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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을 뜨겁게 달군 두 프로그램이 있으니 바로 무한도전과 지붕뚫고 하이킥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지붕뚫고 하이킥을 기다리느라 7시 40분만 되면 쇼파에 저절로 앉게 되고, 토요일에는 무한도전이 있어서 신난다. 지붕뚫고 하이킥은 연예 대상의 각 부분을 휩쓸었고, 무한도전 멤버들 역시 많은 상을 타는 풍성한 한 해였다.

하이킥과 무한도전을 즐겨보다보니 이 두 프로그램 사이에 공통점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아니 발견하려 노력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이킥과 무한도전이 닮은 점은 무엇일까? 2009년의 화두이자 2010년에도 인기 몰이를 할 이 두 프로그램의 공통점을 살펴보도록 하자.

공통점의 첫번째로 대한민국 평균이하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대한민국 평균이하 무한도전


무한도전은 대한민국 평균이하를 자처한다. 학벌지상주의에서 연예인이 학력을 밝히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높은 학력이 아닌 다음에야 우리 사회에서 낮은 학력을 밝힌다는 것은 스스로 자신의 지위를 약화시키는 것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회의원이고, 연예인이고 다들 학력 위조하기 바쁘지 않는가. 하지만 무한도전 멤버들 중 대졸은 노홍철을 제외하고 없다. 모두 고졸인 셈이다.

그렇다고 지능이 높은 것도 아니다. IQ검사를 통해 밝혀진 지능엔 100 이하도 있었다. 외모도 평균인 외모는 없다. 정준하, 노홍철, 유재석, 박명수, 정형돈, 길... 그리고 김태호PD까지...가히 대한민국 평균이하라 할만하다. ^^;;

체력도 저질이다. 조금만 뛰면 헐떡이고, 지구력에 있어서는 최하이다. 나이는 더욱 대한민국 평균 이하이다. 제일 어린 노홍철이 31살이고, 유재석과 박명수, 정준하는 이제 불혹의 나이에 가까워졌다. 사오정, 오륙도가 일반화된 우리 사회에서 40대라는 것은 이미 대한민국 평균 이하임을 나타낸다.

대한민국 평균이하 하이킥


지붕뚫고 하이킥도 대한민국 평균이하이다. 이순재는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지만, 항상 방구를 달고 다니는데다 주책바가지인 할배이다. 이현경은 체육 교사이지만, 태권도를 하다가 부상으로 그만 둔 실패를 경험하기도 했다. 정보석은 부사장이지만, 이순재에게 항상 욕을 먹는 무능한 경영자이자, 집안에서는 모두에게 무시당하는 가장이기도 하다.

준혁이는 매번 성적이 뒤에서 놀고, 지훈은 의사이지만, 인간관계에 문제가 있다. 해리는 버릇없는 빵꾸똥꾸이고, 세경과 신애는 세상물정 모르는 시골소녀이다. 정음은 서울대가 아닌 서운한 서운대이고, 인나와 광수는 88만원 세대도 못된 하류인생이다. 줄리엔도 취업하지 못한 외국인이었지만, 최근에 학교 원어민 선생이 되었다.

대한민국 평균이하의 비밀


대한민국 평균이하를 자처하는 무한도전과 하이킥 가족들. 왜 이들은 대한민국 평균이하로 시작했을까? 그건 바로 겸손과 공감 그리고 발전에 있다.

겸손과 공감

우리는 보통 나보다 못한 사람에게 관대하고, 잘난 사람에게 야박하다. 실제 행동에 있어서는 나보다 못한 사람에게 야박하고, 잘난 사람에겐 관대하지만 말이다. 인간관계에서 힘을 발휘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건 진심이고, 마음이다. 우리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면 나보다 못한 사람에겐 경계심을 풀게 되고, 오픈 마인드가 됨을 알 수 있다.

무한도전의 멤버들과 하이킥 가족들이 잘난 점을 내세운다면 얼마든지 다들 엄친아가 될 수 있다. 유재석과 박명수는 십억대 연봉이며, 다들 억대 연봉이다. 수많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다니고, 돌아다니며 각종 혜택을 받고 다닌다. 얼마나 그런 대접이 많았으면 길이 가게에 갔을 때 소시지를 그냥 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을까?

