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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음료 CF 이후 약간 아쉬운 정도라면 2% 부족하다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이번 드라마는 98% 부족하다고 할만하다. 그 재미있는 원작 만화를 이렇게 손발이 오그라들게 만들다니 마치 어린이 만화 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추노와 비교가 되고 있기도 한데 감히 추노의 추자와도 비견될 수 없는 드라마가 아닌가 싶다. 초 저예산 드라마인 줄 알았는데 추노와 같은 제작비용이 들어간 드라마라니 참 그 돈을 어디에 다 썼는지 궁금할 뿐이다.

1. 영상미의 실패

1회에서 보여주었던 영상미는 우뢰매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었다. 남기남 감독은 에베레스트신을 공사판 모래 위에서 찍어냈다고 하는데 100억을 들여서 만화 영화에나 나올 법한 영상을 만들어 냈다는 것은 신불사에 대한 비판으로 바로 이어졌다. 

비슷한 제작비를 들인 추노는 뛰어난 영상미로 호평을 받고 있다. 그만큼 기술력이 충분한데도 불구하고 신불사를 애들 만화 영화로 만들어버린 것은 정말 아쉬운 부분이다.

2. 송일국의 실패

그의 이미지가 이렇게까지 떨어졌을 줄은 몰랐다. 온통 게시판과 댓글에는 송일국에 대한 비판으로 가득하다. 분명 그간 있었던 소송으로 인한 이미지 실추도 있었겠지만 신불사 1회에서 보여준 연기는 주몽에서, 바람의 나라에서 보여주었던 카리스마는 사라져버린 모습이었다.

아직 1회이기에 송일국의 연기에 대해 평가하긴 이르지만, 펜싱 연기에서 티비를 끄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만드는 연기는 정말 안습이었다. 더불어 한채영, 한고은의 연기까지 발연기가 합쳐져 송일국의 연기가 더욱 아쉽게 느껴졌었던 것 같다.

오히려 조연인 김민종, 추자연의 연기는 안정적이고, 극으로 몰입되게 만들었다. 원작 스토리가 워낙 탄탄한 드라마이기에 연기력만 받쳐주면 충분히 흥행할 수 있고 호평을 받을 수 있는 드라마인데 보여주기에만 급급했던 것 같아 더욱 아쉬웠다.

3. 벗어제끼기 경쟁

누가 누가 많이 벗나를 경쟁하는 듯 첫회부터 주연들은 다들 벗고 나왔다. 그리고 카메라 앵글은 더욱 민망하게도 아래부터 쑥 훑고 지나간다. 신불사 전에 했던 드라마는 보석비빔밥이었다. 가족 모두가 모여서 보는 주말 드라마 시간에 그도 벗고, 그녀도 벗는 자극적인 영상으로 가득 채워버린 신불사는 주목을 받기는 커녕 저급한 싸구려 드라마로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제작비가 없어서 처음부터 벗고 나오는구나 싶었는데 100억나 들어간 드라마라니 참 씁쓸할 뿐이었다. 좀 더 세련된 영상미와 첨단 기술로 볼거리를 제공해주었다면 호평을 받고도 충분한 드라마인데 순식간에 성인드라마로 분류시켜 버린 신불사의 마케팅이 아쉬울 따름이다.

4. 마케팅의 실패

포장을 아무리 잘해도 알맹이가 볼품없으면 혹평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제품이 먼저이고 마케팅이 그 다음이어야 하는데, 신불사는 마케팅으로 볼거리가 풍성한 식으로 예고를 해 두었으니 시청자들은 기대감이 커질 수 밖에 없고, 그 큰 기대감으로 본방을 봤을 때 느꼈을 실망감을 더 커질 수 밖에 없다. 즉, 마케팅 자체로 놓고 본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기대감을 주고 알렸기 때문에 성공적이라 할지 모르지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는 신불사의 혹평만 더 크게 만들었기에 실패한 마케팅이라 할 수 있겠다.

결국 마케팅은 더욱 신불사에 대한 비판을 불러일으킬테고, 그런 상태에서 마케팅을 지속시키는 것은 더욱 큰 비판만 몰고 오기에 신불사는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 수 밖에 없다.


탈출구는 없는가?

신불사의 가장 큰 장점이자 이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은 딱 한가지 밖에 없다. 그건 바로 스토리이다. 아무리 영상미가 허접하고, 연기가 극에 몰입할 수 없게 만들어도 박봉성작의 신불사는 탄탄한 스토리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이미 만화로도 성공하였고, 다시 보아도 보면 볼수록 재미있는 만화 중 하나일 것이다.

예전에 이현세 작의 공포의 외인구단이 실패한 것을 생각해보면 이 또한 쉽지만은 않을테지만, 스토리에 충실하게 만들어 배우들의 연기력을 안정시켜가고, 영상미를 좀 더 세련되게 바꾼다면 충분히 지금의 혹평들을 거꾸로 뒤집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다.

