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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문대로에 있는 이순신 동상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늠름하게 서 있는 이순신 장군의 동상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상징물과도 같은 것이다. 광화문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곳이 이순신 장군 동상이기에 얼마전 DSLR을 갖게 된 나는 이순신 동상을 사진에 담고 싶었다.

마침 광화문 교보문고에 책을 읽으러 가는 중이었기에, 세종문화회관쪽에서 교보문고쪽으로 가는 횡단보도에 서서 이순신 동상을 찍었다. 2방정도 찍었는데, 경찰이 오더니



"사진 찍으면 안되십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처음엔 잘못 들었는 줄 알았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저 이순신 동상 찍는 건데요?"이라고... 하지만 경찰은
"저 쪽 방향으로는 찍지 마세요."라고 했다. 이해가 안되서 이유를 물었다.
"아니, 왜 안되죠?"
경찰은 한번 흘겨보더니 딴데로 가버렸다. 옆에 있던 사람들도 이해가 안되는 듯 웅성 거렸다.


이유도 설명 안해주고, 무조건 찍지 말라니... 한동안 멍해질 수 밖에 없었다. 뭐 어차피 찍을만큼은 찍었으니 더 찍을 생각도 없긴 했지만, 제재를 당하고 나니 기분이 이상했다. 왜 찍지 말라는 것일까...

당시 경찰은 횡단보도의 시작과 끝에 한명씩, 그리고 가운데에 한명 그리고 이순신 동상 앞에 2명이 있었다. 무언가 확실히 제제를 가하기 위해 서 있는 것도 같았다. 교통정리하는 줄 알았던 횡단보도앞의 경찰이 사진 촬영 제재를 위해 나왔던 것 같다. 영문도 모른체 신호가 바뀌어서 건너갔지만, 100번 생각해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집에 들어와서 인터넷을 뒤져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의 사진은 많았고, 찍지 말라는 이야기는 찾지 못했다. 혹시나 내가 모르는 것이 있나 해서 어른들께 물어보았다. 다들 금시초문이시란다. 옛날에 전두환 시절때 청화대 쪽으로는 커튼으로 다 가려놓고 못찍게 했다고는 했단다. 하지만 지금은 군부시대가 아니지 않는가.

여행객들도 와서 랜드마크인 이순신 동상을 찍을텐데 다 제지할 셈인가? 무슨 국가 기밀이 숨겨져 있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 왜! 찍지 말라는 것일까? 하루 종일 고민한 끝에 몇가지 가능성을 생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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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막이로 둘려쌓여 있는 이순신 동상



1. 촛불시위
처음 떠올랐던 것은 촛불시위였다. 명박산성이 지어진 곳이 그 동네였으니 아마도 그 때의 여파가 지금까지 남아서 사진을 못찍게 했을 가능성이다. 그래도 어제 광화문은 조용했다. 그냥 놀러온 사람들로 북적거렸을 뿐이었다. 관광객도 많았고, 외국인도 눈에 많이 띄었다. 촛불시위가 있었던 장소라고 해도 이순신 장군을 찍지 못할 이유가 당췌! 무엇이란 말인가?

2. 공사중
광화문 일대는 현재 공사중인 것 같았다. 아마도 예전에 신문에서 본 적이 있는 공원을 만들려고 하는 것 같았다. 이미 공사에 들어갔는지 광화문까지 높은 칸막이가 쭉 깔려 있었다. 그래서 또 하나의 가능성을 생각해보았다. 공사의 기술에 대한 기밀이 밝혀질까봐...';; 하지만 안에는 들여다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높이였다. 아무리 찍어도 빌딩에 가서 찍지 않는 이상 그 안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공사 중인지 아닌지도 모를 정도니 말이다. 아니, 공사중 현장이 보인다고 하여도 사진을 못찍을 이유는 없지 않는가.