하이킥 가족들도 마당이 있는 넓은 2층 집에, 큰 회사 사장과 부사장이 있는 집안이고, 의사에 선생님까지 부러울 것이 없는 상류층이다. 이벤트에 수천만원을 때려넣는 층을 중산층이라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만약 이런 점을 강조했다면 아마도 무한도전과 하이킥은 지금과 같은 공감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겸손은 미덕이라고, 자신을 단점을 강조하며 낮은 자세로 시작한 무한도전과 하이킥은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발전

또한 우리는 무한도전과 하이킥을 통해 발전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인류의 과학 발전만큼이나 우리는 엔트로피의 법칙과 반대되는 삶을 살기 원한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는 미래 지향적인 삶을 동경하는 유일한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무수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발전은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이다. 1등만 기억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기억되는 것은 1등만 되어도 살아남는 것은 가속력이다. 우리는 속도와 가속력을 잘 구분하지 않는다. 하지만 실제로 삶의 많은 부분에서 가속력은 중요한 기준이 된다. 그리고 이 가속력은 발전을 의미하기도 한다.

일상이 반복이 계속되는 것보다 더 지루한 것은 없을 것이다.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는 듯한 데자뷰의 연속인 인생을 마치 찰리 체플린이 나사를 조이는 것과 같이 기계적인 삶일 뿐이다. 그런데 무한도전과 하이킥은 대한민국 평균 이하로 시작함으로, 이런 기계적인 삶부터 시작한다.



가속력이 붙기 가장 쉬운 상태는 100일 때보다 0일때이다. 반에서 60등하던 학생은 발전할 가능성이 60계단이 있지만, 1등인 학생은 발전할 가능성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반에서 1등하던 학생은 2등이 되면 자살 충동을 느낀다. 하지만 60등하던 학생이 50등만 하여도 선생님께 칭찬받고, 부모님께 칭찬받고, 친구들이 축하해준다. 발전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무한도전이 엄청난 일에 도전할 때 대한민국 평균이하는 밑밥이 된다. 침이나 흘리고, 제 발에 걸려 넘어지는 칠푼이 팔푼이들이 패션쇼를 하고, 에어로빅 대회에 나가 상을 타고, 뉴욕에 가서 한식을 알리고 뉴욕타임즈에 비빔밥 전면광고를 내며 일본 우익 구로다의 관심을 끌어내 세계적인 이슈화를 시키기도 한다.

하이킥 또한 각자의 삶에 찌들어 가족임에도 가족같이 않았던 삶 속에 가족의 사랑이란 끈으로 서로 묶여 집안일을 돌보고 주위 사람을 배려하며, 서로 칭찬하고 격려하는 화목한 가정으로 발전하고 있다. 빵꾸똥꾸 해리는 진정한 친구를 만들어가며 철이 들고 있고, 현경과 보석은 점차 아이들에 대해 신경을 쓰기 시작한다. 준혁은 말썽꾸러기 동생 해리를 위해 숯불을 굽고 업어서 집까지 오며, 이순재는 자신의 방구까지 사랑해줄 사람을 만나기도 했다.

우리의 삶에 적용


우리는 무한도전과 하이킥을 통해 겸손의 힘을 배워야 할 것이다. 아무리 자기 PR의 시대라고 하지만, 그건 이미 10여년 전 이야기다. 요즘은 자기 PR의 시대가 아니라 자기 브랜드의 시대이다. 자기 PR이 "나 정말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것이라면 브랜드는 "당신 정말 괜찮은 사람이에요"라고 듣는 것의 차이이다. 즉, 겸손과 발전을 통해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2010년이 밝았다. 더 나은 내일이 기다리고 있다. 자신의 단점과 실패에 한없이 좌절하여 있지 말고, 그것이 당신에게 바로 기회임을 기억하자. 단점과 실패가 있다면 무한도전과 하이킥처럼 그것을 밝히고 낮은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자. 그것을 인정할 때 발전이 시작되며, 그 발전은 지금의 무한도전과 하이킥의 명성만큼 당신을 명성있게 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무한도전하는 2010년에 지붕뚫고 하이킥을 날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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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이 밝았다. 백호의 해라고 불리우는 2010년. 영화 제목으로 자주 등장했던 2010년. 2009년은 외로웠다. 많은 사람들이 외로워 삶을 마감하기도 하였다. 2009년에는 유난히 자살이 많았던 것 같다. 또한 신종플루라는 전염병으로 인해 공포에 떨기도 하였다. 밖에 나가는 것이 두려워 집 안에서 은둔 생활을 하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과 전염이라는 외부의 압력으로 인해 더욱 멀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우리에겐 서로를 이어줄 수 있는 인터넷과 대중매체라는 것이 있었기에 고독한 2009년을 잘 넘길 수 있었다. 2010년에는 화목한 가정, 더불어 사는 사회, 서로의 이웃을 사랑하는 그런 따뜻하고 훈훈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지붕뚫고 하이킥 또한 그런 2010년을 바라는 듯 2009년의 마지막을 사랑의 끈으로 장식했다. 지붕뚫고 하이킥의 주제는 소외이다. 돈은 풍족하지만, 돈을 벌기 위해 맞벌이를 하는 하이킥 가족은 어린 해리를 집안에 방치시켜 둘 수 밖에 없었다. 해리는 점점 버릇없는 해리가 되어갔지만, 그것을 해리의 탓으로 돌리기에는 가족안에 사랑과 관심이 너무 없었다.