경쟁이 별로 치열하지 않는 시간대라고 하여 날로 먹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보다 원작에 대한 기대감이 높기 때문에 원작의 묘미를 충분히 살려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크다. 처참한 혹평 속에 시작하는 신불사. 과연 신이라 불리울만한 드라마로 성장할 수 있을 지 지켜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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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뚫고 하이킥에서 해리의 반에서는 반장 선거를 했다. 반장이 되고 픈 해리는 친구들에게 먹을 것도 돌리고, 지키지 못할 공약도 내세우며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하지만 역시 해리는 단 2표만 얻고 결국 반장에서 떨어지는 고배를 마시게 된다. 분에 못이긴 해리는 자신을 뽑지 않은 아이들을 향해 폭력을 행사하게 되고 결국 비참한 꼴을 당하게 되는데, 이에 시름 시름 앓는 해리를 향해 가족들은 집반장을 시켜주기로 한다.

가족들끼리 미리 짜고 집반장으로 해리를 뽑아 반장을 시키자 해리는 그 어떤 일보다 반장의 역할을 잘 해낸다. 학교에 가는 것보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만을 생각할 정도로 해리는 집반장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 모습이 순수하고 귀엽기까지 하다.

해리는 절대로 반장이 될 수 없다.

반장에는 조건이 있다. 첫번째는 공부를 잘해야 한다. 그리고 두번째는 공부를 못하면 인기라도 좋아야 한다. 첫번째는 선생님께 잘 보여 반장이 되는 케이스이고, 두번째는 친구들과의 인간관계가 좋아서 반장이 되는 케이스이다.

그런데 해리는 두가지 조건을 모두 가지고 있지 않다. 공부도 잘 못하고, 친구들에게 이기적인 모습으로 비춰져서 인기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해리는 절대로 반장이 될 수 없다.

재미있는 점은 해리 외에도 1명을 제외한 모든 학생들이 반장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반장은 한 반에 딱 한명이기 때문이다. 두가지 조건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들 중에 가장 많이 그런 조건을 충족시킨 사람 딱 한명만이 반장이 되는 것이다.

두가지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어도 될까말까한 반장 선거에 해리는 당당하게 도전하다. 그 도전은 그야말로 무한도전이고, 무모한 도전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해리는 반장에 도전한다.

해리는 왜 반장이 되려 했을까?

왜 해리는 반장이 되고 싶어했을까? 우선 해리는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모두 빵꾸똥꾸라고 생각하고, 모든 빵꾸똥꾸를 응징하고 싶어한다. 반장은 그런 권력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사람들을 대표하여 선생님께 인사하고 인정받고, 친구들에게도 인정을 받게 된다.

반장은 반을 대표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고, 인정받을 수 있다. 해리는 가족 해체로 인한 소외된 아이들의 상징적인 캐릭터이다. 경제가 어려워지자 맞벌이 부부가 늘게 되고, 자신의 자아실현을 위해서도 맞벌이 부부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맞벌이 부부가 늘어날수록 아이들은 소외받기 일쑤이고, 부모로부터 받지 못한 애정과 관심은 결핍으로 나타난다. 소외 속에 자란 아이들은 관심과 인정을 받기 원하고, 해리는 바로 그런 관심을 받기 위해 반장 선거에 나간 것이 아닌가 싶다.

반장이 되면 친구들로부터 관심을 받게 되고 선생님으로부터 인정을 받게 된다. 또한 반을 대표한다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기에 전교생의 주목을 받게 된다. 그로인한 권력도 생겨난다. 떠드는 빵꾸똥꾸, 말 안듣는 빵꾸똥꾸, 결석한 빵꾸똥꾸등 세상의 모든 빵꾸똥꾸들을 응징할 수 있는 권력이 생긴다.

그래서 해리는 집에 와서는 집반장의 권력을 이용해 갈비를 준비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말 안듣는 사람으로 세경을 적은 것이다. 몸에 이상이 있을 때 필요한 영양분이 담긴 음식이 땡기는 것처럼 권력을 얻고, 인정과 관심을 받을 수 있는 반장은 해리에게 있어서 꼭 필요했던 직분이었던 것이다.

해리는 반장이 되었다.

