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두 거장,
봄여름가을겨울의 8집과
서태지 8집을 이야기하다.
봄여름가을겨울이 돌아왔다. 8집 앨범 {아름답다, 아름다워!}는 총 12개의 사랑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그러나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6년만에 돌아온 거장에 대해 인터넷으로 살펴본 소식은 비슷비슷한 인터뷰 기사들뿐, TV에서는 공개무대 방송 하나 외엔 그들을 만날 수 있는 음악 프로그램이 마땅히 없는듯해 보인다.
사실 그도 그럴 것이, 봄여름가을겨울은 뮤지션이지 이슈메이커가 아니다. 그 흔한 뮤직비디오도 하나 없다. 억대를 쏟아 부은 티저 홍보도 없다. 소박한 음반 하나 속에서 20년간의 음악인생을 집대성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자극적인 이슈가 없는 봄여름가을겨울의 음반이, 화려한 마케팅이 없다는 이유로 요즘 나오는 기획된 신인 가수들의 신보보다도 과소 평가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여기서 떠오르는 인물 하나. 조금 앞서 컴백한 서태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이슈를 몰고 다니는, 그래서 ‘서태지’라는 이름 하나 만으로도 음반을 안들어 볼 수 없게 만드는 뮤지션. 데뷔 20년이 되어 8집 앨범을 발매한 봄여름가을겨울과, 어느덧 데뷔 16년이 되어 8번째 음반 ‘MOAI’를 발매한 서태지. 두 거장의 앨범을 비교해 보고자 한다.
(앞서 말하건데, 나는 서태지와 봄여름가을겨울의 팬이다. 두 뮤지션은 어쩌면 비교자체가 어려울 만큼 한국 가요계에서 가지고 있는 각자의 의미와, 음악적 성향이 다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서태지와 봄여름가을겨울, 두 아티스트 모두 비교해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훌륭한 아티스트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런 이유에서라도, 두 음반은 비교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세상과 함께 커온 20살의 두 청년.
그리고 아직 그 자리에 있는 소년 하나.
봄여름가을 겨울의 8집은 여전하다. 여전하다라는 말은 때론 진일보하지 않았다는 느낌이 담겨있지만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20년된 아티스트의 색깔과 분위기가 ‘녹슬지 않았다 라는 면에서 이 말을 쓰고 싶다. 여전히 실망시키지 않는, 음악을 대하는 그들의 자세와 세상과 인생을 읽어내는 그들의 눈은 이미 달인의 경지에 올랐다. 12개의 사랑 이야기는 (8집 앨범 12개 곡의 테마) ‘때론 친구처럼 가족처럼 나의 노래로 네 곁을 영원히 지켜 줄 거야’ (8집中 Thank you song) 라고 우리에게 나지막하게 속삭인다.
6년이라는 앨범 준비 기간 동안 그들이 고민을 대하는 자세는 더욱 용감무쌍해졌다. 노래 브라보마이라이프 (7집 中)의 성공 이후로 그들의 음악이 대중화되었다는 칭찬, 어쩌면 실망감에 20주년 기념 앨범엔 다양한 곡들로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녹여낸다. ‘돌아보지 마라, 내일이 올 거야. 후회하지 마라, 정답은 없어. 인생 뭐 있어, 이렇게 가는 거지. 즐겁게 사는 거지’ (8집中 인생 뭐 있어) 라는 인생의 선배이자 동료로 20년을 함께 살아온 그들의 리스너들에게 이야기한다. 그렇다. 정답은 없다. 시대의 조류에 이리저리 휩쓸리지 않고 자신들의 생각을 지켜내는 것. 그것을 수필 같은 가사로 풀어내는 힘. 그것이 봄여름가을겨울이다.
그에 반해 서태지의 이번 앨범은 대중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일부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 서태지의 미스터리한 음반 발매와 뒤이은 스페셜한 행보, 모 지상파 방송국에서는 서태지 컴백스페셜과 함께 그의 16년 음악인생을 프로그램으로 제작하고 뒤이어 그의 게릴라 콘서트를 안방으로 내보냈다. 새 앨범 발매 후 100억 수익 기사와 서태지의 뮤직비디오가 어떻다더라, 과연 서태지답다라는 기사가 인터넷을 도배했다.