할아버지인 이순재는 그래서 이순재 고시까지 보지 않았던가. 의사인 이지훈은 집중력이 너무 강한 나머지 집안 일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데다, 사춘기인 준혁은 밖으로 나다니기 바쁘다. 집안의 가장은 정보석은 경제적 무능함으로 인해 이순재에게 항상 구박당하며 가장으로서의 역할이 무너져 있다.

그런 하이킥 가족에게 새로운 가족이 들어왔으니 바로 세경과 신애, 그리고 과외선생 정음이다. 세경과 신애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한 아버지로 인해 하이킥 집에 식모로 들어오게 되었으나 해리에게 둘도 없는 신애가 생기게 되었고, 준혁을 집안에 묶어 둘 세경이 생겼다.


2009년을 강타한 해리의 빵꾸똥꾸는 처음엔 말 그대로 빵꾸똥꾸였다. 맘에 안드는 사람들은 모조리 빵꾸똥꾸였지만, 2009년 말이 되면서 빵꾸똥꾸의 의미는 역설이 되었다. 실은 좋아하는데 자신이 좋아한다는 표현이 어색하고 부끄러워 자신을 가리기 위해 빵꾸똥꾸를 쓰는 것이다. 이는 해리가 신애와 세경을 보고 빵꾸똥꾸라 하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빵꾸똥꾸라 부르지만 실제론 그들과 놀고 싶고 신애와 세경의 사랑 사이에 자신도 들어가고 싶기 때문이다.

공부에도 관심이 없고 오토바이를 타며 PC방을 전전하던 준혁이도 세경을 좋아하게 되면서 세경 주위를 멤돌게 된다. 그리고 집안일을 하는 세경 덕분에 집안에 항상 있으며 세세한 집안일을 돕게 된다. 물론 그것은 세경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거다.


준혁을 과외하는 정음 역시 하이킥 가족에 사랑을 심어준 주인공이기도 하다. 사랑은 역설적이라는 말처럼 티격태격 싸우던 지훈과 미운정이 들기 시작했고, 결국 사귀기로 하였다. 아직도 티격태격하긴 하지만, 그 어느 커플보다 잘 어울리는 커플이 되었다. 공부에만 온통 집중을 하여 다른데는 전혀 관심이 없던 지훈도 정음의 애교와 닥달로 인해 이제는 다른 사람의 감정도 살필 수 있게 되었고, 주위의 것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집안 모임에는 전혀 참석하지 않았던 지훈은 가족오락관에 참여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한다.

하지만 이 모든 사랑의 끈을 연결해 줄 수 있었던 것은 이순재와 김자옥의 사랑 덕분이었다. 노년의 사랑은 세상에 어떻게 비추어질까? 하이킥이 처음 시작할 때 이순재와 김자옥의 사랑을 그려냈고, 그건 큰 이슈를 끌어내지 못했다. 노년의 사랑이 아직 우리 사회에는 어색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하이킥 가족에 사랑을 불어넣어 준 것은 바로 이 노년의 로맨스 덕분이었다. 착한 줄리엔은 세경과 신애를 자신의 하숙집에서 같이 지내게 하였고, 하숙집 주인이었던 자옥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이순재는 자신의 집에 이들을 거두게 된다. 또한 과외 선생 또한 우연히 정음을 택하게 되었긴 하지만, 자옥의 하숙집이 없었다면 정음이 과외선생이 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자옥의 하숙집은 우리 시대가 지향해야 할 가족의 표본을 보여주는 듯 하다. 핵가족 사회여서 더욱 가족의 의미는 축소되었고, 축소된 만큼 확장되기도 하였다. 이제 가족이란 혈연으로 연결된 것 이상, 이웃 사촌도 가족인 셈이다.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느슨한 끈으로 연결된 이웃 사촌은 이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족의 모형이기도 하다.