비록 반에서는 아니지만, 집에서 집반장을 시켜주었다. 이는 맞벌이 부부 사이에서 이미 소외되어 버린 아이들을 어떻게 다시 돌려놓을 수 있을 지에 대해 해결책을 제시해 준다. 그건 바로 필요한 것을 주는 것이다. 소외된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관심과 사랑 그리고 인정이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어하고, 사랑받고 싶어하는 그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려주고 채워주는 것인데, 그건 집안에서 누구나 할 수 있는 조그만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하이킥 집안에서 그랬던 것처럼 집반장을 시켜주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닌 일 같지만 가장 좋은 해결책이었다. 스스로 반장이기에 떠들거나 결석하거나 말 안듣는 일을 하지 않는다. 바로 책임감이 실리게 되는 것이다. 또한 자신이 인정받고 있고,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만족스러울 것이다. 얼마나 기쁘면 학교에서 집까지 한걸음에 달려왔겠는가.

그토록 원하던 반장이 되자 반에도 다시 평화가 찾아왔고, 집안의 질서도 해리가 잘 정리해준다. 집안에서는 얼마든지 권력을 남용해도 컨트롤이 가능하기에 문제도 없을 것이다. 자신이 간절히 원하던 것을 이루었다는 성취감 또한 있을 것이다.

모두가 반장이 될 수 있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는 한 반에 60명의 학생들이 있었다. 그 중 59명은 반장이 되지 못하고 1명만 반장이 되었었다. 요즘에는 한 반에 30명 정도의 학생들이 있다고 한다. 그 중 29명은 반장이 되지 못하고 1명만 반장이 된다. 59명이든, 29명이든 결국 모두 반장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집반장은 59명 모두 반장이 될 수 있고, 29명이 모두 반장이 될 수 있다.

콜럼버스의 달걀과 같이 알고보면 너무나 쉽고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60명 중의 1명이 되기 위해, 요즘은 30명 중에 1명이 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보단 모두가 반장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 아닐까 싶다.

사족이지만 난 해리가 좋다. 해리의 순수함과 때 묻지 않은 아이다움이 좋다. 해리는 어른들의 모습을 TV에서 보고 친구들에게 뇌물을 주고, 반장이 되기 위해 지키지도 못할 공약을 내세운다. 아이답게 옳고 그름을 떠나 그런 모습을 스폰지처럼 받아들였다. 하지만 신애가 그건 잘못된 것이라 알려주고 연설문을 고쳐주자 해리는 선거 연설에서 지키지 못할 공약은 싹 빼고 자신을 잘 PR했다.

만약 해리가 지키지 못할 공약을 내걸었다면 거기에 혹한 아이들에게 표를 몇개 더 받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해리는 그러지 않았고, 당당하게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알렸다.

이제 얼마 안있으면 여러 선거들이 있다. 그리고 여러 정치인들이 지키지도 못할 공약들을 내세워 서로 헐뜯고 깎아내릴 것이다. 해리가 그들을 보면 이제 아마도 "빵꾸똥꾸들아!"라고 외치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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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에서 드디어 알레스카로 김상덕씨를 찾아 떠났다. 죄와 길에서 서로에게 벌칙으로 주어진 임무는 유재석과 노홍철, 그리고 정형돈은 알레스카로 떠나고, 박명수, 길, 정준하는 번지점프대에서 하룻밤을 자는 것이었다.

서울에서 왕서방 찾기와 마찬가지인 알레스카에서 김상덕씨를 찾아 칼국수를 얻어먹는 일은 유재석의 입방정에서 비롯되었다. 알레스카에 가게 된 유재석과 노홍철, 그리고 정형돈은 생판 처음인 낯선 곳에서 무한도전을 찍어야 하는 부담감마저 있었다.

이번 알레스카편을 보면서 느낀 것은 확연히 비교되는 프로의식의 차이였다. 1인자와 2인자의 차이라고 해야 할까? 알레스카팀과 번지점프팀의 차이가 너무도 극명히 났다. 웃음 역시 알레스카팀에 더 많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피 날 것을 알면서 삼단 뛰기를 한 알레스카팀


무한동계올림픽을 하기 위해 맨발 종목으로 3단 뛰기를 즉흥적으로 시작한 알레스카팀은 예능에서 피를 보고야 말았다. 웃겨야 하는 예능에서 피를 보다니 정말 엽기적인 상황이긴 하지만, 가혹하다는 느낌보다는 프로의식이란 생각이 더 들게 만들었다.

웃음을 주기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는 의지가 돋보였던 3단뛰기는 조금만 생각해보면 왜 그들의 프로의식이 돋보였는지 알 수 있다. 그 추운 알레스카 눈밭에서 정형돈이 뻥이 아니라 정말 춥다는 말은 말하지 않아도 보기만 해도 추운 줄 알 정도였다.

그리고 삼단뛰기를 하기 위해 뒷걸음질을 쳐서 도움닫기를 한 후 3단 뛰기를 크게 하였다. 그리곤 날카로운 눈에 찔려 발과 허벅지에서 피가 나고야 말았다. 눈이 녹고 얼기를 반복하며 얼음과 비슷한 상태로 되었기에 눈이 날카롭게 변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눈은 한번 밟아보면 대번에 알아차린다. 발에 감각이 없지 않는 이상 발이 베일 정도로 날카로운 눈은 한번 밟아보면 알 수 있다.



