라하면 사람들의 표정은 불편해하고 기분 나빠했을 것이다. 거기에서 해리는 의사소통의 오해로 상처를 받게 되었고, 그 이후 친구 외의 모든 사람은 빵꾸똥꾸로 인식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해리는 의사소통에 서투른 아이가 되었을 것이다. 해리와 친구가 되면 우선 절친이라는 의미로 빠진 앞니를 보아야 하고, 해리의 입에 들어갔다 나온 것도 거침없이 먹어야 한다. 지저분하기 그지 없는 그런 행동들은 해리에게 있어서 관심의 표현이었지만, 사람들에겐 지지분하고 불쾌한 행동일 뿐이었다. 그 의미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관심을 거부하게 되고, 그 관심을 거부한 거절감에 해리는 폭발하며 빵꾸똥꾸를 외치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앞니를 보여주고, 먹던 것을 주는 행위는 해리에게 있어서 최상의 관심 표현이고, 절친에게만 하는 행동이다. 그 의미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것을 빵꾸똥꾸같은 지저분한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관심의 표현으로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그렇게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이는 바로 잡아주어야 하는 것이고, 바로 잡아준다는 것은 교육에 달려있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의 부재가 해리를 빵꾸똥꾸로 만들어버렸다고 할 수 있다.

학교에서의 인성교육 부재, 가정에서의 가정교육 부재가 만들어낸 우리 시대의 아이들인 것이다. 이런 아이들이 잘못되었다는 것보다는 바로 잡아주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교육을 통해 충분히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리는 친구를 만들고 싶어한다. 직장에 다니느라 항상 바쁜 엄마, 회사에서 오랜 시간 있는 아빠와 할아버지, 학교가서 늦게 오는 오빠, 병원가서 아예 안들어오기 일수이고, 들어와도 들은체도 못하는 삼촌 사이에서 해리는 소외감과 고독을 느꼈을 것이고, 그것은 소통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소통의 부재는 오해를 불러일으켰고, 오해의 연속은 해리를 열받게 했다. 그래서 해리는 모든 사람들을 빵꾸똥꾸로 부르고 있는 것이다. 즉, 그 말의 의미는 "자신의 관심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바보 같은 사람들이란 뜻이 아닐까 싶다.

해리가 신애와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다. 신애의 순수함과 작은 것에 대한 관심들이 해리와 친구가 되게 만들어주지 않을까 기대된다. 같은 또래의 전혀 다른 환경의 아이.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비로서 소통이 이루어지고 화합이 일어나는 것이니 말이다. 해리가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성을 배워 신애와 절친이 되는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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