하숙집의 인나와 광수, 정음 그리고 해외에서 온 줄리엔과 히릿까지. 하숙집 사람들은 하이킥 가족보다 더 끈끈하다. 집주인 자옥이 갯돈을 떼이자 이들이 나서서 잡아오고(물론 현상금 때문이었지만) 정음이 고민에 빠지면 인나가 항상 그 옆에서 고민을 들어준다. 광수는 줄리엔을 위해 손이 얼어가면서 얼음을 깎아 미니 슬로프를 만들어주기도 한다. (물론 결과는 나쁜 사람 광수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진짜 가족은 가족같지 않고, 진짜 가족이 아닌 곳은 가족 같은 하이킥 속 가족들은 서로 얽히고 설키게 되어 비빔밥 가족이 된다. 비빔밥을 양두구육이라 말한 일본은 그 어떤 나라보다 소외가 심한 나라이고 이기적인 민족성을 가지고 있기에 비빔밥 가족의 의미를 전혀 이해할 수 없겠지만, 비빔밥을 사랑하는 우리는 하이킥 가족의 사랑을 더욱 잘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2010년에는 하이킥 가족에 들어온 사랑의 끈들처럼 소외되고 고독한 가정에 관심과 사랑으로 따뜻하고 웃음 꽃이 만발하였으면 좋겠다. 기분 좋게 밝은 새해의 해가 떠오른 오늘, 그 출발이 상쾌하다. 지붕뚫고 하이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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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욤 뮈소의 소설 '당신 없는 나를'을 읽었다. 기욤 뮈소가 누군지 모른다고 하자, 아내는 그 유명한 소설가도 모르냐며 핀찬을 주었다. 그렇게 유명한 사람이냐고 묻자, 아내는 기욤 뮈소의 소설을 빼놓지 않고 다 보았다고 한다. 기욤 뮈소는 베스트셀러 '구해줘','그 후에','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등의 소설을 써왔고, 그후에(Et apres...)는 Afterwards라는 영화로 나오기도 했다. '그 후에'는 내년에 출간될 예정이기도 하다.

아내가 읽는 책과 내가 읽는 책의 스타일은 좀 다르다. 아내가 재미있다고 한 책은 내가 보면 재미없었다. 그리고 내가 권해준 책은 아내가 재미없어 했다. 난 주로 자기계발책을 좋아하지만, 아내는 소설책과 같은 문학적인 책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아내는 편향된 나의 독서 습관이 문제라고 말하지만, 어릴 적부터 독서 자체를 싫어했던 것을 생각해 보면 내겐 장족의 발전이다. 그래도 아내의 조언은 내게도 하나의 과제거리였다. 그렇게 해서 아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기로 작심했다.

'당신 없는 나는'을 순식간에 읽어버렸다. 2시간정도 걸린 것 같다. 읽고 나서는 책을 읽었다기보다는 한편의 영화를 본 것만 같았다. 프랑스와 미국의 센프란시스코가 눈 앞에 펼쳐지는 듯 섬세하고 속도감 있는 글은 순식간에 그 속으로 빨려들어가게 만들었다. 처음엔 익숙하지 않았던 프랑스 이름도 어느새 부드럽게 눈에 감기기 시작했고, 왜 아내가 기욤 뮈소의 소설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또한 아내의 영역에 한걸음이나마 공유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



사랑과 죽음은 모두 두음절

사랑, 죽음 이 둘의 공통점은? 바로 모두 두음절로 되어있다는 것? 재미있게도 사랑과 죽음은 한국어로도 두 음절이고, 영어로도 두음절이다. 작가가 프랑스인이기에 불어로도 두음절인가보다. 오묘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사랑과 죽음은 <당신 없는 나는?>의 주제이기도 하다.