충분히 뒷걸음질을 쳤을 때 느꼈을텐데 그대로 도움닫기를 한다. 그리고 보통은 도약을 할 때 그 느낌을 안다면 몸이 움츠려들만한데도 큰 도약을 하며 큰 동작으로 넘어지기까지 했다. 미끄럽기도 했겠지만, 몸개그를 보여주기 위해서 더 크게 넘어진 것이 틀림없다.

정형돈 그리고 유재석, 다음은  노홍철... 유재석이 금을 밟아 실격 판정이 난 상태이기에 노홍철은 평소 얍삽한 캐릭터대로 살짝 3걸음만 걸었어도 되었을텐데 무리해서 큰 도약을 하다가 결국 발에 피 투성이가 된다. 또한 앞에서 이미 정형돈과 유재석이 뛰었던 상태이고, 피가 나지 않냐고 유재석에게 정형돈이 말한 상태이기에 눈이 날카롭고 베일 정도라는 것을 정형돈과 유재석은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노홍철도 그 사실을 충분히 인지했을 지도 모른다. 어쩌면 재미를 위해 노홍철에게는 안 알려주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찌되었든 그들의 허벅지와 발에서 철철 흐르는 피를 보니 그들은 웃고 있었지만, 정말 마음이 아프고 그런 그들을 위해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과연 그들이 진정한 프로라는 것 또한 느낄 수 있었다.

안전한 것을 알면서 벌벌 떤 번지점프팀



이와 너무도 확연히 비교되는 팀은 바로 번지점프팀이었다. 정준하와 박명수 그리고 길이 함께 한 번지점프팀은 번지점프대에 올라가서 앉아있는 것이 전부였다. 자막에도 나왔듯 그들은 예능 직무유기를 한 셈이다. 보통 번지점프대에 오르면 무서울만도 하지만, 그것이 재미있다고 느껴서 더욱 무서워하는 것도 있다. 솔직히 이제 번지점프대에서 벌벌 떠는 모습은 식상하기까지 하다.

더구나 정준하나 박명수는 번지점프대에 오를만큼 올랐다. 한두번하는 것도 아니고, 정준하의 엄살은 너무도 앞의 알레스카팀과 비교가 되었다. 다음 주에는 뭔가 보여주겠지만, 정준하가 무서워하는 것을 컨셉으로 잡았기에 정준하에게서는 별로 기대할 것이 없을 것 같다.

번지점프대에는 모든 안전 상태가 철저하게 되어있다. 피볼 일도 없고, 떨어져 죽을 일도 없다. 단지 높은데 있다는 것만 다를 뿐이고, 스텝들도 주위에 수십명이 있을텐데 예능에서 아무 것도 안하고 앉아있기만 한 모습은 실망 그 자체였다.

1인자, 그리고 2인자


1인자와 2인자의 차이는 이번 회에서 확실하게 판명이 난 것 같다. 그건 바로 도전 정신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닌가 싶다. 명색이 무한도전이고, 몇년간 도전에 도전을 거듭하였는데 한팀은 도전조차 하려 하지 않고, 한팀은 다칠 것을 알면서도 무모할 정도로 도전하는 모습에 왜 1인자이고 2인자인지 알 수 있었다.

알레스카팀은 무료한 도로 주행 중에도 웃기려도 한시도 쉬지 않고 예능의 프로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다음 주 역시 이들의 활약이 더욱 기대된다. 작은 일 하나에도 최선을 다하고 웃기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알레스카팀에 응원과 힘을 실어줌과 동시에 다음 주에는 번지점프팀도 정신차리고 제대로 예능을 위해 프로다운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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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노를 보고 있으면 현실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사극을 보면 대게 현실을 반영한 듯한 것이 많은데, 아무래도 역사를 이야기하는 것보다 각색을 해서 사람들이 공감할만한 내용으로 만들어야 시청률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혹은 역사는 반복되듯,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예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추노 속에 노비의 삶이나 벼슬아치들의 파렴치함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모습인 것 같다. 업복이가 나올 때마다 흘러나오는 MC스나이퍼의 민초의 삶은 과거와 현재가 오묘하게도 잘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특징들을 대상으로 추노 속 주인공들을 현재의 직업과 한번 연결시켜보자 재미있는 상상이 되어서 한번 적어보려 한다. 