그러나 창작의 고통에 고뇌하던 한 청년이 음악인생 16년을 맞이하며 선보인 ‘모아이’. 그러나 그가 지난 10년간 현실을 비판하며 교육과 통일, 가출청소년들에게 보냈던 메시지는 찾아보기 힘들다. 서태지는 성장하지 않았을까. 인생을 달관하는 그의 모습은 아직은 느껴지지 않는다. 여전히 소년 같은 그의 음악은 이미 16년을 자라버린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엔 부족한 면이 있다. 자신의 왕국과 자신을 바라보는 팬들에게만 통하는 그의 음악은 불친절하다. 마음의 여유를 전하기에 그는 여전히 창작의 고통에 자신을 가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모아이라는 이스터 섬의 거대한 선상과 미확인 비행물체 마케팅과 이스터 섬이 멸망한 날이라는 7월 29일을 차용한 앨범 발매일과 거꾸로 뒤집은 9월 27일이라는 서태지 심포니 날짜 등, 그의 소설은 이제는 설정이 난무하는 이해하기 어려운 소설이 되어 버렸다.
음악의 무게를 덜면 세월의 무게가 담겨 질텐데..
봄여름가을겨울의 가장 큰 장점은 그들의 자연스러운 멜로디 속에 두드러지는 의외성이다. 공감은 어렵지 않다. 내가 느끼고 있는 것을 너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내가 느낄 수 있으면 그만이다. 그보다 조금 더 나아가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구나’라는 의외성을 안겨준다면 사람들은 환호를 보낼 것이다. 봄여름가을겨울의 음악은 어렵지 않게 의외성을 발견할 수 있게 해준다.
편안함. 인위적이지 않은 노래의 분위기는 정형화되지 않은 삶, 인위적이지 않은 분위기를 보여준다. 그것은 그들이 음악에 대한 본질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사람 저 사람 입맛을 고루 충족시킬 수 있는 그들은 이제 진정 ‘음악의 달인’이 된듯 하다.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기타와 하모니카(전제덕), 부드러운 피아노(김광민)의 선율은 그들의 음악이 우리의 마음에 자연스럽게 파고들게 한다. 어떤 이는 아름답다, 아름다워(8집 中)와 형의 기타 (8집 中)를 듣고 의외라는 말을 한다. 사실 봄여름가을겨울의 지난 앨범들을 들어보면 그들은 여전하면서도 진일보하고 있다. 어떤 이의 꿈과 브라보 마이 라이프가 그들의 전부가 아님을 아는 방법은 그들의 앨범을 꼼꼼히 들어보면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 2집의 ‘못다한 내 마음을’ 이라는 곡을 들어보길 추천한다)
서태지도 단순히 힙합과 랩을 유행시켰다는 90년대 대중음악의 선두자 로만 불리기에는 아까운 아티스트이다. 그의 음악은 늘 의외성을 가지고 있다. ‘서태지의 음악은 새로워야 한다’라는 미디어와 팬들의 기대는 ‘할말은 별로 없지만 난 이만큼 현란 할 수 있다’ 라는 표현으로 이번 앨범에서 나타난 것 같아 서태지의 팬으로서 조금 안스럽기도 하다. 특히 MOAI는 그만의 작법이 아니라 기존의 작법을 애써 벗어나려고 애써서 만든 멜로디라는 느낌도 든다. 이젠 조금 더 편안해져도, 자연스러워져도 될 것 같은데. 12년전, 창작의 고통을 호소하면서 눈물로 우리를 떠났던 그의 모습을 기억하기에, 이제는 그가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음악을 만들 수 있기를 바라는 바이다.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서태지
돌아온 두 거장을 위한 에필로그
서태지는 문화대통령이었다. 서태지는 하여가와 시대유감, 발해를 꿈꾸며, 컴백홈 등 손에 꼽을 수 없을 만큼 주옥 같은 노래들을 남겼다. 우리가 그 노래들을 기억하고, 그를 영원한 문화 대통령으로 손꼽는 이유는 그 노래 속에 그 시대의 고민과 꿈과 열망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봄여름가을겨울은 이번 8집 앨범을 내면서 20년 후에도 명반으로 남길 바란다는 소망을 비추었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가 샐러리맨들의 회식 자리에서 엔딩곡으로 최고의 주가를 달린다는 사실, ‘나의 아름다운 노래가 당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있다면(2집)’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정화시켜주고 있다는 것은 봄여름가을겨울이 세대와 함께 호흡하던 가수이기 때문이 아닐까.
어쩌면 서태지를 과대평가하는 미디어, 스스로를 미스터리의 결정체로 포장하는 서태지에게 대중이 바라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봄여름가을겨울이 과대평가는커녕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에 시대가 너무 변화했을 수도 있다.
남은 것은 우리 리스너들의 몫이다. ‘쇼’가 없이는 미디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어려워진 가요계다. 하루가 다르게 넘쳐나는 신인가수들의 음악 속에서 각종 음악 차트가 드라마 삽입곡, 댄스 가요들로만 도배되는게 지금의 현실이다. 서태지와 봄여름가을겨울 두 뮤지션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쌓아온 관록을 제대로 평가하려는 노력. 그것이 우리가 그들의 소중한 음악을 오래오래, 영원히 들을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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