젊은 패기가 넘치는 마르탱의 사랑, 사랑의 결실을 증오하다 부정으로 죽음을 양도한 아키볼드, 아키볼드를 죽음의 문턱에서 기다린 발랑틴, 그리고 이 모든 이를 사랑한 천사 가브리엘.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다면? 생각하기 싫은 질문이지만, 삶은 잔혹하게도 질문에 대한 대답을 연기하더라도 그 대답을 하게 만든다. 기욤 뮈소는 대답하기 싫은 질문에 대해 소설로 대답을 한다. 그리고 사랑과 죽음의 중간 문턱을 만들어내어 사랑과 죽음 사이에서 선택하는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을 담아내고 있다.

줄리엣이 죽자, 로미오도 죽음으로 사랑에 답한다. 어린 애송이의 사랑이라 치부할지도 모르지만, 사랑은 남녀노소가 없이 똑같이 작용한다. 하지만 사랑만이 꼭 죽음으로 내 모는 것은 아니다. 사랑이 없어도 죽음과 더욱 밀접해지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대는 오히려 사랑과 죽음보다는 사랑이 없는 고독과 죽음이 걸맞는 콤비인 것 같다. 소외로 인해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 고독과 사랑 또한 떼어놓을 수 없는 두음절인 것 같다.
 
Big Heart of Art - 1000 Visual Mashups
Big Heart of Art - 1000 Visual Mashups by qthomasbower 저작자 표시



사랑을 잃는다면?

우리는 다양한 사랑을 하며 살아간다. 남을 위해 기부하기도 하고, 몰래 도와주기도 하며, 열정적으로 키스를 퍼붓기도 하고, 멀리서 따뜻하고 차분한 사랑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랑을 잃는 순간 술에 절어 뇌를 마취시키며, 분노하여 시비를 걸고 살인을 저지른다. 때론 너무도 슬퍼서 자기연민에 빠져 죽음을 기도하기도 한다.

그런 시련을 당한 사람들은 사랑이란 달콤한 말에 아예 빠져들지 않기 위해서 사랑을 외면한다. 이 시대에 인스턴트 사랑이 유행하고, 초식남과 골드미스를 동경하는 것도 이런 사랑을 외면하려는 마음 때문이 아닐까?

예술의 나라 프랑스 작가인 가욤 뮈소는 그의 소설, '당신 없는 나는'에서 사랑을 외면하는 것보다 사랑을 찾아가는 것이 더 아름답다고 말하고 있다. 설령 죽음이 두렵더라도 그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천국의 열쇠 다이아몬드만 있다면 죽음이 더 이상 사랑을 방해하지 못할 것이다.

'당신 없는 나는'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이 감동을 다 전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소설은 디테일하고 흥미롭다. 지루한 장면도 없이 순식간에 지나가는 아쉬움이 더 큰 '당신 없는 나는'은 소외와 고독으로 가득차 사랑에 냉소적이 된 이 시대에 사랑을 하라고 권하는 책인 것 같다.

'당신 없는 나는'의 작가 기욤 뮈소가 방한을 한다고 하네요. 2010년 1월 10일에는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12일에는 독자와의 만남, 13일에는 코엑스 반디앤루니스에서 팬사인회를 한다고합니다. 자세한 정보는 http://www.baleun.co.kr/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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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뚫고 하이킥에서 묵찌빠을 통해 무협지를 재현해내었다. 회사에서 우연히 실장에게 배운 묵찌빠의 비결은 바로 입으로 자신이 낸 모양을 입으로 주문을 외우듯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상대방이 입을 떼는 순간을 포착하여 모양을 변화시킴으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는 것이 정보석이 익힌 비법이었다.

묵찌빠의 비법을 익힌 정보석은 집에 들어와 해리와 현경을 보기 좋게 제압하고, 이순재까지 제압한다. 아들까지 묵찌빠로 평정한 후 강호의 고수인냥 의기양양해져 있었는데 그의 등잔 밑에는 무림의 최고수 세경이 있었음을 그는 알지 못했다. 오히려 세경에게 도전을 했지만, 자신보다 약한자는 건드리지 않는다는 강호의 법칙에 따라 그냥 피하고 만다.