1. 업복이(노비)- 월급쟁이



주인이 시켜야 하는대로 살아야만 하는 노비인 업복이. 호랑이를 잡으러 다니는 명사수였지만, 노비의 삶이 싫어서 도망치다 추노꾼인 대길이에게 잡힌다. 얼굴에 낙인을 찍히고 살아가는 그는 매일 저녁 늦게까지 일을 한다. 업복이는 저항의식이 있는 노비이고, 대부분의 노비는 업복이 집에 있는 노비들처럼 자신의 삶에 복종하고 살아간다. 주인이 거두어 준 것만으로도 만족하며 자신의 딸마저 내어주어야 하는 비참한 노비의 삶. 저항 한번 못해보고 주인이 시키는데로 까라면 까야 하는 그들은 마치 현재의 월급쟁이들이 아닌가 싶다. 

대기업에 다니던, 중소기업에 다니던 월급쟁이의 삶은 노비의 삶과 매우 비슷하다. 그나마 그 노비조차 되지 못해 백수라 불리우는 사람들이 수백만이라며 다들 걱정하고 노심초사한다. 직장인의 삶은 계약 관계로 인해 노비와 같은 삶을 살게 된다. 공급과 수요의 법칙에 의해 회사보다 회사를 구하려는 사람들이 넘쳐나게 되자 월급쟁이들의 가치는 점점 떨어지게 된다. 더 능력 있는 사람들이 더 적은 월급을 받고 더 높은 물가 속에 살아가는 이 세상은 점점 월급쟁이를 노비로 만들고 있는 것 같다. 

야근은 필수고, 과중한 업무량으로 인해 자신의 삶조차 제대로 즐기지 못한다. 상사가 시키는데로 하지 않으면 짤리거나 승진을 하지 못하기에 부당한 일이라도 그냥 까라면 까야 하는 것이 월급쟁이의 삶이다. 그나마 월급이라도 제 때 주면 고마운 주인이고, 얼마 안되는 월급을 떼어먹는 파렴치한 사장들도 쎄고 쎘다. 그리고 그렇게 사는 것이 사회생활을 제대로 하는 것이라며 세뇌를 시켜 뇌물주고, 까라면 까고, 상사에게 아부 떠는 것이 일생 일대의 목표인것처럼 행동하고 말한다.

업복이는 이런 노비의 삶에 부당함을 느끼고 비밀조직에 가입하여 주인들의 대가리에 총구멍을 하나씩 내주고 있다.

2. 송태하(장군)- 군인



예나 지금이나 가장 오래된 직업이 있다면 아마도 군인일 것이다. 송태하는 지금으로 친다면 연대장 정도 되었던 것 같다. 군인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거짓말에 능숙하여 눈속임에 능한 군인과 정말 국가에 대한 충성심으로 똘똘뭉친 사명감 있는 군인으로 말이다.

그 중 송태하는 후자일 것이다. 전쟁이 나면 가장 먼저 앞에서 죽음을 무릎쓰고 싸워야 하는 군인. 누울 자리를 가리지 않는다는 대사는 현재의 군인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것 같다. 군에 있을 때 아침마다 외치던 구호는 "필사즉생은 우리의 신념"이란 것이었다. 죽고자하는 마음으로 싸우면 반드시 이긴다는 것이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제일 먼저 죽는다는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전쟁이나면 시나리오상 가장 먼저 죽게 되는 곳이라 아침마다 그런 외침을 하며 마음을 다잡게 하는 것 같다.

이런 군인들은 정치에 연류되면 항상 피를 보는 것도 현재의 상황과 동일한 것 같다. 황철웅처럼 말이다.

3. 오포교(포교)-부패 경찰



오포교를 보고 있으면 투캅스의 부패 경찰들이 생각난다. 맨날 오포교는 주막에 들러 히히덕거리고 주모들과 노닥거린다. 그리곤 돈이 필요하면 권력을 이용해 대길이를 찾는다며 쑥대밭을 만들어놓고는 돈을 요구하는 파렴치한 일까지 한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모두 추노꾼에게 맡겨놓고 커미션을 떼어먹는다. 그리고는 높은 양반들에게는 아부하기에 여념이 없다. 

자신의 입신을 최고로 여기는 이런 오포교의 모습은 부정 부패한 경찰의 모습과 비슷한 것 같다. 룸싸롱에 맨날 들락거리며 마담과 히히덕 거리고 노닥거리다가 돈이 필요하면 권력을 이용해 미성년자 출입 순찰을 돌린다. 그리고는 돈을 뜯어 먹기 일쑤이고, 상사에게는 아부하기 여념이 없다. 

4. 언년이(노비에서 양반으로 신분상승) -  자수성가한 사업가



도망 노비 중에 가장 성공한 케이스인 언년이는 원래 대길이네 집의 노비였으나 혼란을 틈 타 도망을 친다. 그리고 밑바닥부터 시작하여 상인으로 성공하게 되고 돈으로 양반을 사서 많은 사람들에게 덕을 배풀며 살고 있다. 그 집안의 명성은 좋은 소문으로 자자하며 언년이는 이름도 김혜원으로 바꾸며 신분상승을 하게 된다. 그리고 비록 도망노비의 신세가 되긴 했지만 장군인 송태하를 만나 사랑도 하게 되고 결혼도 하게 된다.