3. 내가 싫어서...
생각은 점점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되니 말이다. 내가 싫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소심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남자 경찰이어서 남자인 나를 제지한 것인가? 아니면 내가 마음에 안들었나? 여자가 찍었으면 괜찮았을까? 하지만 그것도 이유가 되지 못하였다. 내가 아무리 마음에 안들었기로서니 사진까지 못찍게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4. 이순신 동상 밑에 태권V가?
국회의사당 뚜껑과 한강에 숨겨져 있다는 태권V가 이순신 동상 아래로 이사를 간 것인가? 공사의 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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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보아도 그 정도면 태권V가 들어가고 남는 공간이었다. 전쟁이 났을 때 이순신 동상의 칼을 레버처럼 내리면 동상이 스위치가 되어 광화문 거리가 반으로 쫙 갈라져서 태권V가 나오는 것은 아닐까? 그 위를 공원으로 만든다는 것은 위장하기 위해서? 그마나 신빙성이 있는 가능성인 것 같다. 만약 태권V를 숨기기 위해서였다면 이순신 동상 사진을 찍지 말라고 내가 먼저 도시락 싸들고 광화문으로 나갈 것이다.

5. 이순신 부활?
이순신 장군께서 1598년에 전사하셨으니, 전사하신지 410년이 되는 해에 동상에서 부활한다는 국가 기밀이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알지 못하는 어느 날 갑자기 동상이 사람이 되어 뚜벅 뚜벅 광화문 대로를 걸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정부가 사람들이 놀랄까봐서 보호하고 있는 중인가? 경찰은 민중의 지팡이니 분명 우리 편일 것이다.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그랬을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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늠름한 이순신 장군 동상


계속 생각해보았지만 생각은 점점 이상한 곳으로 흘렀고 차마 블로그에 담지 못할 생각까지 흘러 들어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혹시 이순신 장군 사진을 못찍게 하는 이유를 아시고 계신 분은 알려주었으면 좋겠다. 나만 모르고 있는 공개적인 이유가 있지는 않을까? 이러다 나만 바보되는 것 같기도 했지만 당췌 이유가 너무 너무 궁금했기에 블로그에 남긴다.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에서 거북선으로 일본의 왜적을 무찌르신 조선시대의 명장이셨다. 요즘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 우기고, 역사를 왜곡시키며 다시 침략하려 하는 일본을 보고 있으면 이순신 장군의 용맹함과 업적을 생각하며 두손에 힘을 불끈 쥐게 된다. 즉, 이순신 장군은 우리 민족의 힘과 지혜의 상징이고, 용기의 상징이다. 그런데, 왜! 찍으면 안되는 것인가? 나를 가로막던 그 경찰이 일본 순사 같이 느껴졌다. 물론 그 경찰분도 위에서 시켜서 했을 뿐일 것이다. 그러니 왜라는 말에 대답도 안해주었겠지 않는가. 시켜서 했을 뿐이니 말이다. 그 가로막는 행위가 이해가 되지 않았을 뿐이다.

혹시 내가 싫어서 그랬다면 그냥 이해하고 넘어가련다. 누구나 나를 좋아해주기 바라지만, 누구나 나를 좋아하지는 않을테니 말이다. 이순신 장군 동상을 무심코 찍었다가 당한 이 일은 다른 분들께도 알려주어야 나처럼 이상한 생각으로 하루를 망치지 않을 것 같다. 그거 아시나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광화문에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을 찍으면 안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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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픽 특집은 이렇게 하는 것이구나 하는 기준을 보여준 방송이었다. 또한 가장 무한도전다운 모습을 보여준 특집이기도 했다. 무한도전을 보면서 세계속의 한국을 보았고, 한국을 통한 세계를 보았다. 전세계인을 만나 함께 즐겁게 놀고, 대한민국을 알리며 독도를 말하였다. 그리고 전세계인의 입을 통한 독도는 우리땅을 들려주었다. 전진의 생일상을 통해 예능의 웃음을 잃지 않았고, 아무도 중계하지 않았던 올림픽 종목을 가서 응원하였다. 그리고 유재석의 아름다운 도전은 올림픽 정신에 대한 눈물을 흘림으로 마무리되었다. 이처럼 무한도전다운 무한도전이 있을 수 있을까. 과연 무엇이 무한도전을 무한도전답게 만들었는지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다.


가치관

무한도전의 김태호 PD는 뚜렷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무한도전을 통해 사회적 문제에 대해 유쾌하게 꼬집어 하나씩 풀어나고 싶은 것이 그것이다. 그래서 무한도전안에는 웃음 뿐 아니라 메세지도 있다. 그리고 세상을 움직일만한 힘이 그 안에 있다. 미디어는 메세지다라고 말한 송창의 PD의 말처럼 김태호PD 역시 무한도전을 통해 끊임없이 메세지를 주고 있다.