그러다 신애가 정보석에게 도전장을 내밀었고, 십전십패를 하며 마빡 9대라는 맞고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본 세경은 신애에게 묵찌빠의 비급을 알려주게 된다. 정보석이 가지고 있는 수는 1단계이고, 1단계만 익혀서는 승부가 나지 않으니 세경은 신애에게 2단계를 알려준다.



1단계가 방어형이었다면, 2단계는 방어 후 공격형이었다. 1단계에서는 100%의 방어률을 보여주는 방패의 역할이었다. 하지만 공격에 있어서는 실수 시 다시 방어 태세로 돌아가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를 보완한 2단계 비법은 바로 영화 300에서 스파르타 군대가 했던 것처럼 방패로 막다가 방패 뒤에서 바로 창을 찌르는 허점 공략 전법이었다.

그건 바로 묵->빠, 찌->묵, 빠->찌의 비급이었다. 묵으로 졌을 경우는 상대방이 낼 때 바로 빠로 바꾸었다가 다시 묵을 내는 방법으로 1단계를 아는 상대방이 주문을 외울 틈을 빼앗는 동시에 방어까지 하는 전광석화같은 기술이다. 신애가 보석과의 대결에서는 신애가 찌로 지고 있었고, 보석이 찌로 공격하자 신애는 재빠르게 묵으로 바꾸었다가 찌로 바꿈으로 승리를 거두게 된다.



방어와 공격까지 동시에 이루어지니 가히 필승의 전략이라 할만한다. 이로서 보석은 강호의 고수 자리를 신애에게 내주어야 했다. 3단계를 알고 싶었으나 보석이 비급을 훔치기 위해 세경의 방에 잠입했다가 딱 걸려서 현경으로부터 지붕 뚫리는 하이킥을 맞게 되었다. 그리고 3단계이 비밀은 미스테리로 남아버리고 말았다.

과연 3단계는 무엇이었을까? 1단계가 방어형이고, 2단계가 방어와 동시에 공격형이었다. 1단계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의 허점을 공략한 비법이다. 묵찌빠 비법을 모르는 평민들은 게임의 룰에 따라 입으로 소리를 내면서 자신이 낼 모양을 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1단계에서는 자신이 낸 모양을 주문처럼 반복하면서 상대방의 입술을 주시한다. 그리고 그 입 모양이 내 입 모양과 같다면 얼른 모양을 바꾸면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1단계에서 중요한 스킬은 묵찌빠의 초성을 익히는 것이다. ㅁ,ㅉ,ㅃ 이 3가지 초성의 입모양을 익히면 재빠르게 방어할 수 있다.

즉 ㅁ 은 양순음으로 두 입술이 만나면서 나는 소리이다. 거기에 ㅜ 모음이 결합됨으로 상대방의 입술이 닫힌 상태에서 약간 앞으로 나오게 된다. ㅉ 는 구개음으로 혓바닥과 경구개 사이에서 나는 소리이다. 그래서 입술이 벌어질 수 밖에 없고, 모음 ㅣ와 만나게 되어 입 모양이 양 옆으로 벌어지게 된다. ㅃ 은 ㅁ 과 마찬가지로 양순음이지만, 거센소리에다 모음 ㅏ 와 만나게 됨으로 입술의 모양이 다물어진 상태에서 입술에 힘이 들어가기 때문에 입술 주변에 주름이 살짝 생기게 된다.



이런 점을 열심히 숙달하면 상대방이 손을 내는 동시에 바로 방어를 할 수 있다.

이것을 감안해본다면 3단계는 2단계를 익힌 사람에게 쓸 수 있는 필승의 전략일 것이다. 그렇다면 1단계의 허점을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2단계는 1단계를 잘 아는 사람에게 적중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1단계를 모르는 사람에게 2단계로 공격한다면 상대방이 계획대로 이기기 위해 내가 낸 모양을 내지 않는다면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1단계를 아는 사람은 방어에 있어서는 100% 자신만만해 하기 때문에 자신의 공격 차례가 되었을 때 필사적으로 이기려고 들 것이고, 그로 인해 상대방이 낸 모양을 낼 수 밖에 없다. 그런 자신감의 허점을 이용한 것이 2단계이다.