자수성가한 사람들이 이런 케이스에 속하지 않나 싶다. 직장인의 삶에 비참함을 느끼고 자신이 직접 사업을 운영하여 성공한 케이스 말이다. 창업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실패를 하긴 하지만, 그 중 성공한 사람은 좋은 기업을 운영하고, 직원들에게도 좋은 평판을 받는 기업으로 성공하곤 한다.

5. 대길이 (추노꾼) - 사설탐정(해결사)



도망간 노비를 잡는 대길이는 언년이를 찾기 위해 추노꾼을 선택한다. 도망간 노비를 잡으면 그에 붙은 상금을 받아 연명을 해가는 대길은 오포교에게 도망 노비에 관한 정보를 얻고 잡아오면 그 상금을 오포교와 나눈다. 하지만 명확한 신분이 없기 때문에 오포교는 언제든 추노꾼을 담가버릴 수 있고, 노비들은 업복이와 같이 한을 품게 되어 중간에 낀 힘겨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

천지호의 말처럼 하는 일은 나라도 못하는 일을 대신 해 주는데 언제나 이용만 당하고 대접을 받지 못하는 직업인 추노꾼은 마치 현재의 사설 탐정과 같지 않나 싶다. 요즘에도 사설 탐정이 있나 하지만, 많은 사설 탐정들이 경찰이 하지 못하는 사건들을 해결해준다.

아직 외국과 같이 하나의 직업으로 인정받고 있지는 못하고 전문적인 직업은 아니지만, 그들의 사건 해결 능력은 탁월하다. 추노꾼과 같이 무력을 행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보통 사설탐정보다는 해결사로 더 많이 불리는 것 같다. 해결사들은 보통 조폭들이 알바 형식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해결사들이 나서면 해결되지 않는 일이 없을 정도로 이들의 능력은 추노꾼에 버금간다.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돈 받아 드립니다'나 '사람찾아 드립니다' 역시 심부름센터와 해결사가 적절히 조합된 형태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그 또한 추노꾼의 역할과도 적당히 잘 어울어지는 것 같다. 경찰도 하지 못하는 일을 그들이 하고 있지만 결국 때가되면 이용당하고 마니 말이다. 최근 등장한 짝귀가 대길이를 영입하려 애쓰는 모습을 보면 예전에도 추노꾼이나 왈패나 별반 다를바가 없었나보다.

6. 이경식(정승)- 국회의원



정확히는 국회의원보다 장관의 위치가 적당하겠지만, 그거나 그거나 하는 짓은 똑같기에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이경식은 자신의 사위를 시켜 살인을 저지르게 하고, 인조의 마음에 들기 위해 어심을 읽으려 별 지저분한 일을 다 한다. 추노꾼을 시켜 세자를 죽이려 하고, 물소뿔을 사서 자신의 재산 불리기에도 욕심을 보이고 있다. 권모술수에 능해서 사람을 이용하고 버리는 일에 능숙한 것 같다.

현재의 정치인들을 반영한 캐릭터가 아닌가 싶다. 부패한 정치인들의 온상이 바로 이경식이니 말이다. 이경식의 말처럼 그들은 어심을 읽는다며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이 나라를 위한 일이고 백성을 위한 일이라 말은 하지만, 결국 그럴수록 자신들의 재산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국회의원들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물론 뜻 있는 국회의원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업어치나 매치나이다.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남들은 다 죽이고 호의호식하는 이들은 국가와 국민의 안녕보다는 자신의 안위와 욕심이 우선인 파렴치한이니 말이다.



억지로 끼워 맞춘 것처럼 보이는 것도 있겠고 너무 잘 맞아 떨어지는 것도 있겠지만 추노 속의 스토리는 결코 과거에 국한된 것이 아닌 것 같다. 인조의 권력에 대한 욕심 때문에 세상은 혼란스러워지고, 노비들의 삶은 점점 비참해지며, 권력과 폭력만이 남아있는 세상 말이다. 돈에 의해 주종관계가 만들어지는 더러운 세상은 현대의 자본주의 세상과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다만 좀 다른 것이 있다면 당시에도 자신의 의지에 따라 노비의 삶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추노꾼이 될 수 있었던 것처럼 현재는 더 많은 자유가 주어져 자신의 의지만 있다면 좀 더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점이 다를 것이다. 물론 이 자유도 돈에 의해 구속되곤 한다.