이번 올림픽 특집을 통해서도 그가 말하려는 메세지가 있었다. 난 올림픽특집을 통해 무한도전이 진실에 대해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많은 다른 나라 사람들을 만나 즐겁게 노는 모습은 사람은 사람 그 자체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듯 했다. 피부색과 국적으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전세계의 지도에 색을 칠해나감으로 결국은 우리 모두 하나라는 점을 보여주었다.

또한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진실을 말해주었다. 그것도 전세계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말이다. 선물로 나눠준 부채 뒤에는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말이 선명히 적혀있었고, 전세계 유력 일간지에 광고가 나간 DO YOU KNOW? 라는 멘트로 전세계 사람들에게 독도를 아느냐고 물어보았다.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진실을 말해주고 있다.


올림픽 정신에 대한 진실을 말해주었다. 언론의 영웅만들기로 시청률에만 연연하는 방송사의 행태에 일침을 가하는 것 같았다. 중계차가 아무도 나가지 않은 멀리뛰기 종목에 가서 중계석도 아닌 제일 위 일반석에서 외롭게 경기를 하고 있는 정순옥 선수를 응원하였다. 4700만명이 잘 모르는 4700만명의 국가대표를 향한 스포트라이트를 통해 진실을 비춰주었다. 올림픽에 스포츠 정신이 있다면 그것을 관람하는 사람들에게도 응원의 정신이 있어야 함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또한 유재석의 눈물은 양태영 선수을 향하였고, 4년동안 혹은 그 이상 피나는 노력과 땀을 흘렸기에 그에 대한 자긍심과 수고함에 그리고 열정에 눈물을 흘렸다. 4700만명의 국가대표, 그들이 모두 영웅임을 말해주고 있다.


정체성

무한도전의 모습 중 하나는 정체성에 관하여이다. 무한도전은 자신의 컨셉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시청률이 저조할 때도 무한도전은 끊임없이 도전하고 시도했다. 모든 것이 성공적이지 않았다. 공포특집은 많은 노력과 예산을 들였지만, 결국 경위서를 작성해야만 했다. 그런 모습을 통해서 무한도전은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 노력함을 알 수 있다. 무한도전이 무한도전 다울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정체성 때문이다.

올림픽특집에서도 그 정체성을 향한 모습은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무모할 정도의 도전은 전세계인을 만나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세계 지도 한장들고 거리로 나아갔다. 만나는 사람마다 무한도전이 분위기를 한껏내었다. 심지어는 멕시코 방송에서도 무한도전의 모습을 잃지 않았고 오히려 무한도전다운 모습을 멕시코에 소개하는 것 같았다. 페르난도를 순식간에 무한도전 제7의 멤버로 만들어버리는 무한도전의 힘 또한 볼 수 있었다.


가장 큰 무한도전 다웠던 것은 유재석의 체조경기 해설이었다. 무모한 도전. 정형돈과 노홍철 그리고 유재석의 올림픽 해설에 대한 도전은 무모한 도전이었지만, 훌륭하게 도전에 성공하였다. 하면 된다라는 메세지를 가지고 있는 무한도전의 도전은 대한민국 평균이하가 굉장한 것에 도전함으로 할 수 있다와 할 수 없다의 문제가 아닌 하거나 말거나의 문제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이 하는데 우리가 못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을 통해 사람들에게 힘과 웃음을 주고, 무한도전은 무한도전만의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무한도전을 무한도전답게 해주는 것은 바로 가치관과 정체성으로 인해서 인 것 같다. 재미와 웃음을 주는 것 뿐만 아니라 자연스런 감동과 눈물을 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 아래에 가치관과 정체성이 받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가치관과 정체성은 무한도전에만 필요한 것이 아닐 것이다. 무한도전을 통해 우리나라에도 그런 가치관과 정체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올림픽특집을 통해 무한도전은 한국을 전세계에 알렸고, 또한 한국에는 세계는 하나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세계 속의 무한도전, 무한도전속의 세계를 말해주는 듯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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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지와 아이들의 인기는 대단했다. 모든 청소년들의 우상이었고, 청소년을 대변해주는 대장이었다. 그리고 그 서태지가 이제 컴백하여 새로운 이슈를 몰고 다니고 있다. 하지만 예전과는 다르다. 이제는 더이상 청소년들의 우상도, 대장도 아니다. 오히려 청소년들은 서태지를 싫어하는 것 같다. 인터넷의 댓글의 말투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서태지에 대해 그런 악플들이 달리리라고는 상상치도 못했지만, 아직 청소년들은 서태지를 받아들이기 힘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운오리 서태지
90년대, 서태지와 아이들은 청소년을 대변해주는 청소년들의 대장이자, 문화대통령이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영향력은 청소년들에게 절대적이었다. 컴백홈을 부르자 가출한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일도 일어났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사춘기의 반항적인 민감함을 속시원히 해결해주었다. 교실이데아를 통해서 "됐어"라는 말로 모든 기성세대들의 욕심을 일갈해버렸다.