그럼으로 이 허점을 보완할 수 있는 것이 바로 3단계일 것이다. 예측하건데 3단계는 2단계의 묵->빠, 찌->묵, 빠->찌를 역공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신애가 방송에서처럼 찌를 냈다. 그리고 보석이 묵으로 이기고 있는 상황이다. 신애는 2단계를 알기 때문에 보석이 찌를 낼 것이라 생각하고, 잽싸개 묵으로 바꾸었다가 찌로 다시 바꿀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보석은 신애의 공략을 알고 있기에 그것을 역공격한다. 공식은 2단계와 똑같다. 다만 신애의 2단계는 방어를 할 때 그 공식을 사용하고, 보석의 3단계는 공격할 때 그 공식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보석은 신애의 예상대로 찌를 내는 것이 아니라 바로 묵을 낸다. 신애는 자신이 있었기에 바로 묵으로 바꿀 것이고 보석은 자연스레 승리를 거머질 수 있게 된다. 신애가 잽싸게 찌로 다시 바꾼다고 하여도 이미 승부는 난 것이기에 필승의 전략이 된다.


과연 3단계는 무엇이었을까? 세경의 묵찌빠 3단계 비법이 정말 궁금하다. 1박 2일의 지상렬 감독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묵찌빠에는 필승의 전략이 있다는 말 말이다. 역시 강호에는 뛰는 자 위에 나는 자가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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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방송연예대상이 오늘 열렸다. 오늘도 어김없이 3사에서는 가요대상, 연예대상, 연기대상등 다양한 어워드 시리즈가 방영되고 있었다. 어제는 그래도 인디아나존스라도 해 주었는데 오늘은 채널 선택권이 없었다. 그냥 가요, 연예, 연기 모두 하나로 통합한 방송인상은 없을까? 그것도 3사 통합으로 말이다. 요즘은 말이 가수고 배우고, 예능인이지, 모든 분야에서 활동하니 말이다.

그리고 우려했던 일이 일어났다. 우려까지는 아니고 황당한 시츄에이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방송 3사 통합으로 시상식의 권위를 높히자고 했더니 SBS에서는 이효리를 공동대상으로 주면서 시상식의 막장을 보여주었다.

작년에 MBC에서 연기대상에 김명민에 끼워넣기로 송승헌을 집어넣어 막장 시상식의 진가를 보여주더니 2009 SBS 방송연예대상에서는 유재석과 함께 이효리를 끼워넣음으로 막장 시상식을 이어갔다. SBS가 하고 싶었던 말은 '패떴'에게 상을 주고 싶다는 뜻이 아닌가 싶다.


패떴을 통해 이미지를 망치고 있는 유재석과 이효리에게 미안해서일까? 가수인 이효리에게, 그것도 패떴 하나만 하고 있는 이효리에게 대상을 준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뭐 내가 이해 안된다고 바뀔 것도 아니지만, 받은 사람도 영 찜찜하지 않을까 싶다.

이로서 유재석은 MBC와 SBS에서 대상을 받게 되었지만, SBS에서의 상은 공동수상이라는 점에서 별로 탐탁지 않을 것 같다. 대상이라면 최고의 자리를 가리는 상인데 최고의 자리를 나눠먹었을 뿐 아니라 라이벌이자 양대산맥인 강호동도 아니고 방송 3사 통틀어 패떴밖에 하지 않는 이효리에게 대상을 주다니 받고도 깨름직할 것 같다.

안그래도 유재석은 패떴으로 인해 안티가 양성되고 있다. 안티없는 청정 연예인 유재석에게 안티가 생긴 것은 패떴이 얼마나 유재석의 가치를 떨어뜨렸는지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패떴이 보여주는 도덕적 의구심은 그대로 유재석에게 전가되어 안티를 양성하게 된 것이다.


댄스 가수인 이효리가 유재석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예능인이라니 참 기가찰 노릇이다. 시청자인 나도 기가 차는데 예능인들은 얼마나 기가 찰까? 이것이야 말로 자기들끼리 북치고 장구치는 막장 시상식이 아닌가 싶다.

어쨌든 대상을 받은 유재석과 이효리에게 축하를 전한다. SBS의 막장 시상식 때문에 본의 아니게 이효리를 언급하게 되었으나 이효리가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주니까 당연히 받는게 인지상정이니 말이다. 받고도 씁쓸하고 보고도 짜증나는 SBS의 시상식에는 권위는 민망함만 있을 뿐이었다. 

좀 제대로 된 시상식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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