업복이처럼 양반들의 대갈빡에 구멍을 숑숑 내주어 노비가 왕이 되는 세상을 꿈꾸는 세력들이 있기에 세상은 좀 더 숨을 쉴만한 곳인지도 모른다. 추노를 보며 느끼는 것은 사람은 과연 무엇을 위해 살아가냐는 것이었다. 권력? 부? 사랑? 명예? 즐거움? ... 죽으면 한 줌의 흙일 뿐이거늘 무엇을 위해 그리도 죽을 동 살동하며 미친듯이 살아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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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의 죄와 길편에 대한 리뷰를 쓰고 많은 분들의 질타를 받았다. 무한도전의 유재석을 왜 감싸주지는 못할 망정, 유재석을 가식이라 몰아붙인 이효리와 김제동을 두둔하는 것이냐는 것이었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이효리를 왜 감싸주고 있냐는 것이다.

이효리가 진짜 투입되기라도 한다면 제2의 패떴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말과 함께, 유재석을 비난한 이효리를 두둔한 것은 필자 또한 유재석을 흠집내기 위함이며 이효리나 김제동과 같은 의도를 가진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유재석은 신이 아니다.



이영애. 이슬만 먹고 살 것 같은 산소 같은 여자. 그녀의 신비주의에 가린 모습은 마치 그녀가 선녀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그것이 그녀의 가장 큰 매력이자, 또한 그녀를 옭아매는 족쇄이기도 하다.

장동건. 터프하고 야생적인 이미지에 순수한 동화속 왕자님같은 모습까지 가지고 있는 그는 미남의 대표적인 아이콘이기도 하다. 결혼 적령기가 훨씬 지났음에도 고소영과 열애 소식이 났을 때 수많은 여자들의 한숨이 들려왔던 그는 만인의 연인이기도 했지만, 그것은 그를 옭아매는 족쇄였기도 했다. 

막돼먹은 영애씨에서는 이와같은 이영애의 이미지를 정반대로 해석함으로 방구뀌고, 막 먹고, 막돼먹은 짓을 하는 영애씨를 만들어냈다. 장동건은 자신의 잘 생긴 얼굴이 오히려 연기에 방해가 된다며 일부러 꽃미남스런 역할보단 거친 역할을 더 많이 했다. 연기자에게 하나의 이미지가 굳어진다는 것은 곧 생명이 끝난 것이란 소리도 되기 때문이다.

유재석. 그는 착하다. 솔직하다. 신뢰할 수 있다. 우리는 그를 그렇게 불러왔고, 나 또한 그에 심히 일조했다. 무한재석교로서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유재석에게 족쇄로 다가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죄와 길을 보면서 말이다.

이효리와 김제동은 유재석의 숨통을 터주었다.



죄와 길에서 이효리와 김제동의 역할은 유재석의 반대편에 서서 유재석의 가식적인 모습을 밝혀내는 것이었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며 이효리와 김제동에게 비난의 화살을 날리게 된다. 물론 이해가 되는 상황이다.

단지 조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재석은 무한재석교와 그간의 행실로 인해 사람들에게 착한 이미지로 굳어버렸다. 그가 그런 캐릭터를 만들었던, 사람들이 만들었던, 원래 그러하든 상관없이 그는 그런 존재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연기자와 같이 예능인도 한가지 캐릭터로 굳어가는 것은 흔들리는 외줄을 타는 것만큼 아슬 아슬한 상황이다. 물론 하나의 캐릭터조차 갖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하나의 캐릭터로 굳어간다는 것은 행동에 제약을 가져오게 하고, 그의 설자리를 점점 좁아지게 만들 수도 있다.

꼭 예능인으로서만 아니라 그의 사생활에 있어서도 미치는 영향이 클 것이다. 이제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고,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된 유재석은 사생활에 있어서 좀 더 자유로워질 상황이 되었다. 아이와 함께 놀이공원도 가야 할 것이고, 가족과 함께 외식도 해야 할 것이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효리와 김제동은 유재석의 착하기만 한 캐릭터를 부숴준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유재석은 원하고 있다.



죄와 길을 보면서 이효리와 김제동의 공격에 유재석의 리엑션이 이런 생각을 더욱 하게 만들었다. 유재석의 리엑션은 그 어떤 리엑션보다 크고 재미있었다. 당황하는 듯한 표정과 액션은 마치 작정이라도 한 몸개그처럼 정확한 리엑션을 주었고, 그로인해 분위기는 더욱 고조되었다.

유재석의 이런 반응은 죄와 길이 처음은 아니었다. 서로의 역할을 바꾸어 보았던 방송에서 유재석은 박명수의 역할을 맡았고, 박명수의 삐뚤어진 모습을 그대로 흉내내었다. 그 누구보다 더 잘 흉내내었고, 오히려 박명수보다 더 악랄하고 재미이있었다. 패떴에서도 유재석은 깐죽거리는 이미지로 나아가고자 했다. 최근에는 성인비디오에 관한 유재석의 멘트로 인해 기사가 도배되다시피하고 있다.