청소년들은 서태지와 아이들을 친구처럼 때로는 대장처럼 믿고 따르기 시작했고, 그 인기는 인터넷이 없던 시절임에도 대단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입은 패션은 항상 트렌드가 되었고, 그들의 춤을 못추는 사람들이 없었으며, 귀에 꼽힌 이어폰에서는 서태지의 노래들이 흘러나왔다.

반면 기성세대들은 서태지와 아이들을 싫어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고, 이상하게 입고 나온 불량학생같은 모습의 딴따라들이 나와서 아이들을 이상하게 만든다고 생각했었다. 언론은 서태지와 아이들을 궁지로 몰어넣기 일쑤였고, 문화대통령으로 추앙받던 그들에게 기성세대들은 못마땅해했다. 그들의 권력에 도전하는 것이 미웠는지 힘으로 눌러버리려 했다. 청소년들의 우상이었던 서태지와 아이들은 기성세대에게는 미운오리새끼였다.

하지만 기성세대들이 그럴수록 서태지와 아이들의 인기는 더욱 커져만 갔다. 오히려 기성세대들이 못마땅해했기에 더욱 서태지와 아이들의 인기가 더 커졌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언론은 서태지를 사탄으로 만들려고 열심히 노력했고, 새로운 앨범을 가지고 돌아올 때 마다 사전심의 등 여러 압력과 탄압을 가하게 된다. 당시 서태지와 아이들의 모든 노래를 작사작곡 했던 서태지는 뼈를 깎고 살을 내리는 창작에 대한 힘듦을 호소하며 은퇴선언을 하게 된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아닌 서태지로 돌아온 그. 지금도 모든 노래를 자신이 직접 만들지만, 예전 그룹 시절의 창작고통은 덜 해보인다. 그룹과 아이돌이라는 굴레를 벗고 다른 생각 없이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것을 표현하면 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아직도 서태지는 온갖 구설수에 올라있다.

지금도 미운오리 서태지
이제 그 청소년들이 시간이 흘러 기성세대의 반열에 올라서게 되었다. 나도 인정하기는 싫지만 조금씩 기성세대로 접어들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우리는 아직도 서태지에 대해 열광적이다. 서태지는 우리에게 젊음이고, 열정이고, 도전이고, 추억이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끝에 그가 컴백한 것이 매우 반갑고 고맙기까지 하다. 변함없는 외모와 행동 그리고 그의 노래가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게게 하는 것 같고, 다시 우리를 대변해줄 것 같은 기대도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젠 청소년들이 서태지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도 그럴것이 갑자기 삼십 대 후반의 삼촌벌 되는 가수가 컴백해서 대통령이네, 대장이네하는 말들이 나오니 이해가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의 노래를 이해할 리는 더욱 만무하다. 서태지의 노래는 이제 청소년들만의 전유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그들에겐 또 다른 우상인 빅뱅이나 원더걸스, SS501 등이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청소년들에게 서태지란 그저 한 때 인기있었던 전설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다. 몇몇 청소년들에겐 아예 돈 많은 락커 정도로 치부되었던 듯 악플중에 가장 많은 것이 돈 떨어져서 컴백했다는 것이었다. 이것만 보아도 그들의 서태지에 대한 인식을 읽을 수 있다. 또한 청소년들과 항상 대치중인 기성세대들이 서태지에 열광하니 기성세대에 대한 반발로 서태지를 미운오리 취급할 수도 있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서태지는 여전히 미운오리 취급을 받고 있다.

이제는 화려한 백조로 날아올라라
이제는 곧 그의 진가는 발휘될 것이라 생각된다. 처음부터 서태지는 청소년들의 대장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청소년의 대장이 된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청소년의 마음을 이해하고 읽고 있었고, 그것을 과감하게 표현해주고 철저히 청소년의 편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곧 그런 서태지의 마음은 다시 지금의 안티들에게 전해질 것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이제는 반밖에는 안되지만 기성세대의 반이 서태지의 팬들이다. 그의 활동을 반대할 사람도 없고, 그를 미운오리 취급하던 기성세대들은 최전방에서 물러났다. 서태지는 많은 자본을 보유하고 있고, 서태지의 동료인 양현석과 이주노는 연예계의 대부로 성장해있다.

또한 미운오리로 취급하던 실권을 잡고 있는 기성세대들이 있는 곳이 딱 한군데 있다. 바로 국회이다. 이제는 서태지가 대변해주는 것이 아니라 팬들과 함께 그들의 잘못과 관행에 일침을 가하고, 변화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이제는 미운오리 취급에서 벗어날 때가 된 것 같다. 그리고 예전과 같이 진정한 문화대통령으로, 또한 친구로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화려한 백조가 되어 날아가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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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의 동쪽이 시작되었다. 스페셜에 이어 파격적으로 1,2회를 연속으로 방영하면서 지루할 수 있는 초반 부분을 한번에 밀어부쳤다. 지금은 월화드라마의 삼파전에서 승리한 식객이 선두의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그도 오래가지 못할 것 같다. 에덴의 동쪽에 대한 의견을 갈리긴 하지만, 묵직하게 시작한 에덴의 동쪽은 앞으로가 기대되기 때문이다.

마케팅도 많이하고, 초호화 캐스팅에 해외촬영까지 돈과 정성이 많이 들어간 드라마임을 한눈에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만큼 자신있기 때문에 밀어붙인 것이 아닌가 싶다. 반면, 식객은 점점 지루해지는 타이밍이 다가오고 있다. 너무 많은 간접광고에 정점이었던 소고기경합이 끝나면서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 같다. 그동안 식객의 선전은 대단했다. 최강칠우와 밤이면 밤마다를 압도적으로 따돌리고 월화드라마의 삼각구도를 독주체제로 바꾸어놓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식객의 뒤에는 타짜가 바톤을 넘겨받을 준비를 하고 있다. 타짜 또한 식객과 같이 영화로 이미 검증을 받았고, 만화로도 큰 인기를 얻었었다. 허영만 화백의 시리즈로 장혁, 한예슬, 김민준, 강성연등의 호화캐스팅으로 역시 주목을 받고 있다. 에덴의 동쪽이 많은 마케팅을 한 이유도 아마 타짜를 경계해서일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타짜에 대해 많은 기대를 가지고 기다리고 있다. 과연 에덴의 동쪽과 타짜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지 궁금하다.


송승헌 vs 장혁

불미스런 일이 있긴 했지만, 어찌되었든 제작년에 동시에 국방의 의무를 마치고 멋지게 전역을 한 둘은 이제 드라마로 한번 승부를 벌이게 되었다. 먼저 스타트를 끊은 송승헌은 1회의 앞부분에 잠시 나온다. 잠시 나온 것으로 연기력을 평가할 수는 없지만, 앞으로 나올 장면들에서 그 진가를 발휘하지 않을까 싶다. 장혁 또한 고니 역할을 맡으므로 캐릭터를 잘 찾은 것 같다. 장혁의 터프하면서 코믹한 이미지가 고니와 잘 맞는 것 같다.

에덴의 동쪽과 타짜의 승부에 있어서 이 둘의 연기 대결은 드라마 전체의 승부를 가늠할 정도로 중요한 것 같다. 특히 타짜의 장혁은 조승우의 벽을 넘어서야 할 것이다. 이미 영화로 흥행에 성공하였기에 득을 보는 점도 있지만, 사람들의 기대치가 높아져있기 때문에 그 기대치를 넘어서야 하는 부담감도 있을 것이다. 에덴의 동쪽이 타짜를 누를 수 있기 위해선 우선 연기력에서 송승헌이 장혁을 넘어서야 할 것 같다.


시간차

9월 16일 첫방송을 하는 타짜는 에덴의 동쪽이 8회를 할 때와 맞물린다. 이미 7회까지 진행된 상태에서 타짜는 새로 시작하기 때문에 시간차로 인해 손해를 볼 수도 있다. 에덴의 동쪽은 이 7회를 잘 잡아야 할 것이다. 7회까지만 잘 잡아주면 어느 정도 드라마에 대한 충성도가 높아져있기 때문에 쉽게 타짜로 넘어가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7회라면 충분히 드라마속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시간이다.