태호PD가 죄와 길을 통해서 스포일러를 하는 기자들을 향해 메시지를 던졌듯, 이번 일 또한 무한도전 내에서 메시지를 찾아볼 수 있겠다. 길이 오줌을 쌌든 안 쌌든 길의 허락을 받지 않고 편집을 시도한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냐는 길의 질문이 있었다. 이에 대해 PD는 물론 허락을 받아야 하지만, 크게 문제되지 않을 것 같아서 편집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다른 멤버들도 길의 존재감이 약하고, 캐릭터를 형성해 주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길을 위한 배려였다고 말한다.


이는 유재석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유재석은 길보다 훨씬 더 영향력이 있고, 존재감이 있다. 유재석과 길은 예능에선 하늘과 땅 정도의 인지도 차이를 지니고 있다. 그렇기에 길에게 있었던 유재석의 짧은 멘트(오줌)는 무시될 수 있을지언정, 유재석에 대해 가식이라 몰아붙인 이효리와 김제동의 발언은 유재석에게 반드시 허락을 받고 편집을 했어야 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편집은 오히려 더 그 부분을 부각시켰고, 죄와 길의 반전의 포인트로 삼았다. 그리고 유재석의 리엑션 또한 매우 좋았다. 이런 정황으로 미루어보아 유재석은 자신의 캐릭터에 대해 가식이란 공격적인 단어로 숨통을 텄으면 하는 바람이 아니었나 생각해본 것이다.

이효리와 김제동은 유재석의 절친이다.



"가식" 어떻게 보면 굉장히 위험한 단어일 수 있다. 만약 다른 연예인이 유재석을 향해 가식이란 단어를 사용했다면 지금과 같은 욕을 얻어먹어도 마땅히 할 이야기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효리와 김제동이 유재석에게 어떤 의미일까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자.

이효리는 유재석이 메뚜기탈을 쓰던 인기없던 10년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다. 김제동 역시 그 바쁜 유재석이 시간을 내어 8시간씩 이야기를 나누고 그 다음 날 또 4시간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던 친구이다. 김제동은 유재석 앞에서 울 수 있을만큼 자신의 마음과 내면을 보여줄 수 있는 신뢰를 가지고 있는 친구일 것이다.

김제동과 이효리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논리대로라면 가장 친한 친구가 배신을 때린 격이다. 한명도 아니고 두명의 절친이 동시에 유재석을 공격하다니 그렇다면 유재석이 그 둘과 심한 싸움을 했다는 것 밖에는 다른 이유가 없다. 그런데 심한 싸움을 했다면 무한도전에 출연했을리 없다.

그렇기에 그들은 친한 친구로서 친구를 도와주기 위해 나온 것이다. 그리고 "가식"이란 단어로 그를 수술대 위에 올린 것이다. 총대를 매고 말이다. 이런 반응을 충분히 예상했겠지만, 이런 결과를 두고 유재석은 얼마나 가슴을 아파하고 친구들에게 미안해할지 충분히 예상이 되지 않는가. 유재석을 그렇게 생각한다면 말이다.

마무리



한 사람을 하나로 규정한다는 것은 당사자에게 매우 갑갑한 일이 될 수 있다. 김장훈은 기부천사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수십억을 기부하고 독도를 홍보하는데 그렇게 열심히니 얼마나 사람들에게 본이 되고 존경스러운가. 나 또한 그런 그를 존경하고,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하지만 그는 그런 기부천사의 이미지가 부담스럽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후 그의 절친 박경림은 김장훈을 향해 "실제론 쓰레기"라는 발언을 하게 된다. 많은 질타를 받았고, 실언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후에 설명을 듣고나니 김장훈에 대해 더욱 가깝게 느껴졌고, 인간적인 모습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나와 비슷한 그, 어쩌면 나보다 더한 그가 그런 일을 하는 것에 대해 더 큰 자극을 받고 그에 대해 매력을 느낀다. 남자임에도 말이다!!!

유재석에게 김제동과 이효리가 던진 가식이란 화두는 그런 의미가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이 장문의 글은 유재석의 심중도 아니고, 김제동과 이효리의 생각도 아니다. 그냥 허접한 블로그의 필자인 내 생각이다. 그리고 내 글에 대한 부족한 부분과 다른 의견들은 댓글로 완성시켜 나갔으면 좋겠다.

진정 유재석을 생각한다면 김제동과 이효리에게 돌을 던지기 전에, 유재석의 의중을 먼저 생각해보고 고려해보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간단하다. 유재석은 자신으로 인해 김제동과 이효리가 욕을 먹길 원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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