빠른 전개와 복잡한 관계속으로 끌어들여야 에덴의 동쪽과 타짜의 승부가 시작될 쯤 몇발자국 앞서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조금이라도 허술한 면을 보이거나, 지루한 면을 보이기 시작한다면 타짜 쪽으로 다 넘어갈 수도 있다. 타짜라는 제목만으로도 이미 반은 마음이 넘어가기 때문이다.

타짜는 매우 불리한 상황에서 시작한다. 끝을 보여가는 식객이 새로 시작하는 에덴의 동쪽을 누르기에는 힘이 부치다. 그 시간동안 식객이 선전을 해 줘야 식객을 보던 시청자들이 그대로 타짜로 흡수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타짜의 제목만으로 시간차에 대한 손해를 어느정도는 커버해 줄 것 같다.


스피드

에덴의 동쪽과 타짜의 승부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나는 스토리의 전개 속도를 꼽고 싶다. 에덴의 동쪽은 특히나 전개가 빨라야 한다. 안그래도 내용자체가 처지는 무거운 주제이고, 출생의 비밀과 가족관계, 그리고 복수와 사랑이라는 복잡하면서 눈물이 많을 것 같은 스토리는 자칫하다가는 지루하다는 인식을 쉽게 느끼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타짜 또한 식객처럼 질질 끌어서는 안될 것이다. 식객은 그나마 독주를 하였기에 약간 느슨하게 가도 독주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에덴의 동쪽이 활약해준다면 타짜도 느슨하게 했다간 예상외의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타짜야 많은 사람들이 원작과 영화를 통해 스토리를 어느 정도 알고 있기에 사람들이 생각하는 스토리보다 더 빠른 전개가 필요하다. 더 많은 것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앞의 자질 구레한 것들은 줄이고 본론으로 들어가는 것이 관건일 것이다.

타짜는 특히 고니의 어릴적 억울한 때의 모습보다는 방황을 하며 화투를 배우는 장면에 많은 노력을 쏟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올인에서도 그랬고, 영화에서도 그랬고 사람들이 가장 관심있어하는 부분은 바로 타짜만이 할 수 있는 기술들이기 때문이다. 이미 원작이 주인공이 영화 후 여러 방송을 통해 기술들을 보여주었고, 타짜들이 직접 나와 시범을 보이기도 했기에 그보다 더 화려하고 독특한 기술들이 타짜의 매력으로 빠지게 만드는 주요한 역할을 할 것 같다.


월화드라마의 승부를 가릴 에덴의 동쪽과 타짜가 정말 기대된다. 서로 대적할만한 상대이기 때문에 더욱 멋진 장면들이 나올 것 같다. 라이벌이 좋아야 성장한다고 하는데 에덴의 동쪽과 타짜는 정말 잘 맞는 거물급 라이벌인 것 같다. 요즘 수목드라마도 일지매 이후 영 재미가 없는데 (전설의 고향이 제일 재미있다) 앞으로 월화드라마에서 펼쳐질 박빙의 승부가 정말 기대된다. 리모콘을 들고 어느 채널을 틀까 고민하는 사람이 많아질 것 같다. 과연 누가 월화드라마의 지존의 자리를 차지할 것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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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담배를 하면 교회에 가면 안된다. 맞는 말일까? 사회적 통념으로는 맞는 말 같지만, 성경적으로 본다면 전혀 맞지 않는 말이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치고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수많은 질문을 던져보았지만 시원하게 대답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이것이 성경적이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많은 성경 구절을 대면서 술과 담배의 금지 이유에 대해 말하지만 결국 근본적인 문제는 보지 못하는 답변일 뿐이다.

술과 담배에 관한 문제는 개인의 문제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것이 종교의 가입조건쯤으로 되어있고, 관습처럼 굳어져오고 있다. 교회 다니는 사람은 술, 담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술,담배를 하는 사람은 교회에 나올 수 없다는 이상한 장벽을 쳐놓고 있는 것이다. 그런 가입조건을 통해 걸러져 나온 기독교인들은 우월의식을 가지게 된다. 바리세인들에게 있었던 선민의식을 가지고 가입조건에 충족하지 못한 사람을 정죄하고 비난한다.

흡연실이 있는 교회
오늘 CTS를 보다가 재미있는 강의를 듣게 되었다. 만나교회의 김병삼 목사님의 강의였는데, 만나교회에는 흡연실이 있다고 한다. 1층 문 앞에 있다고 하는데 흡연실에 TV가 있어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만들어놓았다고 한다. 홉연실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본당에서 예배를 드리려 담배를 끊기도 한다고 한다.

매우 멋진 생각인 것 같다. 아니 당연한 생각이 아닌가 싶다. 기독교의 존재 목적은 복음 전파이다. 예수님께서 주신 지상명령은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이지, 땅끝에 흡연자와 음주자를 몰아넣자는 것이 아니다. 복음을 전하는데에 담배와 술 따위가 가로막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술,담배를 이유로 복음 전파의 길을 가로막고 있다.

흡연자를 위한 예배
예전에 군대에 있을 때 군종병을 겸임한 적이 있다. 산꼭대기에서 근무를 했기에 교회가 따로 없었다. 주일에는 작업을 해야 한다며 교회를 가지 못하게 했다. 어쩔 수 없이 수요일마다 했던 동아리 활동으로 종교모임을 만들려고 했다. 몇명 이상의 인원이 되어야 하기에 후임들을 대상으로 동아리 가입 여부를 물어보았다. 하지만 대부분 가입하기를 꺼려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자기는 담배를 피기 때문에 교회에 나갈 수 없지 않냐고 반문하였다.

당시 흡연자였던 나는 기도 후 담배를 피우는 예배를 만들기로 했다. 정식 동아리명은 오예수. 오면 오예스를 항상 먹을 수 있다고 그렇게 지었다. 그리고 비정식 동아리명은 SMOKING JESUS였다. 예배하기 전에 담배를 반드시 한대씩 피고 시작하고, 끝나고 같이 담배를 피었다. 그리고 마지막엔 오예스를 나눠 먹었다. 예배는 찬양예배로만 드렸다. 짬밥이 찰때까지는 노래도 못하였던 후임들은 동아리 시간을 통해 소리 높혀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 담배를 피기 때문에 교회 나갈 수 없다던 사람들도 모두 나와 같이 예배를 드렸다.

물론 술, 담배가 건강에도 좋지 않고, 여러 이유로 인해 사회적 문제를 야기시키기도 한다. 요즘은 사회 문화적으로 술과 담배가 자연스레 금기시 되어가고 있다. 또한 일부러 술과 담배를 할 필요도 권유할만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술, 담배를 하는 것이 복음을 듣지 못해야 하는 이유도 아니다. 그리고 술, 담배를 하지 않는 것이 우월감을 가질 만한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복음이 전해지는 것인데, 수많은 선교사님들이 오지로 나가서 어렵게 선교의 열매를 맺는 것에 반해 관습인 술과 담배로 인해 복음의 길을 막고 있는 것은 너무도 이상하다.

교회에 카페나 서점, 쇼핑몰등 수익구조만 만들지 말고, 흡연실 한개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그것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열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어떤 사람이 내게 '그럼 예배당에 술에 취해서 한손에는 소주병을 들고, 한손으론 농구공을 튀기며(왜 농구공 이야기를 했는지는 모르겠다-아마도 담배가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들어가는 것이 옳으냐고 물었다.

난 주저없이 말한다. 만약 그것이 복음을 전하게 되고, 하나님과 가까워지기 위해 나온 것이라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이다. 오히려 문제가 되는 것은 멋진 양복을 차려입고 한손에는 성경책을 끼고 친절하게 만나는 사람마다 웃으며 인사를 하면서 마음 속에는 친구를 욕하고, 남을 탓하며, 교회의 재산을 탐내고, 교회의 권력에 아첨하거나 약자를 괴롭히는 사람일 것이다. 어떤 꼬라지를 하고 있던지 하나님과 가까워진다면 그것은 옳은 일이고, 멀어진다면 그것은 죄이다.

요즘 기독교에 대한 욕을 많이 보게 된다. 예전부터 많이 보아왔지만, 현저하게 과격해지고 흥분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진 것 같다. 기독교인들은 그것이 무엇 때문에 나온 욕인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복음의 능력으로 인해 나온 욕이 아니다.  겉과 속이 다른 하나님과 멀어지고 있는 죄 짓는 사람들을 향한 욕이다. 그리고 기독교는 그것을 옹호하려하고 있다. 학연, 지연, 혈연과 같이 팔이 안으로 굽 듯 그런 종류의 옹호이다. 비판할 것은 비판하여야 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신부님들이 존경스럽다. 왜 기독교인들은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일까...

교회에 흡연실부터 만들면 조금은 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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